버리지 못하는 물건
“캐스트 어웨이, 동갑내기 과외하기,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 아바타...”
추억 속의 이 영화들은 곧잘 나를 어린 시절로 데려다 준다. 우리집 나의 작은 공간에는 고등학생 때부터 영화관을 다니며 모아둔 영화 티켓이 있는데, 그것을 꺼내어 한 장씩 넘겨 보다보면 그 때 그 시절로 간단히 추억 여행을 하게 되는 것이다. 모두가 보았다는 유명 영화, 명절 때 TV에서나 틀어줄 법한 킬링 타임용 영화, 보는 사람만 본다던 독립영화까지, 영화라면 무조건 좋다고 영화관으로 달려갔던 그 흔적이 지금, 여기 내 손에 오롯이 남아 있다. 한 장 두 장 모으다 보니 어느 새 수북하게 쌓여버린 영화 티켓들은 버리지 못하고 소유하고 있는 물건 중 가장 기특한 존재이다. 그것은 단순히 영화관 입장권이기도 하고, 나의 어린 시절로 떠나는 여행 입장권이기도 하리라.
딱히 이렇다 할 취미가 없었던 십 대 시절의 나는 자타공인 영화광인 아버지를 따라 주말마다 영화관을 다녔다. 처음에는 영화가 뭔지도 모르면서 따라 다니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 그 매력에 빠져들고 말았다. 웅장한 느낌을 주는 영화관의 그 분위기 속에 입장하는 일은 언제나 멋졌고, 달콤한 팝콘을 사 먹는 재미도, 티켓 속에 쓰여진 좌석 번호를 찾아 나서는 순간도 모두 좋았다. 스크린을 바라보며 울고 웃고 놀라고 감동 받으면서 그렇게 나는 그 시절을 성장해왔다. 영화는 밋밋한 어린 시절에 재미의 한 조각이 되어 주었으며, 또한 지방의 시골 마을에 살면서 처음 십대 소녀를 키워보는 부모님이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사랑 표현이기도 했다.
작고 소중한 것을 모으기 좋아하는 나는 영화관에 갈 때마다 주어지는 그 영화 티켓을 모으는 재미를 즐겼다. 결혼을 하게 되면서 가지고 있던 것 중 꼭 필요한 것만 신혼집에 가지고 가면서도 티켓 꾸러미를 챙겼고, 어린 자녀를 키우면서 살림을 늘리고 줄여야 했던 시절을 통과하면서도 이를 방 한 켠에 고이 잘 모셔두었다.
실은 이 티켓 꾸러미를 몇 번이고 잃을 뻔 한 적이 있다. 육아와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집안 물건 내다 버리기로 풀어내기 시작하면서 생긴 일이다. 예쁜 신혼집이었던 나의 공간이 온갖 살림살이로 채워지고 있다는 사실이 가끔 숨 막혔고, 있으면 조금 뿌듯하지만 없어도 무방한 것들은 가차 없이 버리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티켓 꾸러미는 손에 쥐고 이걸 갖다 버려말어 몇 번을 고민하며 쓰레기통 앞을 오갔는데, 그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잘 아는 남편은 그럴 때마다 그냥 간직하는 게 어떻겠냐고 나를 말렸다.
쉼 없는 인생이었지만 잘 살고 있는지 여전히 의문이고 그래서 더욱 복잡한 삼십 대가 흐리고 있다. 그럴 때일수록 좋았던 기억을 꺼내 보는 일은 더없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시절의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지금의 나도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더욱 그러하다. 추억이 필요한 날에는 티켓을 꺼내어 한 장씩 넘겨본다. 제목 옆에는 함께 본 친구 이름도 쓰여있고, 어떤 이유로 영화를 보게 되었는지, 어떤 팝콘을 먹었는지, 콜라인지 사이다인지와 같은 별 거 아닌 메모들이 남아 있다. 별거 아닌 것들이 모이고 모여 이제는 그 모든 것이 나에겐 별 거가 되었다. 그것은 입장권을 결제한 후 내 손에 다정하게 쥐어 주던 아버지의 사랑이기도 하고 그 날 그 영화관의 공기도 고스란히 묻어있으며, 십 년 간 잘 보살핀 나의 손길도 담겨있다.
영화 티켓 꾸러미를 풀어보는 날, 그 때 그 시절을 여행하고 돌아오는 시간은 공교롭게도 딱 영화 한 편 보는 시간이 걸린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기특한 존재인 이것을 영원히 버리지 못할 것이란 것을, 나는 이제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