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차별, 그것은 당연한 건가요?

커피 타는 일, 간단하지만 무거운 일.

by 김윤

믹스커피를 휘저은 티스푼을 탕비실 개수대에 곱게 내려놓고 가는 그를 벌써 몇 번이나 목격했다. “대리님, 이렇게 사용하신 거는 물로 살짝 헹궈서 위에 올려 주시면 안 될까요?” 50대 부장도 아닌 20대 젊은 청년에게 하는 예의 바른 권유였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여기 두면 나중에 다 같이 씻으면 되죠.” “누가요?” “여직원들이 설거지할 때요.”

연봉계약서에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여자는 설거지를 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던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그는 당당했다. 그의 안하무인의 태도를 모든 직원들의 것으로 일반화시킬 수는 없지만 그 당당함의 원천은 남성과 여성의 업무를 철저하게 나누는 오랜 회사의 분위기에서 탄생한 것이라 생각한다. 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탕비실 개수대에는 본인이 사용한 컵을 버젓이 올려두고 가는 사람이 많은 걸 보면 내 생각이 틀리지 않은 것 같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정확히 8개의 컵이 놓여있다.)


"간단히 커피 타는 일 정도는 할 수 있지요?" 면접 보던 날 이런 질문을 받긴 했다. 별 거 아닌 뉘앙스였기에, 나도 별 거 아닌 마음으로 ‘할 수 있다’는 대답을 건넸다. 근무를 시작한 첫날. 출근을 하자마자 임원 자리에 블랙커피를 한 잔 드리는 것, 대표이사가 출근하면 라테 한 잔 만드는 법을 배웠다. 쉴 새 없이 밀려드는 회사 손님 그리고 임원들의 개인적 손님, 그들의 접대까지 모두 나의 몫이었다. 커피 서빙은 어쩌다가 하는 간단한 일이 아니라 매일같이 해야 하는 하나의 고정적인 업무였다.

이 정도는 별 거 아닌 간단한 일이라고 스스로 체면을 걸다가도, 가끔은 아주 무거운 일처럼 느껴졌다. 왜냐하면 남자들은 전혀 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막내라서 하는 것도 아니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옆 자리 남자 직원 S는 그 일에서 애초부터 배제되었고, 내가 사무실에 없을 때 손님이 방문하면 굳이 나에게 전화를 해서 커피를 달라고 요구하는 역할을 맡을 뿐이었다.


동갑내기였던 S는 커피 서빙 업무를 가장 먼저 인수받은 나와는 달리 입사와 동시에 3개월의 연수를 받았다.

연수가 끝난 후, 그의 하루는 각종 회의로, 그의 1년은 해외 전시회 참가 출장으로 채워졌다. 나보다 영어실력이 좋지 않고 경력이 없는 S였지만 우즈벡, 카자흐스탄, 미국과 중국으로 날아다니며 경험을 쌓아 나갔고, 해외영업과 무역 업무를 바라며 입사했던 나는 언제 주어질지 모를 기회를 기다리며 S의 출장비를 정산하기에 바빴다. 남자들에게 크고 중요한 프로젝트는 당연한 일이었고, 여자는 작고 소소한 업무가 당연시되는 곳. 그곳에서는 그게 정답이었고, 순리였다. 아무도 그 흐름을 깨려고 하지 않았다.

넌지시 업무적인 불만을 털어놓은 적도 있다. 물론 서빙이나 출장비 정산과 같은 일을 해야 한다면 하겠지만 애초에 내가 원했던 업무가 아니라고 밝히며, 이력서에 적힌 나의 경력 사항대로 해외 PM 업무, 무역 업무를 이어가고 싶다고 했다. 남자와 여자 사이를 분명하게 선 긋는 윗사람은 나의 말을 결코 이해하지 못했고, 업무에 어떤 문제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그리고 몇 달 뒤, ‘중요한 업무도 같이 할 수 있도록 할게요.’라는 말을 들었다. 중요한 업무란, 남자들의 업무를 말하는 것이겠다.

변한 것은 없었다. 여직원은 회의 참석이나 출장을 가지 않았으며, 명함 발급도 되지도 않았고, 대리 이상의 진급은 불가능했다. 예외적으로 ‘여자 일’이 아닌 ‘남자 일’을 공식적으로 맡게 된 10년 차 여성 대리님 한 분은 과장 진급의 가능성이 대두되었으나 인사 공고란에서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여자는 과장, 즉 한 과(課)의 업무나 직원을 감독하는 직무를 할 수 없다는 것이 임원진의 판단이었다. 4-5년의 대리업무 후 자연스레 과장을 다는 남자들과 달리 여자는 그 배로 기다림의 시간을 가져도 허무한 결과만이 있을 뿐이었다.

매일이 불만스러웠지만 당장의 한 달 월급을 위해, 일자리가 있다는 것에 대한 만족감, 직장인이라는 안정감에 기대었다. 줄어드는 대출금과 늘어나는 적금통장의 힘으로, 혹은 나를 닮은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버틴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른 길이 있지 않을까 기웃거리다가도 ‘회사 밖은 지옥이다’ 같은 말에 지레 겁먹고 주저앉았고, ‘여자가 그만큼 벌면 됐다’와 같은 언어에 대충 마음을 다독거렸다.

7년을 지나왔다. 차별이 당연시되는 삶이 더 깊이 스며들기 전에 여기서 멈춰보기로 했다. <엄마는 페미니스트>와 같은 책을 읽으며 나의 시선이 그릇되지 않았다는 것을 배우고, 다른 세상의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어본다. ‘넌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서 그래’ ‘더 이상 참지 마’ ‘너의 귀한 에너지가 아까워’ ‘끝까지 배우고 공부하자’는 언어를 듣는다. 적어도 나의 딸이 살아가는 시대에는, 남녀차별이 지금보다 더 옅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더 많이 읽고 올바른 언어를 배워나갈 것이다. ‘바꾸기 힘든 환경 속에서 묵묵히 일을 해낸 7년이 대단하다. 아이가 자라면 엄마를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 ‘이라는 조언에 흠뻑 울고 난 뒤 마음을 꽉 다잡는다.

7년을 버텨낸 나는 대단한 사람이라고.

버텨낸 힘으로 또 다른 7년, 17년, 70년을 시작해보자고 그렇게 주문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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