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오늘 회사에서 뭐했어?

행복한 직업인이 되고 싶은 중소기업 경리의 고백

by 김윤


나는 워킹맘이다. 아이를 낳기 1주일 전이 되어서야 출산 휴가를 들어갔고, 아이를 낳고 3개월 뒤 복직했다. 그 후로 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간 우리는 셀 수 없이 헤어졌고 만나기를 반복했다. 아침 7시 반, 나는 회사로 아이는 할머니 집으로 가며 헤어졌고 저녁 6시 반, 각각 퇴근과 어린이집 하원을 한 후 다시 만났다. 아이가 다섯 살이 되기까지 그간의 시간 속에는 무수히 많은, 정말 많은 이야기가 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아이와 나는 많은 것을 한다. 서로 부둥켜안고 사랑을 속삭이는 것은 기본이요, 서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예쁘다 말해주기도 한다. 어제, 오늘, 내일의 개념을 어렴풋이 알게 된 아이는 종종 이렇게 묻는다. "엄마는 오늘 회사에서 뭐했어?" 무언가 멋들어진 대답을 해주고 싶은 나는, 늘 말문이 막혀버리고 만다.


그렇다. 나는,

중소기업 경리다.

결코 행복하지 않은 회사원이다.




“1년 이상은 못 다닐 것 같습니다.”

수습기간 3개월이 끝난 후, 맞은편에 앉은 차장님께 꺼낸 말이다.


지금 근무하고 있는 회사에는 스물여덟에 입사했다. 면접을 보기 위해 처음 방문했던 회사는 중소기업이었지만 근사한 건물, 깔끔한 사무실, 멋진 회의실을 뽐내며 나를 설레게 했다. 그렇게 입사를 하기로 하고 첫 출근 하던 날. 남자 직원에 비해 여자 직원들을 찾기가 힘들었다. 160명이 넘는 회사에 여직원은 왜 7명밖에 없는 걸까. 그리고 자유로운 복장을 한 남자들과 달리 그들은 왜 단정한 유니폼을 입고 있는 걸까. 손에는 들린 꽃 쟁반은 뭐지?


이전 직장에서의 업무는 즐거웠다. 해외 업체와 직접 Contact을 했고, 문제가 생기면 회의를 통해 해결했다. 쌓아온 경험을 그대로 다음 직장에서 이어가고 싶었는데, 기회는 없었다. 처음에는 눈치를 조금 살펴가며 기회가 오기를 기다렸다. 시간이 흘러 회사를 전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어서야, 내 눈 앞의 벽이 보였다. 무시무시한 벽이었다. 그 벽의 이름은, 철저한 남성 중심 사회.


남자들은 주로 중요하고 큰 프로젝트를 담당했고, 여자들은 작고 소소한 일들을 처리했다. 그곳에서는 그게 정답이었고, 순리였다. 아무도 그 흐름을 깨려고 하지 않았다. 출장 간다고 나에게 통보했고 출장비를 끊어달라고 했다. 관리부에 가면 금고를 열어 현금을 꺼내 주었다. 백 원짜리 천 원짜리 손에 움켜쥐고 과장에게 전달했다. 여자들은 회의에 참석하지도, 출장을 가지도 않았다. 손님이 오면 뜨거운 커피, 녹차, 둥굴레차를 나에게 주문했다. 커피포트에 물을 끓이고, 녹차와 둥굴레차 티백을 뜯으며 시간을 보냈다. 업무 이외에도 해야 하는 잡일 거리들이 몸도 마음도 지치게 했다. 통장에 찍히는 월급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다가도, 내 손에만 들려있는 꽃 쟁반을 볼 때면 수치스러웠다. 예전 근무지와 판이하게 달랐다. 회사를 다니는데, 직업은 없다. 배우고 성장하고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그저 후퇴하는 기분이 들어 좌절스러웠다.


일 년만 버티자 했는데, 그러는 사이 결혼을 했다. 생애 처음으로 대출금이란 것이 생겨, 전에 없던 열정도 생기고 월급 주는 회사에 대한 애정도 아주 약간 생겼다. 완벽하게 만족스러운 일자리는 없다, 찬란하기만 한 인생은 없다는 말을 마음속으로 되뇌며, 우리 집 앞으로 생긴 대출금을 모두 갚을 때까지는 꼭 일을 하야겠다는 사명감까지 생겼다. 아이도 태어났다. 포동포동 몸집을 키워가며 아장아장 걸어와 폭 안길 때마다 어미로서 책임감이 피어났다. 꽃 쟁반 그까짓 거 좀 들고 다니면 뭐 어때. 아이에게 좋은 것을 먹이고, 예쁜 것을 입힐 수 있는데. 나는 시간이 갈수록 ‘돈을 버는’ 행위에 대한 자신감을 챙겼다.


그렇게 7년째 버티고 있다. 벽을 받아들이고 그렇게 묵묵히 내 자리를 견뎌낸다. 커피 타기와 같은 간단한 일을 할 때면 마음은 천근만근 더 무거워진다. 내가 행복하지 않은 일을 하더라도, 돈만 벌면 괜찮은 건가? 하는 의문이 늘 따라다닌다. 고민은 넘쳐흘러 나를 짓무르게 한다. 자존심이 상하고 수치심이 들어 마음이 매번 다치는데,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고 월급은 꼬박꼬박 들어온다.




"엄마는 커피를 타고, 종이를 복사하고,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정리하고 그랬어. 재미가 없긴 한데, 엄마 일이라서 하고 왔어" 다섯 살은 이해하는 척 고개를 끄덕이며, 참 잘했다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가슴이 순간 뜨끈해지며 눈물이 훅 치고 올라왔다.


"너에게 멋진 엄마가 될게" 혹은 "엄마는 이렇게 멋진 일을 하는 사람이야"와 같은 말을 하고 싶진 않다. 나는 그냥 나의 일을 해내며, 그 일이 나를 조금 더 행복하게 해 주기만을 바란다. 그래서 좁혀나가고 싶다. 내가 꿈꾸는 일자리와 실제로 내가 하는 일 사이의 간극을 조금씩이라도 좁혀나가고 싶다. 그것이 어제보다 오늘 더, 작아진다면 , 어제보다 오늘 더 행복할 것이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나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고 싶다. 그래야 일곱 시 반에 헤어지고 저녁 여섯 시 반에 만나는 아이에게도 조금 덜 미안할 것 같다.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일 한다는 것. 그것에 대해 적어 보려고 한다.

이제는 더 이상 마음을 다치고 싶지 않은 심정으로,

다섯 살 딸아이가 스무다섯이 되는 그 날,

여자로 일 한다는 것이 불행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작가의 이전글커피라는 예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