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라는 예술

워킹맘에게 커피란?

by 김윤

알람이 울린다. 아침 여섯 시 이십 분. 여자는 잠깐 머뭇거리지만 곧 일어나 욕실로 향한다. 샤워를 한 후 회사 유니폼을 갖춰 입고, 대충 빵이나 콘플레이크 따위를 먹는 걸로 아침식사를 때운다. 회사 가방을 준비하며 딸아이용 준비물 가방도 하나 더 챙긴다. 그리곤 자는 아이의 이불을 조심히 걷어 내고 양말을 신긴 후, 온몸을 마사지해주는 척하며 단잠을 깨운다. 새벽 기상보다 더 힘든 것이 바로 아이의 단잠을 깨우는 일이다. 이래저래 한바탕의 출근 전쟁이 끝난 후, 엘리베이터 속 출근하는 직장인들 틈에 여자의 가족도 한 데 섞인다. 그 속의 남녀노소 모두 비슷한 표정을 한 것이 풋 웃음이 나올 때도 있지만, 젖은 머리를 대충 묶은 노메이컵의 여자는 아침마다 반복되는 이 상황이 꿈인지 현실인지 가끔 헷갈린다. 이쯤 되면 간절해지는 것 오직 하나, 커피. 완벽한 크레마가 얹어진 씁쓸한 에스프레소 한 잔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여자는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제공하는 자녀 대학 학자금보다 스위스에서 건너온 jura 커피 머신을 제공하는 복지가 더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5년 전에 낳은 아이가 스무 살이 되어야만 써먹을 수 있는 대학 학자금 복지는 무려 15년이나 더 남았기에 가능한 철없는 소리일 것이다. 마침 회사의 탕비실 바로 옆의 사무실이 바로 여자가 근무하는 곳이다. 먼저 출근한 직원들이 너도나도 만들어 놓은 그윽한 커피 향을 통과해야만 사무실로 갈 수 있기에, 아이러니하게도 여자는 출근 시간이 기다려질 때도 있다. 아침에는 케냐 AA, 50ml, 보통이다. 용량을 맞추고 농도 버튼을 누르면 원두는 분쇄되고 풍부한 커피 향이 사방으로 퍼진다. 커피에 흠뻑 취한 후에야 젖은 머리칼을 한 노메이컵의 여자는 자취를 감춘다. 그 회사의 어느 누구도 여자의 아침 6시부터 8시까지의 일을 알지 못한다.



고백하건대, 그 시간 이후의 커피는 별로 달갑지 않다. 9시에 맞춰 출근하는 회사 대표에게 우유 거품을 얹은 카푸치노를 가져다주는 필수업무가 남아 있으며, 회사로 오가는 중요 고객들의 주문에 맞추어 커피를 쟁반 위에 가지런히 놓고 나르는 부수적 업무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한 번, 덴마크 고객 3명이 회사 1층 사무실에 노트북을 펴고 자리를 잡았는데, 에스프레소를 주문한 바람에 여자의 전화기가 울렸다. ‘미안하지만 2층에서 1층으로 커피 좀 내려주세요'라고 하더라. '미안하면 네가 쳐하던가' 전화를 끊자마자 여자는 낮게 욕설을 내뱉었다. 그럼에도 여자는 쟁반을 꺼내어 커피 잔 세 개를 올린다. 유럽에서 온 사람들이니 진하게 주는 게 좋겠지. 어쩔 수 없이 고객의 입맛까지 맞춰준다. 이럴 때면, 왜 하필 이 사랑스러운 커피머신이 스위스에서는 건너와서 나를 괴롭히는 걸까 한탄을 한다. 사람, 참 간사하다.


마음이 괴롭거나 왕창 짜증 나는 일이 있으면, 이럴 땐 또 당연스레 커피로 푼다. 텀블러, 얼음 가득, 케냐 AA, 100ml, 진하게. 커피 향에 잘도 취하는 여자는 덴마크인지 나발인지 홀랑 잘 잊는다. 나쁜 기억을 잘 잊는 것이 여자의 큰 장점인데 문제는 날이 갈수록 핸드폰을 어디에 뒀는지도 잘 까먹는다는 것이다. 그럴 때면 여자의 남편은 “너는 하루에 커피 두 컵은 마셔야 해. 오늘 한 컵 마셨지? 얼른 한 컵 더 마셔.” 여자는 커피 두 잔이 아니라 커피 두 컵이라 말하는 남편의 입담을 좋아한다. 그리고 커피를 우아한 기호품이 아니라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처방전쯤으로 여기는 것도 곧잘 우습다.


커피는 자고로 출근 전쟁을 마친 후 뜨겁게 한 잔

그리고 후끈하게 열 한 번 내고 시원하게 들이키는 한 잔이 좋다.

이 둘의 조합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예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