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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 Dec 07. 2023

매일 책을 읽고 필사를 합니다

에고이즘 필사클럽에 대하여



오전 10시. 남편과 아이들이 집을 떠나 드디어 고요한 집. 내가 머무를 공간만큼만 정리를 하고 자리에 앉는다. 앞에는 여러 권의 책이 있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책 속으로 빠져들고 싶다. 그런데 어떤 날은 이런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고 있는 이 시간, 다소곳하게 앉아 '책'을 읽어도 되는 걸까. 정답이 없는 질문인 줄 알면서 이따금씩 궁금하다. 책을 읽는다고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직업이 될 수도 없는데, 나는 왜 자꾸만 책으로 손을 뻗는 걸까. 그러니까,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몸을 굴리고 돈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집요한 생각이 나를 어지럽힌다.


이럴 때 나는 다정한 책친구를 갖고 싶다. "그럼. 책을 읽어도 좋지. 아이들이 올 때까지 네가 원하는 만큼 읽어봐. 좋아하는 일을 해."라고 말해주는 책친구. 책을 함께 읽는 독서모임도 좋지만, 책을 덮고 헤어지고 나면 다음번에 만나 펼칠 때까지는 또 혼자였다. 그래도 상관은 없었지만 좀 더 찐하게 존재하는 무언가를 원해왔다.  


책장 한편을 가득 채운 필사클럽 책 


22년 5월. 줄리언 반스 책으로 평일 매일 '필사'를 한다는 모임을 찾았다. 한 달에 2만 원이고 100% 참여하면 1만 원을 환급해 준다고 하니 전업주부가 참여하기에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은 것 같다. 마침 집에는 읽지 않은 책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가 운명처럼 잠들어 있으니 한번 해보자 싶었다. 작가는 매달 혹은 두 달에 한 번씩 바뀐다. 그렇게 시작한 필사클럽 모임을 23년 12월까지 참여하고 있다. 시작할 때만 해도 몰랐다. 이렇게까지 오래 하게 될 줄은. 그리고 내가 이토록 많은 것을 얻게 될 줄은.  



첫 필사



내가 만난 작가들, 줄리언 반스, 버지니아 울프, 무라카미 하루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아니 에르노, 도리스 레싱, 알랭드 보통, 서머셋 몸, 프랑수아즈 사강, 제임스 설터. 


한 달간 단톡방에서 만나는 건 비단 '필사'뿐만이 아니다. 누군가 받아 적은 문장에 대한 짧은 소감, 작가님의 책/작가에 대한 정보, 일상에서 발견하는 예쁨, 지역과 세계 사이에서 오가는 아름다움을 서로에게 선물하고 공유한다. 내가 가장 기다리는 사진은 아무래도 다정한 가이드 조안나 작가님의 필사다. 필사와 함께 올려주시는 메시지는 그것만으로도 울림이 있다. 작가님의 말만 따로 모으면 책 한 권 뚝딱 나오지 않을까 생각이 들 만큼 나는 그 문장을 기다린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더 많이 공유한다. 이를테면 책을 사랑하는 마음, 책과 연결되어 있는 세상의 모습 같은 것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나에게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로 다가온다. "우리가 왜 소설을 읽어야 하냐면요......"로 시작하는 유명한 소설가들의 멋진 정의보다 이 공간에서 펼쳐지는 보통 사람들의 보통 이야기들이 나에게는 "(그럼에도)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로 다가온다. 으쌰으쌰 아자아자 구령 하나 없이 작게 연결된 마음이 때로는 가벼운 소속감 같은 걸 느끼게 하는 점도 좋다. 책을 읽고 문장을 받아 적었을 뿐인데 나는 어느샌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차고 넘치는 사람이 되었다. 평일 오전 10시. 나는 이제  더 이상 헷갈리지 않는다.  



에드워드 호퍼. 여름쯤인가 서울에 호퍼 전시회가 있어서 단톡방에 그 이름이 올라왔다. 나는 그 이름을 처음 들어봤다. 나름 책도 열심히 읽고 문화분야에 문외한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 이름이 처음이었다. 놀랐다. 나 말고 모두가 그를 아는 듯했고, 아니 그를 사랑하는 것 같은데, 그렇게 유명한 사람을 나는 몰랐구나. 아무도 내가 그를 모른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지만 나는 혼자서 부끄러웠다. 평소에 모르는 게 있어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은 나인데 왜 그런 마음이 드는지 알 수 없었다. 호퍼의 책을 사고 그림을 보았다. 그리고 '호퍼'라는 글자가 들어간 뭐든 찾아 읽고 '알고 싶었다.'


나는 '호퍼'에 집착하는 나를 보면서 문득 깨달았다. 나는 '몰랐던 사실을 계속 알고 싶은 사람'이었다. 주위에서 좋다고 하는 걸 들여다봐도 크게 동요하지 않지만 취향이 겹치는 필사클럽에서 소개하는 것은 계속 알고 싶은 무엇이었다. 책이나 영화, 작가, 화가, 전시회, 문구, 프랑스 파리 이야기 같은 것들. 몰랐던 걸 알게 되어 계속 놀라고 싶다. 마치 어린애가 말을 새로 배우고 걸음마를 떼고 온 세상천지가 놀라움의 연속인 것처럼. 나는 그냥 자꾸만 알고 싶다. 계속 새롭게 알아가고 싶다.




올리브 키터리지도 나에겐 두근거림이다. 2022년 11월 필사클럽에 초대된 작가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였다. 그의 대표작 '올리브 키터리지'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가슴이 터져버리는 줄 알았다. 그리고 이제는 그 작품을 아직 읽지 않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부럽다. 올리브 키터리지를 아직 만나지 않아서,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은 그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그 사람들이 부럽다. 앞으로 계속 읽고 싶고 가슴이 울렁이다 못해 터져 버릴 것 같은 문학적 순간을 만나고 싶다.





필사클럽에서 읽은 책 


1년 반 넘게 하고 있는 나의 하루 루틴, 필사클럽. 15번의 개근을 했다. 책 읽기나 필사나 혼자 해도 너무나 무방하지만 함께한다면 이렇게까지 멀리 올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혼자라면 계속 몰랐을 그 무엇을 에고이즘 필사클럽에서는 알게 되었다. 에드워드 호퍼처럼, 올리브 키터리지처럼, 몰랐던 것을 알게 되고 그래서 계속 넓어지고 깊어지고 싶다. 에고이즘 필사클럽, 애정합니다 :) 






그간 함께한 필사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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