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윤 May 03. 2024

이렇게 뚱뚱한 엑스레이 X-ray는 처음이라

 나는 통통한 편이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날씬했던 적이 없다. 책상 앞에 틀어박혀 있던 중고등시절을 거치면서는 과체중과 경도 비만을 오갔다. 결혼을 앞두고 우아한 웨딩드레스를 입기 위해 50킬로 초반까지 살을 뺐지만, 단 한 번의 출산을 겪으며 단박에 60킬로 대로 돌아왔다. 키가 작고 다리도 짧은 편이지만 하체가 튼실한 관계로 하의류를 살 때는 꼭 L 사이즈를 사야 한다. 새 바지 밑단을 자르는 일은 옵션이 아니라 필수다. 애매하게 M을 살지 L을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건 좋지만, 영 찝찝하다. 이제 영락없는 삼십 대 중반의 아줌마가 되었지만 생애 단 한 번쯤은 날씬하고 싶다는 욕망이 여전히 살아있다. 매년 새 다이어리 첫 페이지에는 ‘올해는 꼭 십 킬로 감량하기! 다이어트 성공!’을 적는 사람, 바로 나다.      


 몇 해 전의 일이다. 잦은 편두통에 시달려 병원에 갔는데 기초 검사를 해봐야 한다며 X-ray를 찍었다. 결과를 들으러 진료실에 들어간 나는 벽면에 걸린 X-ray 결과지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이렇게 뚱뚱한 X-ray는 생전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부끄러워져서 고개를 획 돌려 버려버리고 말았다.




어깨부터 골반까지 딱 떨어지는 일자 옆구리와 튼실한 팔뚝살까지 심지어 어깨선까지 포동포동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예쁘게 찍어달라고 말해볼걸. 남편이 찍어준 내 사진은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언제 이렇게까지 후덕해져 버린 걸까. 의사 선생님이 나의 포동한 X-ray를 지긋하게 바라보며 긴 막대기로 구석구석을 짚어 가며 설명해 주신다. 속으로는 ‘오늘 본 X-ray 중 젤 뚱뚱하네’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 등줄기에 식은땀이 줄줄 나는 기분마저 든다.


다행히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스트레스를 덜 받고 마음을 느긋하게 먹으라는 조언을 듣는 둥 마는 둥하며, 진료가 끝난 후의 포동한 X-ray의 행방이 궁금해졌다. ‘저기요 의사 선생님. 그 x-ray 필요 없으시면 저 주시면 안 되나요. 어차피 제 사진이잖아요. 우리 집 냉장고에 붙여두면 식욕이란 식욕은 끝장나게 달아날 것 같거든요.’

     



 

집에 돌아오자마자 그동안 외면해 왔던 체중계를 꺼냈다. 두둥. 5년 전 만삭 몸무게에 거의 다다르는 숫자가 찍힌다. 헛웃음이 절로 났다. 살이 잘 찌는 체질이라 먹는 걸 조심하고, 몸무게 소수점 자리까지 관리하던 시절도 분명 있었는데, 지난 몇 년간 소홀했던 건 사실이다. 회사 업무, 육아, 대학 공부, 독서 모임 등 빡빡한 스케줄만으로도 일상은 더없이 피곤했다. ‘에라 모르겠다’를 외치며 먹는 즐거움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이렇게까지 살이 쪄있는 줄도 모르고 매일 맛있게 밥을 먹고, 간식으로 몽쉘을 먹기 위해 껍질을 주욱 뜯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식탐이 대단한 남편의 야식도 한몫 단단히 했다.  퇴근하는 남편이 사 온 떡볶이, 족발, 닭강정을 보고 손뼉 치며 좋아했고, 주말에는 달콤한 크림이 잔뜩 올라간 커피를 마시러 다녔다. 과거를 회상해보니. 그래, 적어도, 나는, 참 행복했다.        



그래서 이 글을 적는 이유는 아마 여러분들도 눈치채셨겠지만 다시금 다이어트에 불을 켜기 위함이다. 올해는 둘째를 낳고도 약 3년이 지났으니 이제 더 이상 "출산 핑계"를 댈 수도 없다. 아침에 일어나면 미지근한 물 한잔, 아이들이 등교하고 나면 자리에 앉지 말고 무조건 정리정돈과 청소를, 점심 먹고 난 후 간식은 먹지 않기 등등. 대단히 어렵지 않은 그 미션들을 하루하루 해나가 보자. 그냥 확 마구마구 먹어버릴까 싶을 때는, 그 후덕한 X-ray 떠올려보기! 후아. 생각만으로 아찔해.


 매일 책 읽기와 글쓰기도 중요하지만 매일 운동하기를 최우선으로 삼아 본다. 건강한 체력이 있어야 내가 좋아하는 일도 맘껏 즐길 수 있다. 물론 건강을 챙기는 와중에 몸무게도 줄어들기를, 바지를 살 때 스스럼없이 M사이즈를 고르게 되기를, 민소매 원피스를 입을 때 카디건은 필요 없게 되기를, 청바지에 흰 티셔츠 한 장만 입어도 보기 좋은 몸매가 되기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작년보다 조금 더 날렵한 모습의 X-ray를 찍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그러고 보니 X-ray 찍을 일이 없어야 좋은 거네요. 건강검진 X-ray라고 해두기!)  

매거진의 이전글 필라테스가 이런 건 줄 몰랐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