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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은 May 10. 2021

진화론: 존재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살아야 하는 이유

어쩌면 운명 이었을 지 모릅니다. 


22살 어린 소년이 영국 군함 ‘비글호’에 오른 건 말이죠. 1831년이었습니다. 다윈은 5년 간 비글호를 타고 전세계를 돌아다녔습니다. 비글호의 임무는 ‘해양 탐사’. 5년 간 항해를 하며 들렸던 갈라파고스에서 그는 ‘핀치’를 관찰했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수많은 종류의 작은 새 핀치를 관찰했죠. 분명 뿌리는 핀치인데 부리가 짧은 핀치, 긴 핀치 다양한 종류의 핀치를 관찰하며 다윈은 무언가 이들에게 영향을 미쳐 다양한 종이 한 뿌리에서 생겨났구나를 직감할 수 있었죠. 그 키워드는 ‘적응’이었습니다. 


찰스 다윈이 ‘진화론’ 출간을 망설였던 이유


영국은 아직도 ‘여왕’이 ‘반인반신’의 권위를 누리는 보수적인 나라입니다. 진화론은 아직도 ‘신이 인간을 만들었기에 인간은 특별하다’고 믿는 종교계와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영역입니다. 다윈이 ‘종의 기원’을 펴낸 해가 1859년이었죠. 인간은 신이 창조한 특별한 존재라는 종교적 믿음이 사회를 움직이던 때였으니 그는 그의 생각을 적은 ‘종의 기원’이 출판된다면 얼마나 큰 반향을 일으킬 지 미리 알고 있었던 듯 합니다. 그는 실제로 종의 기원에 이렇게 적었죠. 


“나는 박물학자로서 대영제국 군함 ‘비글호’에 타고 있었을 때 남아메리카에 살고 있는 생물의 분포와, 이 대륙의 과거의 생물과 현존 생물과의 지리적 관계에서 볼 수 있는 어떤 사실에 매우 흥미를 느꼈다. 1837년 본국에 돌아왔을 때 아마 이 문제에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는 모든 사실을 꾸준히 모으고 또 고찰한다면 이 문제에 관하여 어떤 무엇이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내 머리에 떠올랐다. 나는 1844년 결론의 개요를 만들었는데 당시 이 결론을 나는 확실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후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이 문제를 추구해왔다. 내가 이와 같이 사적인 일을 말하는 것은 내가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성급히 굴지 않았다는 것을 이 사실들이 나타내 주기를 바라기 때문인 것이므로 양해해달라. 나의 연구는 1859년 거의 다 끝났다” 


그가 28년이라는 시간을 강조해야만 했던 데는 어쩌면 그만큼의 정당성을 담보받기 위해서였는지 모릅니다. 사실 그가 서둘러 책을 출판해야 했던 데는 이유가 있었거든요. 월리스라는 자연사학자 때문입니다. 사실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라는 개념을 가장 먼저 논문으로 작성한 사람은 월리스였죠. 월리스는 말레이 제도에서 8년 간 포유류부터 딱정벌레류까지 12만 5,660점의 동물 표본을 채집했고 1862년 확신을 가지고 영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종의 기원에 얽힌 수수께끼를 풀자마자 논문으로 써서 다윈에게 보냈고요. 아마 다윈이 이미 종의 기원의 실마리를 찾았다는 사실을 몰랐을 지 모릅니다. 망설이고 있던 다윈은 윌리스의 편지를 받자마자 자신이 쓴 에세이의 요약본과 월리스의 논문을 1858년 학회에 발표합니다. 자신의 이름을 앞에 뒀죠. 물론 월리스에게 중요한 건 ‘과학적 발견의 순수한 기쁨’이었던 듯 합니다. 다윈과는 평생 사이좋게 지냈다고 하네요. 어쨌든 보수적 영국 사회에서 ‘세상을 뒤집을 이론’을 발표하는데 다윈은 그만큼 신중했고 월러스라는 사람이 같은 연구 결과를 냈다는 걸 몰랐다면 어쩌면 이 책은 출판되지 않았을 지 모르겠습니다. 




종의 기원은 수학과 물리의 어려운 용어로 가득한 다른 과학책들과 달리 꽤 읽을만합니다. 저도 종의 기원을 큰 무리 없이 읽었을 정도이니까요. 다윈은 어려운 수학 공식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 아닌, 맬서스의 ‘인구론’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맬서스는 익명으로 출판한 인구론을 통해 ‘지금처럼 인구가 늘어나면 식량을 증산해도 당하지 못한다’고 했죠. 식량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인구가 늘면 지구는 어떻게 될 것인가 집중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다윈은 조금은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생존경쟁’은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전 동물계와 식물계에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고, 변이를 통해 생존 기회를 높이고 결국 유리한 변이는 보존되고 불리한 변이는 소멸되는 ‘자연선택’의 결과로 진화가 거듭되어 온 것이다.’라는 생각이었죠. 


이제 그에게 필요한 건 증명이었습니다. 수정, 유전, 변이에 관해 알려진 게 아무것도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요즘도 우리는 ‘적자생존’이라는 말을 많이 쓰죠. 다윈은 철학자 허버트 스펜서가 이야기한 ‘최적자 생존’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이제 그가 해야할 일은 ‘최적자 생존’을 증명해내는 일이었습니다. 


그가 육지로 돌아와 제일 먼저 한 건 ‘가축을 사육하는 과정’을 관찰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집비둘기’를 연구했습니다. 사서 기르고 누구에게 받아서 기르고 심지어 박제된 걸 선물받기도 했죠. 런던 비둘기 애호가 클럽에도 두 군데나 가입했습니다. 런트 비둘기, 바브 비둘기, 파우터 비둘기, 터빗 비둘기, 자코뱅 비둘기, 트럼피터 비둘기, 라텁 비둘기…오늘날 우리 눈에 보이는 건 다 똑같은 비둘기지만 그는 비둘기란 비둘기는 다 모았습니다. 비둘기 품종들 사이의 차이는 매우 컸습니다. 그는 이 모두가 한 종류의 비둘기에서 나온 것이라는 통설을 믿었죠. 다윈은 인간이 키우기 쉬운 쪽으로 혹은 도움이 되는 쪽으로 개량해 온 ‘선택’의 힘에 이 변화의 답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게 바로 ‘인위선택’의 힘이었습니다. 물론 ‘변이’ 자체가 인간에 의해 일어나는 건 아니었죠. 인간은 생물을 새로운 생활조건 하에 노출시켰을 뿐이고 자연이 그 생물에 작용해 그걸 ‘변이’시켰으니까요. 


자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연은 나약한 인간의 힘이 통하지 않는 곳입니다. 인간은 우리의 이익을 위해 선택을 했지만 자연은 자연이 보호하고 있는 생물의 이익을 위한 선택을 했죠. 인간이 존재하기 훨씬 이전부터 자연은 그렇게 ‘자연선택’의 산물들을 축적해왔습니다. 매년 천 개의 종자를 만들어 내지만 그중 평균 한 개만이 성장하는 식물은 이미 그 땅에 무성한 같은 종류 또는 다른 종류의 식물과 경쟁하고 있었습니다. 나무들에 붙어사는 겨우살이는 나무들과 경쟁하고 있었죠. 겨우살이가 많이 붙으면 나무는 영양분을 뺏겨 시들고 죽어야 했으니까요. 결국 자연에서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혹은 선택하지 않아도 힘 있고 건강하고 행복한 개체들이 살아남아서 번식해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크지 않았습니다. 아주 조금씩, 경미하게 매일 달라졌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언제나 어디서나 그랬습니다. 인간의 시곗바늘로는 절대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말이죠. 





자연에서는 모든 생명체가 ‘생존경쟁’의 룰을 따라야 했습니다. 어느 종이나 마찬가지로 주기적으로 생산되는 많은 개체들 중 수많은 개체들이 죽고 소수만이 살아남아야 했습니다. 이건 곧 자연의 법칙이기도 했습니다. 종의 기원이 위대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지구에 살아있는 모든 생물에게는 ‘진화’라는 공통 분모가 있다는 걸 증명했기 때문이죠.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증거’없이는 말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진화론은 ‘가설’이 아닌 ‘이론’입니다. 수많은 과학자들의 검증을 거쳐 반박이 불가능해진 ‘이론’이죠. 


확실 한 건 여기서 나와 경쟁하고 있는 우리 모두는 나무 한 그루, 새 한 마리 할 것 없이 ‘아름답고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많은 종류의 식물, 숲 속에서 노래하는 조류들, 곤충, 벌레들… 어떤 생물이든 우리 주위에서 작용하고 있는 이 ‘진화’에 의해 태어났습니다. “자연과의 투쟁에서, 기아와 죽음 속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놀라운 무한한 형태가 생겨났고 진화되고 있다는 견해는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 다윈은 종의 기원 말미에 이렇게 적었죠. 


일상이 경쟁이라고들 말합니다. 어쩌면 ‘경쟁’은 우리의 운명일 지 모릅니다. 우리가 살아남은 이유는 결국 치열한 경쟁의 산물이니까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조금씩 변하고 있습니다. 다윈이 ‘자연은 도약하지 않는다’고 했듯 결국 인간을 비롯한 지구 상에 존재하는 어떤 존재도 주위와의 관계에서 경쟁하고 적응하고 변이하고 있습니다. 뻐꾸기가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는 본능 같은 것들도 ‘본능의 우발적 변이’라는 자연선택을 따라 서서히 점차적으로 변화해 생긴 본능일 것입니다. 인간의 본능 역시 인간의 생존에 이익이 되는 한 자연선택에 의해 보호되고 축적됩니다. 우리가 가진 본능 역시도 마찬가지겠죠. 하지만 어떤 본능은 완전하지 못하고 과오에 빠지기 쉽습니다. 당연한 일이죠. 진화론을 이해한다면 우리가 때론 부족하고 미숙한 이유도 알 수 있을 겁니다. 진화론에 따르면 결국 내 곁의 모든 사람들이 서로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며 살고 있는 것이고 우리는 서로 존재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며 살아가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됩니다.


다윈은 중력의 법칙 역시 ‘종교를 파멸시키려는 것’이라고 공격당했지만 중력은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견이 됐다고 했습니다. 다윈은 현존하는 종 가운데 멀고 먼 미래까지 어느 종류이건 그 자손을 전하는 것은 극히 소수일 것이라고 봤습니다. 100만 년이라는 말의 뜻도 알지 못하는 감히 내다볼 수 도 없는 인간은 지금 어디쯤 와있을까요. 어디에 와있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름답고 위대한’ 나와 나를 둘러싼 모든 생명을 보듬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우리 모두가 사라지고 나면 잊혀질 수 있는 한 없이 약한 존재이지만 그러나 장엄한 역사의 아름다운 한 시절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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