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지은 Jun 09. 2021

전파로 존재를 증명하는(보이지 않는) 숨쉬는 별들

우리의 노력도 보이지 않는 곳에 쌓이고 있겠죠

우주를 보는 눈이 되어주는 '전자기파'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모든 건 그 속을 들여다봐야 진짜 가치를 느낄 수 있다는 말이다. 이 말은 우주에도 통한다. 만일 보이는 것만 믿어왔다면 우리는 여전히 우주의 존재를 모르고 살아갈 것이다. 우주에는 세는 것 조차 의미가 없는 수의 별들이 있다는 것도. 보이지 않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주위에는 수많은 파장들이 지나다니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빛이 아니다. 우리가 빛이라고 하는 건 실은 '전자기파'의 한 종류일 뿐이다. 우리 눈에 보이는 건 가시광선 뿐. 우리의 삶에는, 그리고 그 범위를 우주까지 넓혀보더라도 감마선, 엑스선, 자외선, 전파...등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전자기파들이 우주를 지배하고 있다. 당장 우리가 듣는 라디오는 전파를 타고 흐르며 TV도 마찬가지다. 휴대전화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과 통화할 수 있는 비결도 전파 덕이다. 우주에서 오는 신호도 전자기파로 분석한다. 우리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별들을 관찰할 수 있는 것도 다 전자기파 덕이다.


다채로운 우주의 언어


우주의 언어는 다채롭다. 가시광선은 지구에서나 유행하는 전자기파일 뿐이다. 전자기파 중에서 파장이 짧은 축에 속하는 가시광선은 멀리 갈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단거리 달리기 선수인 셈이다. 파장이 가장 긴 전자기파인 전파는 우주에서 장애물에 굴하지 않고 오래 날아갈 수 있다. 마치 마라톤 선수처럼. 그래서 우주에선 감마선, 자외선, 엑스선, 전파 등 다양한 전자기파들이 주류다. 블랙홀의 관측도, 저 먼 어느 별의 움직임도 가시광선보다 다른 눈에 보이지 않는 전자기파를 타고 우리에게 존재를 알린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시광선 말고 지구에 들어올 수 있는 건 파장이 가장 긴 '전파' 뿐이다. 우주에서 전파가 온다는 걸 처음 발견한 과학자는 '칼 잔스키'다. 벨 연구소에서 전파를 연구하는 일을 하던 그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전파 신호가 반복해서 기록되는 걸 보고 처음엔 천둥에서 오는 전파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 전파가 지구의 자전 주기와 함께 반복된다는 걸 안 그는 이게 우리 은하의 별 밀집 지역에서 오는 거라는 결론을 냈다.


전파는 지구 대기를 장애물 없이 통과할 수 있다. 비가 와서 해가 들지 않는 날에도 잔스키가 그랬던 것처럼 먼 별의 전파를 감지할 수 있다. 그러나 제 아무리 큰 전파 망원경이라 해도 우주의 한 점에 있는 망원경 한 개에 기댄다는 것은 모래에서 바늘찾기일 수 밖에 없다. 이제 전파 천문학자들은 멀리 떨어져 있는 망원경들의 데이터를 조합해서 그 두 망원경 거리만큼의 큰 망원경 하나를 가진 것 같은 해상도의 이미지를 얻을 수 있는 '간섭계'의 방법을 쓴다. 하와이에서 푸에토리코에 이르는 10개 전파 망원경을 다 합하면 그만큼 큰 전파 망원경을 얻는 거나 마찬가지의 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이걸 찾아낸 과학자 마틴 라일은 (아래 나오는 또다른 천문학자와 함께) 1974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최근 찍은 블랙홀 영상도 지구 곳곳의 전파망원경들을 사용했다. 이들을 연결해 지구만한 전파망원경을 활용해 블랙홀의 사진을 찍어낸 셈이다.



출처=노벨위원회




우리는 다양한 수단으로 별을 본다


우주로 나아가면 흔하게 볼 수 있는 다양한 빛들은 우리에게 우주의 존재를 더 잘 알게 해주는 하나의 수단이 된다. 별은 빛을 방출하는 천체이기 때문에 여러 파장의 빛을 동시에 방출한다. 온도에 따라 특정 파장의 빛이 더 많이 방출된다. 전파 말고도 다양한 빛이 우주를 질주한다. 온도가 높은 별들은 짧은 파장의 빛을, 온도가 낮은 별들은 적외선이나 전파 같은 긴 파장의 빛을 주로 방출한다. 안타깝게 지구로 들어오지 못하는 또 다른 종류의 빛을 감지하기 위해 지구인들은 우주로 망원경을 쏘아 올렸다.



출처=나사 / 찬드라 엑스선 망원경이 찍은 우리 은하 사진


감마선 망원경으로 관찰하면 우리 은하 여기저기서 감마선의 폭발을 관찰할 수 있다. 엑스선 역시 지구 대기를 통과하지 못한다. 찬드라(Chandra) 엑스선 망원경이 우주 위에 떠있는 이유다. 자외선 망원경도 있다. 우주에서 발생하는 적외선을 검출하는 적외선 망원경도 있다. 가시광선으로는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던 수많은 별들이 다양한 전자기파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지구에서 가장 큰 전파 망원경, 톈옌


중국은 뭐든 크기에서 앞서 나간다. 지름만 500미터인 중국의 전파 망원경은 2020년 1월부터 본격 가동됐다. 이미 시험 가동 때부터 펄서를 관측했다. 지금까지 관측한 펄서는 200개 이상.


펄서는 마치 일정한 간격으로 호흡하는 '숨 쉬는 별'이다. 규칙적인 짧은 전파 신호를 보내는 중성자별인 펄서는 강한 자기장으로 빠르게 회전한다. 1초에 200번을 돈다.(J0030+0451의 경우) 질량은 태양 정도 수준인데 지름은 10km로 매우 작다. 도는 속도만 빠른게 아니다. 우주를 달리기도 한다. 얼마나 빠른지 나사는 펄서가 거의 시속 400만 킬로미터로 우주를 달린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를 6분 만에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강렬한 펄스에서 방출되는 전파는 초고속으로 우주로 뿜어져 나가고 우리에게도 전파로 와서 닿는다. 거리는 각자 다르지만 J0030+0451 같은 경우는 1,100광년 떨어져 있다. 빛의 속도로 1,100년을 가야 나온다는 뜻이다.


(얼마나 빨리 회전하며 빨리 달리는 지는 아래 영상을 보시면 더 확실하게 체감하실 수 있어요)



(참고로 펄서를 처음 관측한 건 1967년 영국 케임브리지 근처 멀라드 전파천문대였는데 대학원생 조슬린 벨 버넬이었다. 1968년 그녀의 지도 교수 안토니 휴이시와 함께 네이쳐에 '백색 왜성 또는 중성자 별의 진동과 관련 있을 수 있는 특이한 신호가 있다는 내용으로 논문이 발표됐다. 1974년 안토니 휴이시는 펄서 관측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사설이 길었지만 이 거대한 펄서를 관측하는 일도 전파 망원경이니까 가능한 일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별을 전파로 느끼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다. 눈에 보이는 빛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큰 세계가 보이지 않는 저 너머에 있다. 우리 곁의 무언가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작다고 하거나, 폄하할 수 있거나,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님을 과학을 보면 늘 느끼게 된다. 가끔 내가 뭘하고 사는 지 모를 때, 나의 앞날이 그려지거나 쉽게 보이지 않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언가를 하고 있다면 나의 이 노력들이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고 생각하면 위안이 될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내가 이 짧은 글을 긴 시간 정리한 이유가


수십억 광년 떨어진 별에서 엉겁년의 시간을 날아 지구에 도착한 희미한 별빛은 전파망원경의 미세한 떨림을 통해 우리 앞에 자신의 모습을 꺼내놓는다. 라는 이 한 문장 때문이었다는 생각을 하니 순간 허탈해지지만.ㅎㅎ나의 보이지 않는 노력도 헛되지 않는 날들이 되길.






매거진의 이전글 화성 나는 헬리콥터 인제뉴어티의 6번째 비행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