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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화 작가 Feb 08. 2020

출간된 지 1년 넘은 책의 알 수 없는 운명

평균적인 현실과 가능성에 대해


 작가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한 번씩 이런 말을 듣습니다. "책에도 나름의 운명이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건 이 책이 어떻게 탄생해 어떤 독자들에게 어떻게 전달될지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썼다고 꼭 많은 독자들에게 선택받는 것도 아닙니다. 때로는 힘든 과정을 거쳐 탄생한 책이 그냥 묻히기도, 가볍게 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합니다. 출판사 관계자들과 이야기해봐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고. 노력과 결과의 상관관계를 파악하기 어렵다고. 진짜 책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운명이라도 있는 게 아닐까 싶다고.




 다만 어느 정도 흐름을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출간 초기 몇 주간의 반응을 보는 겁니다. 대개 출간 초기의 반응에 따라 이 책이 얼마나 많은 독자들에게 전달될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될지 운명이 정해지곤 합니다. 예전엔 3~4개월까지를 초기로 보기도 했습니다. 수많은 책이 나오고 호흡이 빨라진 요즘, 그 기간은 점점 단축되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영화도 음원도 마찬가지입니다. 2주만에 베스트셀러가 정해지기도 하죠.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역주행하는 경우도 있지만, 역주행이 주목받는 건 그만큼 희귀한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출간된 지 1년이 지났다? 사람들에게 거의 잊혀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타 도시로 내려가는 고속버스 안이었습니다. 모르는 분께 연락을 받았습니다.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00대 재학생들과 독서캠프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작가님의 책 <꿈 따위는 없어도 됩니다> 도서로 계획하고 있고요. 학생들과 저자 강연회와 같은 방법으로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으면 하는데, 혹시 가능하실까요?"




 버스 안에서 비몽사몽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던 걸까요, 아니면 제정신으로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어서일까요. 이게 진짜 저에게 온 연락인지, 제가 잘못 확인한 건지 확인하느라 메시지를 몇 번을 다시 읽었습니다. 분명 저에게 온 연락이었고, 제 책을 이야기하고 있는 게 맞았습니다.




 제가 놀랬던 건 당시 <꿈 따위는 없어도 됩니다>는 출간된 지 1년을 부쩍 넘긴 책이었다는 겁니다. 빠르게 신간이 구간이 되는 요즘, 도서 시장은 물론 이미 읽어주신 독자님들에게서도 점점 잊혀갈 만한 시간입니다. 그런데 그런 책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주목을 받고, 무려 독서캠프의 선정 도서가 된 것입니다.




 더군다나 행사를 진행하는 곳이 대학교였습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꿈 따위는 없어도 된다'는 발칙한 제목의 책을 선택한다는 게 일반적이지는 않습니다. 물론 앞이 창창한 학생들의 꿈을 말살시키려는 불순한 의도를 담은 책은 아닙니다. 강요된 꿈과 열정에서 벗어나, 자신을 아끼고 성장하며 진짜 꿈을 그려가는 방법과 태도를 담고 있는 책입니다. 이 내용과 의도를 알고 있다면 모르지만, 제목만 봤을 때 학교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하기 쉽습니다. 수많은 정보에 노출되는 요즘, 굳이 한 번 더 파고들어 내용과 의도를 파악하는 수고를 들일 이유가 많지 않으니까요.



 





 궁금했습니다. 도대체 이런 결정을 내리신 분들이 누군지 말이죠. 드디어 담당자분들을 만났고 그분들에게 말했습니다. 일반적이지 않은 제목에도 불구하고, 제 책을 선정해준 기획자와 그걸 또 승인해준 결재권자가 어떤 생각이었는지 궁금했다고, 수많은 책 중에서 제 책을 선택해준 게 고마웠다고. 그런데 제 생각과 반응이 달랐습니다. 그냥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거라 판단해서 책을 선택했다고 했습니다. 나머지는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계신 듯했고요.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오히려 제가 과민반응하고 있다는 걸. 어쩌면 편견과 고정관념이 가장 큰 사람은 저였는지도 모릅니다. <꿈 따위는 없어도 됩니다> 라는 제목은 학교와 같은 단체에서 찾지 않을 거라고, 게다가 이미 나온지 1년이 넘은 책은 사람들이 찾지 않을 거라고. 




 결국 "내가 바라는 진짜 나, 그리고 자기계발"이라는 주제로 독서캠프가 열렸습니다. 학생 분들은 사전에 제 책을 읽고, 팀을 만들어 자신들의 목소리로 서평을 프레젠테이션했습니다. 일반적인 프레젠테이션이 아니라 상황극을 펼치는 팀도 있었습니다. 전 그 귀한 발표들을 듣고, 학생 분들 앞에서 강연을 했습니다. 생각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이런 방식의 활동이 기획될 수 있다는 것 자체도 몰랐으니까요. 게다가 본인의 인생책이라며 사인을 받으러 와준 학생까지. 그 날의 행사는 제가 작가로서 경험할 수 있는 호사였습니다.







 분명 평균적인 현실은 있습니다. 책이 나오고 몇 주간의 반응에 따라 책의 운명이 어느 정도 정해진다는 것, 출간 후 1년이 지나면 많은 사람들에게 잊힌다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이게 한계가 되어선 안 됩니다. 평균은 평균일 뿐 가능성 자체는 무한합니다. 따라서 자신의 가능성을 스스로 한계 짓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평균적 현실은 인정하되 언제나 가능성은 열어두었으면 합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게 삶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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