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처음 입사했다면 회사의 복지나 편의 시설을 잘 살펴보자. 사무실 옆에 누워서 쉴 수 있는 접이식 침대가 놓여있다? 위험한 신호일 수 있다. 그만큼 회사에서 밤을 새우는 일이 많을지도 모른다. 조만간 그 침대에 당신이 누워 있을지 누가 아는가. 구글과 같은 해외 유명 기업의 사례처럼 회사 안에 모든 편의 시설이 다 들어 있다? 집에 가지 말고 여기서 다 해결하라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내가 근무하는 본사 건물의 경우 다행히 사무실 내에 침대는 없었고 각종 편의 및 생활 시설이 들어 있지도 않았다. 대신 지하철역 출구 도보 30초 거리라는 초역세권에 있어 교통이 좋았는데, 이게 그만큼 늦은 밤에도 집에 무사히 보낼 수 있다는 또 다른 의미가 있을 줄은 몰랐다.
형광등 몇 개와 모니터 불빛만 남았다. 내가 움직일 때마다 들리는 키보드와 마우스 소리만 들렸다. 창 밖엔 어둠이 깔렸고, 사무실엔 적막이 흘렀다. 마지막까지 함께 사무실을 사수하던 사람들조차 모두 자리를 떠났다. 그럼에도 끝내 마지막 불을 끄고 집으로 향할 수 없었다. 해야 할 일에 끝은 보이지 않았고, 이대로 하루를 넘겼다간 일정에 차질이 생길 게 뻔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11시엔 퇴근하려고 했다. 마지노선은 지하철 막차였다. 오늘은 12시 30분쯤 운행하는 지하철 막차조차 포기했다. 끝내 회사에서 밤을 새우기로 했다. 최근엔 게임도 이렇게까지 한 적이 없는데 일을 이렇게 하고 있다. 무슨 일이든 납기, 마감이 민감한 일은 피곤하다. 그런데 여기서 자유로운 일이 얼마나 될까. 그나마 다행인 건 오래 일할 수 있을 만큼 회사에서 좋은 의자는 마련해뒀다는 것이다. 뭐, 고맙긴 한데 사실 내가 바라는 건 맨바닥에서라도 이제 그만 눕고 자는 거다.
어쨌든 하나씩 받은 편지함 속 이메일을 처리하고, 업무 폴더에 하나씩 문서를 채워 놓고, 온갖 텍스트와 숫자와 도표를 만들어나갈 때였다. 사무실 밖에서 작은 인기척이 들렸다. 사무실 및 건물 전체를 청소해주시는 분들이었다. 시계를 봤다. 늦은 밤이라기보다는 이른 새벽. 지하철 첫 차조차 운행하지 않는 시각. 학생 시절, 친구들과 밤새 놀고 지하철 첫 차 혹은 새벽 버스를 타고 귀가한 적이 있었다. 그때, 하루를 연장해 즐긴 나와 달리 하루를 앞당겨 시작하시는 분들을 보며 놀라곤 했는데, 이분들이 그런 분들이었다. 그래도 이분들 덕분에 밤을 새도 적어도 깔끔한 사무실에서는 밤을 새우고 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젠 청소하시는 분들도 없었다. 우리 층 청소를 다 끝내셨는지 몇몇 확인을 하시곤 다른 층으로 이동하신 지 오래다. 다시 적막한 시간을 홀로 채우고 있을 어느 때쯤, 다시 또 사무실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런데 아까와는 뭔가 느낌이 달랐다. 등 뒤로 다가오는 속도와 크기가 청소하시는 분들의 그것과 달랐다. 고개를 돌렸다. 우리 팀 상사였다. 아직 새벽 6시를 얼마 남기지 않은 시간이었다.
깜짝 놀라는 나와 눈이 마주친 상사는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일찍 왔네?"
그냥 할 일이 좀 있어서 그랬다고 말씀드렸다.
아, 잠깐만. 근데 뭔가 이상하다. 분명히 나에게 일찍 왔다고 하셨다. 왜 아직도 집에 안 갔냐고 물어본 게 아니었다. 생각해 보자. 이 시간에 부하 직원이, 그것도 부서 막내가 잔뜩 피곤한 얼굴로 사무실에 앉아 있다면 '얘가 밤을 새웠구나'라고 여길 법하지 않나. 그런데 상사는 '일찍 왔네'라며 인사했다. 그 말은 곧 이 시간은 충분히 출근할 시간이라는 의식이 박혀있다는 겁니다.
당연하다. 실제로 상사는 이 시간이면 어김없이 출근하고 있었으니까. 또, 상사가 회사 생활을 하는 수 십 년 동안 꽤 많은 사람들이 이 시간에 출근해 일을 시작했을 테니까. 단지 내가 이 시간에 앉아 상사를 만난 게 처음이었을 뿐이다.
그렇다. 내가 일하는 곳은 이런 곳이었다.
(다음 글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