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링을 당하고 말겠어

멘토링 기간인데 멘토가 없어

by 이태화 작가


고대 그리스의 이타이카 왕국의 오디세우스 왕은 트로이 전쟁에 출정하며 친구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한다. 자신이 없는 동안 아들 텔레마코스를 돌봐달라는 것이다. 트로이와의 전쟁은 수년, 수 십 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승리를 거둔다고 한들 자신이 살아서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었다. 만일의 경우 자신을 대신해 텔레마코스가 국가를 이끌어야 했다. 오디세우스 왕의 부탁을 받은 그의 친구는 무려 20년간 텔레마코스의 동료이자 선생님, 때로는 아버지의 역할을 맡으며 왕자의 성장을 돕는다. 이는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에 나오는 이야기로, 친구의 이름이 멘토르Mentor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멘토의 어원이 여기에서 나왔다.



한 사람의 인생을 이끌어 주는 조언자, 멘토. 어느 분야에서든 자신의 멘토가 있을 때 분명 더욱 성장할 수 있다. 많은 신입사원들이 회사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회사 생활도 업무도 모두 낯설기 때문이다. 나 역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모든 용어와 업무 시스템이 생소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새롭게 배워야 할 일 투성이었다. 아무리 많은 시간을 투입해도 요구하는 업무량을 따라갈 수 없었고, 팀 회의를 하더라도 나 홀로 겉돌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프로 축구팀에 아마추어가 한 명 들어간 느낌이랄까. 이런 어려움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회사는 신입사원과 팀 내 상사를 멘토-멘티로 엮는 멘토링 제도를 운영했다. 일정 기간 동안 함께 정해진 활동을 하며 업무도 배우고 친분도 쌓으며 회사 생활에 잘 적응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안타깝게도 나의 멘토는 그리스 신화 속 멘토만큼이나 닿으래야 닿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상상 속 인물이어서가 아니었다. 분명히 월급을 받고 있는 실존 인물이었다. 성격이 맞고 안 맞고의 문제도 아니었다. 직급 차이의 문제 역시 아니었다. 닿으래야 닿을 수 없었던 건 기본적으로 회사 사무실에 도통 나타나질 않아서였다.



나의 멘토는 바빴다. 책상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기 힘들었다. 전국 곳곳으로 출장을 나갔고, 기껏 사무실에 온 날에도 상사들에게 보고서를 올리고 회의를 하더니 곧바로 짐을 싸서 다시 또 출장을 나갔다. 어디 밑 보인 탓에 저 멀리 외딴섬으로 유배라도 가는 걸까. 상사들이 많이 찾는 걸 보니 유배는 아닌 듯하다. 혼자 디지털노마드의 삶을 즐기는 건가 의심도 해봤지만 우리 회사에 그런 제도는 없었다. 일주일에 한 번 볼까 말까에, 심지어 멘토링 제도 설명회조차 나 혼자 멘토 없이 참석할 뻔했다. 그나마 다른 상사가 대신 참석했다.



멘토르는 텔레마코스가 훌륭한 재목으로 성장하도록 20년간 돌봤지만, 나는 멘토와 20분도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부모의 양육 방침이 각자 다르듯 멘토의 멘토링 방침도 각자 다르지 않겠는가. 나를 강하게 키우려는 멘토의 설계라고 여기기로 했다. 어차피 여기는 학교가 아니지 않나. 누군가 커리큘럼을 제시해주길 기다릴 게 아니라 내가 알아서 길을 만들어가야 하는 곳이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회사에 멘토링 활동 보고서를 제출해야 했다. 멘토와 멘티가 만나 친목 활동도 하고 회사 생활에 대한 고민도 나누고 업무도 배우는 일련의 활동을 보고서로 증빙해야 했다. 회사 제도가 그냥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어쩌나. 업무 시간에도 멘토를 보기 힘든 데 어찌 업무 외 시간을 내서 멘토링을 하고 보고서를 만들겠는가.



이때부터 나에겐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이름하여 멘토링 당하기. 텔레마코스처럼 왕자의 자리에서 정성스레 멘토링을 받는 게 아니라, 유배를 갔는지 디지털노마드의 삶을 즐기는지 알 수 없는 멘토를 어떻게든 찾아내 반 강제로 멘토링을 받아내는 것이다. 내가 비록 멘티일지라도 멘토링의 주체는 나다. 이 멘토링 제도는 철저히 내가 주도하고 이끌어간다. 반드시 멘토링을 받아낼 것이다.



조류학자가 철새 서식지와 도래 시기를 연구하듯 나는 멘토의 활동을 추적했다. 그는 언제 사무실에 있는가. 그의 출장 일정은 어떻게 되는가. 주로 어디를 돌아다니는가. 사무실에 있을 땐 언제 잠깐의 여유를 갖는가. 그때 나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함부로 접근해서 기회를 놓쳐선 안된다. 결정적 순간을 잡아 야생 동물을 촬영하는 것처럼 나 역시 멘토링의 기회를 잡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해야 했다. 내게 단 1분이 주어지더라도 반드시 멘토링을 받아내야 했다. 나는 멘토링 보고서를 쓰는 건가 멘토 관찰 보고서를 쓰는 건가.



“자, 지금부터 멘토링을 시작하겠습니다” 따위의 여유는 없었다. 따로 여유 있게 대화를 나눌 시간도 없었다. 평소에 잠깐씩 대화가 가능한 시간, 멘토가 이동 중일 때나 팀 단체 회식 등이 기회였다. 이때 자연스러운 멘토링을 유도했다. 마치 인터뷰를 끌어내는 느낌이다. 서부 총잡이마냥 언제든 바로 꺼낼 수 있도록 책상 서랍 제일 위에 멘토링 서류를 폴더에 담아 보관했다. 멘토링 보고서에는 멘토와 멘티가 각자 작성할 영역이 나뉘어 있었다. 그런 걸 가릴 때가 아니었다. 일단 내가 대화 내용을 바탕으로 전부 작성한 뒤 멘토에게 수정만 받는 식으로 접근했다. 멘토링 기간 3개월. 활동 증빙 사진을 찍고 영수증 처리를 하고 기간별 활동 보고서를 만들어 제출하고. 결국 무사히 멘토링 당하기 프로젝트를 완수했다.



이게 진짜 사내 멘토링 제도의 의도에 부합되는지는 모르겠다. 당연히 아닐 것이다. 3개월간 업무에 대해 멘토로부터 직접 배운 건 많지 않았다. 이후에는 멘토에게 정말 많은 것을 배웠지만 멘토링 제도 기간 동안만큼은 신화 속 인물만큼이나 만나기 어려웠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하필이면 이 기간이 멘토에게 온갖 일과 문제가 다 몰렸을 때였다. 멘토로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덕분에 중요한 걸 연습했다. 눈치껏 끼어 들어가기.



상사에게 질문하거나 부탁하는 게 어려웠다. 혹시나 상대방이 일을 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을까 싶어 나 혼자 다 해내려고 하거나, 그래도 도저히 안될 경우 아니면 한참을 기다렸다가 상대방이 여유가 있다는 확신이 들 때야 말을 걸었다. 좋게 보면 배려다. 하지만 일을 하며 이런 태도가 오히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전체 업무 효율을 낮출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의 배려 아닌 배려로 때를 놓칠 수 있고, 때를 놓친 일은 시간이 지날수록 부하가 커지기 때문이다.



워낙 바쁜 멘토를 둔 덕분에 내 고정된 성격과 업무 패턴을 극복하는 연습을 할 수 있었다. 나아가 어떻게 하면 배려를 하면서 요령껏 말을 걸고 부탁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궁리하게 되었다. 그렇게 조금씩 진짜 회사원이 되어갔다.



멘토가 의도한 가르침은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나는 멘토로부터 이런 가르침을 받아내고 있었다. 멘토는 멘티에게 어떻게 하면 잘 조언해줄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겠지만, 멘토로부터 어떻게 하면 조언을 잘 받을까를 고민하는 건 멘티의 몫이다. 사내 멘토링이 나에게 준 교훈이다. 이건 텔레마코스가 부럽지 않다.


이전 08화입사 후 첫 팀에 배치되는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