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님의 3가지 조언
‘이 한순간에 내 회사 생활이 결정될 수 있다.’
신입사원 입문교육의 끝에는 가장 긴장되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팀 배치다. 학창 시절, 많은 사람들이 먼저 취업한 선배들에게 물었다. 회사 분위기가 어떠냐고. 그들의 답변은 대부분 비슷했다. “팀마다 달라요. 팀바팀! team by team 케바케! case by case” 그만큼 팀 배치는 나와 동기들에게 중요했다. 같은 회사에, 심지어 같은 직무로 들어왔어도 들어간 팀에 따라 회사 생활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입사할 회사를 정하는 것만큼이나 들어갈 팀을 고르는 건 중요한 일이었다.
각 팀마다 담당자가 찾아와 어떤 일을 하며 팀의 특징은 무엇인지 간략히 소개했다. 소개를 모두 들은 뒤 나와 동기들은 각자 원하는 팀의 희망 순위를 적어 제출했다. 신입사원의 의향과 팀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종 팀이 배치되는 듯했다. 어느 팀에 들어갈까. 지금의 회사를 천직이다 싶어 들어오지는 않았던 것처럼, 팀 역시도 천직이다 싶은 곳은 없었다.
이번에도 역시 과거 기업과 직무를 정할 때처럼 몇 가지 기준을 정해놓고 그중 최선이라 판단되는 곳을 1순위에 적었다. 이제 나머지 2, 3순위로 적었어야 했는데, 사실 나머지는 모두 딱히 끌림도 없고 나에게 큰 의미가 없어 보였다. 그래서 나는 선택했다. 가장 낯선 곳을 적어 내자고. 완전히 생소한 환경으로 나를 내던진다? 그럼 최소한 나의 또 다른 면들을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젊은 시절에 한 번쯤 해볼 만한 가치는 있다.
대망의 발표일. 내 인생은 어떻게 흘러가는 걸까. 세상은 나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고자 하는 걸까. 1순위로 지원한 팀에는 다른 동기가 들어갔다. 대신 난 2순위로 지원한 곳에 배정됐다. 가장 낯선 곳, 학창 시절엔 이런 직무가 있는지 생각도 안 해본 곳, 동기들 중 아무도 1순위로 지원하지 않은 곳. 아마도 2순위라도 적어낸 사람이 나밖에 없었을 곳. 사전에 입수한 정보로는 웬만하면 가지 말라고 했던 곳.
'진짜 이렇게 되네.'
내가 자초한 일이긴 하지만 조금 막막하긴 했다. 그렇다고 “나 저 팀 보내주세요. 네?”라며 생떼를 부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미 결과는 정해졌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에잇. 이렇게 된 김에 한 번 해보자. 하다 보면 그 안에서 또 길이 열리겠지.’
정해진 팀에 소속되는 첫날. 일단 인사팀 근처 회의실로 모였다. 일단 모아놓은 뒤 인사팀에서 각 팀에 연락을 하는 듯했다. 마치 인형 뽑기 기계 속 인형처럼, 누군가 찾아올 때마다 한 명씩 한 명씩 불려 나갔다. 멀리 떨어져 봤자 건물 두 개 층 거리지만, 이제 다시는 못 볼 사람인 것처럼 멀어져 가는 동기들의 뒷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그렇게 점점 동기들은 사라졌고 어느새 마지막까지 함께 자리를 지켰던 동기마저 자기 팀으로 불려 갔다.
한참 시간이 지났다. 그런데 왜 날 데리로 오는 사람은 없는 걸까. 알 수 없는 상황에 놓이면 생각이 많아지고, 생각이 많아지다 보면 창의적인 시나리오를 그리게 된다. 혹시 내 팀에선 오늘 신입사원이 온다는 걸 모르고 있는 건 아닐까, 혹시 오늘은 이렇게 앉아만 있다가 내일부터 팀에 배치되는 건 아닐까, 혹시 전산상에 오류가 있어 아직 내가 무소속으로 남아 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나만 새롭게 팀 배치를 다시 하는 건 아닐까. 기다리고만 있기에는 뭔가 이상했다. 인사팀 담당자를 찾아갔다. 일단 기다리라고 했다. 다시 회의실에서 대기했다. 내 상상력이 한계에 부딪히고도 한참을 지난 시간, 누군가 회의실로 들어왔다.
내 이름을 확인하더니 살포시 웃으며 따라오라고 말했다. 나이가 많지 않아 보였다. 같은 팀 선배가 아닐까. 미소 짓는 모습과 말투를 보니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다. 좋은 분일 거라는 생각은 들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긴장을 놓아서는 안된다. 낯선 환경에 처했을 땐 어떻게든 신경을 곤두 세워 주위 모든 것들로부터 정보를 습득하고 올바르게 해석해야 한다. 그래야 빠르게 일을 배우고 조직 속에 융화되며 살아갈 수 있다. 지금껏 여러 단체 생활을 하며 자연스럽게 익힌 생존 방법이다.
건물 내 몇 개 층 아래로 내려갔다. 유리문을 열었다. 대기하고 있던 층과는 사뭇 다른 기운이 펼쳐졌다. 좋게 보면 역동적이고 나쁘게 보면 치열했다. 선배로 추정되는 사람은 분주해 보이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창가 앞 테이블 옆에 나를 앉혔다. 팀장님이 될 사람의 자리 바로 근처였다. 긴장되지만 긴장하지 않은 것 같은, 그러면서도 긴장을 놓지 않은 신입의 태도를 보이는 복잡 미묘한 자세를 유지했다. 어느 상황에서도 당당한 패기, 그러면서도 눈치껏 자신을 낮출 줄 아는 겸손함. 그 애매한 ‘적당함’을 신입사원에게 요구하니 말이다.
잠시 후 팀장님과의 첫 면담이 시작됐다. 간단히 인적사항을 확인한 팀장님은 대뜸 신입사원에게 조언할 세 가지가 있다고 말했다. 내 무릎 위에는 이미 회사에서 받은 노트가 펼쳐져 있었고 오른손은 재빠르게 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상사가 말씀을 하실 땐 이미 받아 적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라고 각종 처세술 책에서 배웠다. 학생 시절 배운 걸 이제 실전에서 써야 한다.
“첫째, 문서화된 근거를 갖고 일하라. 팩트 fact가 중요하다.”
중요한 조언이었다. 앞으로 커리어를 쌓아가며 내가 챙겨야 할 업무 스타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한 팩트로 기준으로 이야기해야 이해관계자 간의 오해를 줄일 수 있지 않겠는가. 문서화된 근거가 있어야 소통의 오해로 일어나는 뒷 탈도 없을 것이다.
“둘째, 시드 머니 seed money를 모아라. 쓸데없는 데 돈 쓰지 말고 젊을 때 종잣돈을 모아야 한다.”
현실적인 가르침이었다. 이런 조언을 해주실지 몰랐다. 단순히 직장에서 일을 잘하기 위한 방법을 넘어 직장인으로서 잘 살아가기 위한 조언을 해주신 것이다. 꼼꼼히 받아 적었다. 나에게 다 피가 되고 살이 되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을지라도 일단 그런 마음으로 기록해야 한다. 그렇게 처세술 책에서 배웠다.
“셋째, 이발을 하라. 짧게.”
뭐지? 내가 잘못 들은 걸까. 팀장님과의 첫 면담에서 받는 신입사원 세 가지 조언에 이발이 들어가다니. 당시 내 머리가 장발도 아니고 염색한 것도 아니었다. 귀는 물론 눈썹도 덮지 않는 길이로 이미 짧은 머리였다. 그런데 짧게 자르라고? 삭발을 원하나. 아니, 설령 장발에 염색을 했더라도 괜찮은 거 아닌가.
혼란스러웠지만 일단 노트에 받아 적었다. 팀장님은 프로는 샤프sharp해야 된다고 말했다. 나중에야 알았다. 그분이 군인 출신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