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과 저승의 사이에서 해야 할 고민
팍팍하고 고된 이 일상과 일생을 마무리해야 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마무리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나는 어떤 기억을 가지고 떠나야 할 것인가. 정말 다양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순간을 선택해야 한다면 다들 어떤 추억을 끄집어낼까. 망상에 가까운 이 질문에 나는 바로 답을 하지 못했다. 지금의 내 상태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 내가 불행한 인생을 살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수십억이라는 지구의 사람들 중 먼지 같은 존재일지라도 마지막에 가지고 떠날 행복한 기억 하나 없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오래전에 본 영화였다. 망자가 저승으로 가기 전에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주고 저승으로 가져갈 한 가지 기억을 고르게 하는 내용이었다. 누군가는 연인과 사랑을 나누었던 순간을, 누군가는 유년기 다복했던 추억을, 누군가는 가족과의 단란했던 기억을 선택했다. 망자의 이야기를 며칠간 들어준 '회사'사람들은 그 기억을 영화로 재연하는 일을 했다. '여름의 바람과 햇살', '비행기가 가르고 지나가던 솜사탕 구름', '아내와 마지막 대화를 나눈 공원의 풍경' 그 회사 사람들은 이런 기억들을 하나씩 재현하여 영화로 만들고 마지막 날 상영회를 하면서 망자들에게 추억을 선물하고 저승으로 보내주는 일을 했다.
갓 배 뜬 강아지의 단 내, 여름의 한가운데 마루에 앉아 먹던 토마토
그 추억을 '인생의 한 순간'이라고 한다면 나는 어떤 순간이 있을까 오래 고민했다. 불행하다고 느껴온 내 인생도 구석구석 뒤져보니 행복한 순간이 있었고, 또 지금도 행복한 순간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햇살이 따스한 봄날 마당의 일본목련에서 풍겨오는 진한 향과 이제 갓 배가 뜬 강아지 네다섯 마리의 단내를 맡으며 마당을 돌아다니던 기억. 말매미가 우는 여름의 한 복판에서 뙤약볕에 잠자리를 잡다가 시원한 마루에 앉아 어머니가 썰어주신 토마토에 설탕을 뿌려 먹던 기억.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보며 두 팔 뻗어 기어 오는 우리 사랑스럽고 또 귀하디 귀한 아기. 내가 세운 기준인지 아니면 세상에서 강요한 기준인지 모르지만 도달할 수 없는 기준을 쫓느라 어쩌면 나는 소중한 순간들을 고속도로를 지나듯 놓쳐온 건 아닌가. 다른 모든 사람의 추억도 나의 가장 소중한 순간도 사실 사소하고 소소 할 텐데 왜 몰랐을까.
죽음도 삶도 결국 소소한 일상의 한 부분
죽음을 생각한다는 건 우울하고 슬픈 일이다. 그리고 또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일상의 모든 순간이 버겁고 일분일초가 고통스러운 어떤 사람에게 죽음은 도피처라고 생각된다. 휴식이라고 생각된다. 삶이 죽음보다 더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상황이 있다. 하지만 두렵고 큰 일인 죽음도 사실은 내 일상의 곳곳에 스며들어있고, 죽음의 반대의 삶도 사실은 별거 아닌 일상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은 이 모든 버거운 상황들을 조금 가볍게 만들어 준다. 지옥을 문 앞에 두고 가져가야 할 유일한 기억이 살면서 그렇게 집요하게 쫓아왔던 것들이 아니라 일상에서 살갗으로 느꼈던 작고 사소한 것들이었다는 사실로부터 나는 알게 되었다. 그동안 막막하게 나를 짓눌러왔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좇아야 할 것은 그런 거창한 것이 아니라 내 일상을 둘러싼 작은 순간들을 피부로, 눈으로, 소리와 냄새로 풍부하게 느끼는 삶이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