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의 시작
뭘 해야 좋을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고,
마치 안갯속에 갇힌 고독한 인간처럼
꼼짝도 못 하고 멈춰 섰습니다.
- 나쓰메소세키 -
영화 ‘쇼생크 탈출’에는 브룩스라는 할아버지가 나온다. 젊어서 죄를 짓고 감옥에 들어와서 백발의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50년을 감옥에서 생활했다. 브룩스 할아버지는 좋은 사람이다. 다친 새끼 까마귀를 죄수복 주머니에 키우면서 이름도 붙여주고 애벌레를 하나씩 먹여가며 정성스레 키운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친하게 지내던 동료의 목에 칼을 대고 인질극을 벌인다. 형기가 끝나서 사회로 나갈 시간이 되자 다시 죄를 짓고 계속 감옥에 남으려고 사람을 죽이려 한 것이다. 주인공의 도움으로 일상으로 돌아온 브룩스 할아버지는 결국 출소해서 사회로 나온다. 동네 식료품점에서 일자리를 얻지만 매번 관리자에게 눈총을 받는다. 결국 브룩스 할아버지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살던 집에 “브룩스가 여기 있었어요”라고 유언을 남기고 쓸쓸히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학교는 감옥처럼 느껴졌다. 자율학습 시간에 나는 창가로 책상을 돌려놓고 공부를 했다. 하루 중에 유일하게 내 의지대로 환경을 바꿀 수 있는 행위였다. 행동과 사고가 강하게 통제된 환경에서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고민하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고통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가족들의 기대와 옆자리 친구들과의 비교는 누군가 만들어놓은 트랙 위에서 죽을힘을 다해 뛰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나도 낙오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게 두려웠다. 그래서 왜 뛰는지 모르는 채 일단 등 떠밀려 시작한 달리기를 학창 시절 내내 열심히 했다. 그렇게 생각하기를 최대한 자제하고 하라는 걸 하니 처음보다는 덜 고통스러웠다. 무감각해졌다.
학교를 나오면서 느낀 해방감은 정말 짜릿했다. 세세한 것 하나하나 통제받던 환경에서 벗어나서 마음대로 생각하고 원하는 곳에 언제든 갈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가슴 벅차도록 좋았는지 모른다. 평일 낮에 괜히 시내를 걸어 다니며 ’와 정말 나 이 시간에 이래도 되는 거야?‘라고 했으니 참 순진했다. 이후로도 한참 동안 학생이라서 할 수 없었던 것들을 일부러 찾아다니며 해봤다. 그래봐야 뭔가 대단한걸 한 건 아니었지만 난생처음 온몸으로 느껴보는 ‘자유’는 행복함 그 자체였다.
잠깐동안 즐겨본 자유가 사실은 막막함이었다는 걸 아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밤새 놀고 들어와 방이 환해지도록 자고 일어나 천장을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으면 왠지 기분이 찝찝하다. 나 이러고 살아도 정말 괜찮은 건가.. 하고 문뜩 불안감이 든다. 누군가가 정해준 일과에 맞춰 살던 관성에 뭐라도 해야 될 것 같다. 주변사람들은 다들 뭘 그렇게 바쁘게 하고 있는지, 누구는 이미 갈길을 정해서 바쁘게 준비하고 있다고 하고, 누구는 이미 좋은 직장에 들어갔다고 한다. 나는 떡진 머리로 일어나 점심 겸 저녁을 때우고 있는데 이러다 나만 뒤처지는 건 아닐까.. 나도 제대로 사는 상상을 해보지만 현실의 나와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다. 뭘 해야 할지 딱히 떠오르지도 않는다. 다들 한다는 토익공부도 해보고 도서관에서 시험도 준비해 보지만 이게 정말 맞는 건지 확신이 없다. 너무 답답하다.
22살이었던 나의 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