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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miLuna May 21. 2022

복지국가에 살고 있는 게 실감 날 때

가족 휴가제도 변경을 앞두고

H의 고궁분투

아주 오랜만에 회사에 출근했던 금요일, 마침 시간이 맞았던 직장 동료 H와 퇴근을 함께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H는 두 번의 모성 휴가를 거의 연이어 사용했던 터라 내가 핀란드에서 입사한 후 함께 일했던 기간은 길지 않았다. 그랬던 만큼 아이들이 아직 어렸고, 코로나 시기에 아이들이 아프거나 하여 어린이집에 보낼 수 없었던 때에는 아들 둘을 돌보며 일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했다. 게다가 아이들이 어찌나 활발한지 수시로 아래층 주민의 항의 전화를 받는다고 했다. H는 수도권이 아닌 지방 출신이었고, 스페인에서 만난 남편은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온 이민자라 주변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가족 친지가 없다. 정말 부부 둘이서 아무런 도움 없이 아이 둘을 직장생활과 병행하며 키우고 있는 상황이라 가끔 out of office 메시지에서 아이가 아프다는 메시지를 보거나 이야기를 들으면 짠한 기분이 들었다. H는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정말 손이 많이 가는 아이들이라 힘에 부친다는 솔직한 이야기도 했다. 


나에게 어떻게 세 명이나 키웠냐고 물어보는 H에게 한국의 훌륭한 이모님 제도(?)를 설명해 줬다 (한때 나도 미혼일 때에는 다른 여성의 노동력을 전제로 하는 불합리한 근무환경과 사회를 통탄하였으나 실질적으로 아이가 있는 여성이 직장생활을 잘 해내기 위해선 이모님처럼 완벽한 지원도 없다 ㅠㅠ). H처럼 나 역시 지방 출신이고 남편도 이민자였으므로 쉽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곳이 없었던 만큼 이모님의 존재는 특히나 더 소중한 자원이었다. 아이 둘까지는 강력한 남편의 외조 빨로 이모님 없이 어린이집에만 의존해서 버텼는데, 셋째가 갑자기 생겼을 때에는 저녁밥이라도 해 주는 분이 있어야겠다 싶어 면접을 보기 시작했고 운 좋게도 좋은 분들을 만나서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출처 : Valamis

핀란드의 출산용품 선물은 한국에서도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출산하면 받게 되는 큰 상자 안에는 아기를 키우는데 필요한 용품들이 들어있고 상자 자체도 침대로 사용할 수 있다. 이 상자 대신 현금으로 받는 것도 가능한데, 이처럼 임신부터 출산, 모성/부성 휴가, 어린이집, 육아수당, 의료시설 이용 및 검진, 학교 교육까지 모두 국가가 책임지는 일련의 과정이 구성되어 있다.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다니는 엄마는 교통비도 면제되며, 유모차가 쉽게 오르고 내릴 수 있도록 버스의 뒷 문 출입구의 턱은 낮고 유모차와 함께 앉을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유모차나 장애인의 경우 당연히 행사나 줄 서서 입장하는 장소에서 항상 우선적으로 입장할 수 있도록 배려된다. 물론 이러한 국가의 배려와 시스템 그리고 사회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H처럼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은 이곳에서도 쉽지만은 않다. 


변경되는 가족 휴가제도

최근 회사 업무 때문에 올해 8월 1일부터 개정되는 가족 휴가제도를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다. 기간 자체로는 큰 변화는 아니지만 용어와 적용대상을 보면서 이 결정이 나기까지 심도 있는 고민을 한 것이 느껴지는 변화였다. 

(1) 모성휴가/부성휴가에서 부모휴가로 통일

이게 뭐가 대수인가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기존에는 출산을 앞두고부터 시작되는 모성휴가, 그리고 아빠에게 부여되는 부성휴가, 이후에는 부모휴가(육아휴직)가 이어졌다. 물론 부모휴가는 주어진 기간 내에 부모가 나눠서 혹은 혼자서 몰아서 사용하는 게 가능했다. 8월 1일부터는 출산을 하는 부모(엄마)에게 임신 휴가가 부여되고 출산 이후에는 부모가 각각 160일을 사용할 수 있으며, 최대 68일까지는 아이의 다른 부모에게 양도가 가능하다. 즉 출산을 한 엄마가 160일 + 63일을 사용하거나 혹은 160일-63일을 사용할 수 있다 (다른 부모도 마찬가지) 


변경 이유를 들여다보면 긴 모성휴가를 출산하는 엄마 쪽에서만 사용하게 하다 보면 결국 출산여성이 사회에서 임금 및 승진 등 커리어를 쌓아가는 데 있어 불평등을 초래하고 사회적으로 고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따라서 양 부/모가 서로의 합의에 따라 조정할 수 있는 약간의 기간을 주고 공평한 기간을 사용하도록 부여하였으며 용어도 부모휴가로 통일하였다. 


(2) 다양한 가족형태를 포용

이전 제도에서도 싱글맘이나 동성 부모, (다)쌍둥이, 입양부모 등을 포함하는 제도였으나 이번 개정에서 자세한 설명을 할 때 보면 젠더를 지칭하는 용어를 없애고 "출산하는 부모", "아이의 다른 부모" 등의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좀 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포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덴마크 역시 가족 휴가제도의 개편을 예정하고 있는데, 여기선 한 발 더 나아가 좀 더 현실적으로 부모휴가(육아휴직)의 일부를 실제 아이를 케어하는 사람(예. 조부모)에게도 양도할 수 있다.   

   


휴가 관련된 법(Holiday Acts)을 보았을 때에도 여름휴가는 4주 연속 가는 것을 권장하고 최하 2주 연속 이어서 가도록 하는 게 법으로 정해져 있는 게 너무 신기했는데, 이번에 개정을 앞두고 있는 가족 휴가제도를 보고도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우리는 이미 문 닫았..). 기간이 늘어난 만큼 사용되는 세금도 늘어나겠지만 제도의 변화를 통해 불평등을 개선하고자 하는 방향성이 긍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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