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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엄마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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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이 Sep 10. 2020

팔이 굵어 슬픈 엄마여..

나도 반짝이던 시절이 있었었었지..

십몇 년 전,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들어갔던 회사에서 나는 막내였다. 열명이 조금 넘었던 우리 사무실에서 나 혼자 20대의 아가씨였고, 막내라는 이유로 30대 후반~40대 중반까지의 선배들에게 참 예쁨을 받았었다.


"설이샘은 참 예뻐."


"그럼 그럼, 그냥 반짝반짝 예쁜 나이야."


수험공부에 지치고 힘들었던 나를, 아무 이유 없이 그저 예쁘다고만 해주시는 분들 사이에서 나름 행복했던 것 같다. 분위기 좋았던 우리 사무실에서는 액세서리나 예쁜 옷, 슬리퍼 등을 종종 공동구매식으로 배송비도 아낄 겸 함께 주문을 하곤 했었다. 한 번은 반팔 블라우스를 함께 주문했었다.


"설이샘은 S 입을 거지?"


"아뇨, 저 낙낙한 거 좋아해서 M이요. 샘은 S죠?"


"아니, 나도 M이야."


통통한 55였던 나는 (그래도 55였던 시절이 있었었었다 ㅋㅋ) 고민하다 M을 골랐고, 허리가 26이던 날씬한 선배도 M을 골랐다.


"난 L로 주문해줘."


의아해하고 있는데, 나랑 비슷한 체격의 선배가 L을 골랐다. 막내라 취합을 하던 내 의아함은 더 커졌다.


"저도 M인데, 샘이 왜 L이에요? 그리고 샘은 왜 M이에요?"


궁금증 가득한 내 얼굴에 애기 엄마였던 선배들은 아이를 기르다 보니 팔만 굵어졌다고 웃으셨다. 옷이 도착하고 입어보니, 정말 그 선배들의 옷은 몸은 낙낙하게 맞았지만 팔은 딱 맞았다.


"아줌마랑 아가씨의 차이가 팔뚝이야."


몸에 비해 유난히 목과 팔이 가는 나를 보며, 이 가느다란 팔도 아줌마가 되면 굵어질까 하며 선배들은 지금이 좋을 때라고, 다시 내게 예쁘다고 해주셨었다.




오늘 아침 출근 준비를 마치고 거울에 내 모습을 비춰보는데, 블라우스의 짧은 소매 아래로 굵은 내 팔뚝이 눈에 들어왔다. 이리저리 돌려봐도 튼실하게도 굵은 내 팔에 내가 충격을 받아 카디건을 걸쳐 입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어느덧 나는 그때의 선배들과 비슷한 나이가 되었다. 저 어렸던 새내기 시절에는 A4 한 박스도 들지 못해 쩔쩔매던 내가 20킬로가 넘은 아이를 번쩍 들 수 있게 되었다. 아이를 낳아 기르다 보니, 가늘어서 굵어지지 않을 것 같다던 내 팔은 참으로 튼실하게도 변해버렸다.


그리고 20대 중반의, 갓 졸업한 신규들을 보며 나도 그때의 선배들처럼 '반짝반짝 예쁜 나이구나.', '예쁘다.' 하고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oo샘 참 예쁘지 않아요? 참 좋은 나이인 거 같아요."


내 말에 5살 많은 내 옆의 직원분이 웃으셨다.


"설이샘도 지금 참 좋은 나이야. 얼마나 예쁜데."


10년 후의 내가 보면, 오늘의 나도 반짝반짝 빛나는 예쁜 나이겠지.

오늘의 내가 앞으로의 내 인생에서 가장 어리고 예쁜 나일 테니까....


굵어진 팔을 해결할만한 운동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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