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나의 마라톤 이야기 2화

2016년 가을, 두 번째 도전과 '불순한' 깨달음

by 이재민 러닝코치

5km의 희열이 식기도 전에, 덜컥 10km를 질렀다

첫 5K 마라톤을 완주하고 돌아온 그날 저녁, 몸은 녹초가 되었지만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 또렷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씻지도 않고 컴퓨터를 켰다. 검색창에 입력한 단어는 '10월 마라톤 대회'.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지만, 그때만 해도 당일에 대회장을 찾아가 현금으로 참가비를 내고 배번호를 받아 뛸 수 있던 낭만(?)의 시절이었다. 하지만 나는 마음이 급했다. 당장 한 달 뒤에 뛸 수 있는 대회를 찾아 헤맸다.

인천 집에서 가까운 대회는 눈에 띄지 않았다. 결국 서울에서 열리는 대회를 하나 찾아냈다. 10월 22일, '웨어러블 런'. 나는 홀린 듯 참가 신청 버튼을 눌렀다. 5km를 갓 완주한 '런린이'의 근거 없는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던 밤이었다.



다시 시작된 아파트 뺑뺑이, 그리고 '근자감'


다음날부터 바로 훈련, 아니 '훈련 호소'가 시작되었다. 방식은 첫 5K 때와 똑같았다. '무식하게 꾸준히'. 대회 전날까지 8km를 한 번에 뛰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5km부터 시작해 매일 100m씩 거리를 늘려가는 나만의 훈련법이었다. 다시 한번 지독한 아파트 뺑뺑이가 시작된 것이다.

매일 같은 코스를 돌다 보니 여유가 좀 생겼는지, 전에는 안 보이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 달리는 다른 사람들도 보였고, 마라톤 티셔츠를 입고 지나가는 분들도 보였다. 그때마다 괜히 가서 말을 걸고 싶었다. '저기요, 저도 마라톤 뛰었어요. 저도 러너라고요!'

지금 생각하면 고작 5km 한번 뛰고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던 내 모습이 쥐구멍에 숨고 싶을 만큼 부끄럽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때의 나는 세상 모든 마라톤을 다 뛴 것처럼 자랑스러웠는걸.



"연애는 안 하고 맨날 땀만 빼냐?"


성실함이 죄는 아니지만, 어머니의 눈에는 아들이 탐탁지 않았나 보다. 매일 밤마다 운동복을 입고 나가는 아들을 보며 어머니는 혀를 차셨다. "아니, 얘는 연애는 안 하고 밤마다 나가서 땀만 빼고 오냐? 그 정성으로 여자를 좀 만나봐라!"

어머니의 잔소리가 등 뒤로 꽂혔지만, 나는 씩씩하게 대답했다. "운동하고 올게요~!" 그때 내 머릿속엔 오로지 '8km 완주' 생각뿐이었다. 하루하루 거리를 늘려가며, 대회 하루 전날 드디어 7.8km 지점에 도달했다. 기분이다 싶어 조금 더 욕심을 내 8km를 채우고 들어왔다. 준비는 끝났다.



두근거림, 그리고 뜻밖의 질주


10월 22일, 대회 당일.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해 짐을 맡겼다. 무대 앞에서는 치어리더분들이 스트레칭을 유도하고 있었다. 쭈뼛쭈뼛 따라 하며 몸을 푸는데, 5K 때는 없었던 긴장감이 몰려왔다. '10km... 과연 내가 멈추지 않고 완주할 수 있을까?'

출발 총성이 울렸다. 있는 힘을 다해 뛰었다. 아니, 뛰어진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두 달 동안 하루도 빼먹지 않고 아파트를 돌았던 다리가 제 몫을 해내고 있었다.

결승선을 통과하고 시계를 봤다. 58분. 평소 조깅 페이스가 7분대였던 것을 감안하면 말도 안 되는 기록이었다. 당시엔 이 기록이 얼마나 괜찮은 기록인지조차 몰랐다. 그저 멈추지 않고, 생각보다 빨리 들어왔다는 사실에 벅차올랐다.



마라톤에서 발견한 '불순한' 가능성


두 번째 대회라 그런지, 골인 후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 있는 포토존으로 향했다. 기록을 인증하고 사진을 찍으려는데, 내 눈에 들어온 건 의외의 풍경이었다. 아저씨들만 가득할 줄 알았던 마라톤 대회장에 젊은 여성 러너들이 꽤 많이 보였다.

더 놀라웠던 건, 그 여성분들과 나이 지긋한 아저씨들이 러닝 크루나 동호회인 듯 허물없이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순간 내 머릿속에 번개가 쳤다.

'이거다!' 달리기를 하면 건강도 챙기고, 자연스럽게 연애도...?! (아차차, 속마음이 너무 튀어 나왔다.)

어쨌든 달리기를 하면 뭔가 즐거운 일이 생길 것만 같은 확신이 들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경품 추첨을 기다렸고, 운 좋게 블루투스 스피커까지 하나 챙겨 집으로 돌아왔다. (1등 상품이 태블릿이었던 것 같은데, 스피커가 어디냐며 스스로 위로했다.)



잠시만 안녕, 겨울잠에 들다


첫 10km 완주, 그리고 두 번째 마라톤 경험은 완벽했다. 집에 오는 길, 기진맥진해 버스에서 한없이 졸았지만 꿈결에서도 기분은 좋았다. 성취감과 묘한 기대감이 어우러진 달콤한 피로였다.

하지만 계절은 야속하게도 겨울로 접어들고 있었다. 추위 속에서 달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 겨울엔 실내 운동이지.' 나는 당분간 달리기와 작별을 고하고, 다시 본업(?)인 스쿼시에 집중하기로 했다.

언젠가 다시 따뜻한 봄이 오면, 그때 다시 달리리라 다짐하며....


하지만 모종의 사건으로 인하여 달리기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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