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에이전츠 오브 아틀라스 (2019) #1~2 리뷰
마블코믹스에 한국인이 나왔대!
라고 말하면 좀 유치하고 바보 같아 보이지만, 이상하게 '한국인'이라는 단어에는 마법이라도 걸린 것인지, 평소에 애국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사람도 괜히 한번씩 눈이 가고 그러는 거 같아요. 맞습니다. 마블코믹스에 한국인이 나오는 중이에요. 사실은 아주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한국인을 꼽아보라면 '아마데우스 조'를 말해볼 수 있겠네요.
아마데우스 조는 한국계 미국인 작가 '그렉 팍'이 2006년에 <어메이징 판타지>#15에서 처음 소개한 캐릭터입니다. 열다섯 나이에 '세상에서 7번째로 똑똑한 사람' 타이틀까지 거머쥘 정도로 엄청난 천재인 아마조는 도리어 자신의 천재성 때문에 비극적인 사건에 휘말려 가족을 잃고 떠돌이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런 아마조를 도와준 것은 '헐크'와 '허큘리스'! 아마조는 마블의 대표적인 '힘센 덩치' 곁에서 거친 입담을 자랑하며 감초처럼 톡톡 튀는 지능 캐릭터였지요. 2016년에는 '브루스 배너'가 자리를 비웠을 때 직접 헐크가 되기로 나서서 <토틀리 어썸 헐크>의 주인공으로 활약하기도 했습니다. 브루스 배너가 돌아온 현재는 원조에게 타이틀을 반납하고 '브로운'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중입니다.
아마데우스 조의 10년 남짓한 역사를 제가 다 요약해드릴 순 없겠지만, 단 하나 가장 중요한 특징을 말씀드리자면 바로 이거예요. 아마조가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책은 그렉 팍이라는 작가 한 사람이 썼다는 거! 아마조는 그렉 팍이 직접 만든 자캐이자 10년 넘도록 정성스럽게 캐릭터빌딩을 쌓아온 친구라는 거예요. 동일한 사람의 손에 의해 관리되었으니 캐릭터 해석도 일관적이고 자연스러울 것은 당연한 사실! 소위 '정주행'하는 맛이 있는 캐릭터라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거예요.
아마조 말고도 또 유명한 마블코믹스 속 한국인 캐릭터라면 단연 '실크'입니다. 본명 '신디 문'은 2014년에 <어메이징 스파이더맨>#4에서 "피터 파커가 거미에 물렸던 십수년 전 그날 동일한 거미에게 물린 적 있는 사람"으로 처음 소개되었습니다. 어째선지 방사능 거미에 의한 초능력이 피터보다 훨씬 강하게 발현되어서 결국 능력을 조절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과 주변 모두의 안전을 위해 깊은 지하의 안전 벙커에 갇혀 지냈지요. 그러다가 비밀을 알게 된 피터에 의해 벙커를 나온 신디는 잃어버린 가족을 찾고 자신이 있을 곳을 찾는 여정을 시작합니다.
<실크> 솔로타이틀 연재가 끝난 뒤에 신디는 특수조직 '쉴드'에 가입하여 비밀 요원으로서 히어로 활동을 이어나갑니다. '스파이더맨'과의 관계성 때문에 피터와 함께 팀업하는 경우도 있고, 스파이더맨 여러명이 활약하는 현재 뉴욕의 특성을 드러내기 위해 찬조출연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최근에는 <실크> 솔타를 썼던 작가 '로비 톰슨'이 <스파이더맨/데드풀>에서 데드풀에게 시원한 죽빵을 날려주는 실크를 등장시켜주기도 했습니다.
마블코믹스에서 제일 유명한 한국인, 아마데우스 조와 신디 문이 같은 자리에서 팀업을 안 하면 섭하잖아요. 2017년에 그렉 팍이 쓴 <토틀리 어썸 헐크>#15에서는 '에이전츠 오브 아틀라스'라는 팀의 리더이자 중국계 미국인 '지미 우'앤트맨과 와스프'영화에 나온! 를 비롯해서 마블의 동양계 캐릭터들이 퀸즈의 학교에 찾아가 골수 기증을 독려하며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행사에 참여합니다. 이 행사의 뒷풀이가 참 재밌어요. 저녁 회식으로는 한국식 BBQ 갈비를 먹고, 식사 후에는 누가 계산할 것인가를 놓고 샹치와 지미 우가 화려한 맞대결을 보이고, 2차로 한국식 룸 노래방에 가서 신나게 즐기거든요. 한국계 미국인인 그렉 팍이 어렸을 때 명절에 가족들이 모이면 어른들이 영수증을 놓고 옥신각신하던 기억이 깊이 남아 이런 장면을 써냈다고 하지요.
최근에 미국 만화 출판 시스템에서 왜 작가가 중요한지를 말해보는 칼럼을 쓴 적이 있어요. 아마조와 신디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자연스레 이런 결론이 나오는 거 같아요. 작가가 캐릭터를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는가, 작가가 그 캐릭터를 얼마나 열심히 연구했는가, 작가가 해당 문화에 얼마나 조예가 깊은가에 따라서... 이렇게 한국인인 우리도 공감이 되고 이입할 수 있는 좋은 장면들이 나오는 법이랍니다.
올해 80주년을 맞이하는 마블코믹스. 그 오랜 세월동안 창작환경이든 캐릭터 등장풀이든 모든 게 백인남성 위주였음을 부인할 수는 없겠지만요, 그래도 최근 몇 년 동안 시중의 트렌드를 발빠르게 수용해서 다양성을 앞세우는 기획들을 보여주곤 했습니다. 그 덕에 그렉 팍이 <토틀리 어썸 헐크> 연재동안 보여주었던 동양계 히어로 팀업을 이번에 다시 한번 재방문하는 경사가 있기도 했네요! 2019년 여름 대형이벤트 [워 오브 렐름즈]의 타이인으로 나오는 <뉴 에이전츠 오브 아틀라스>입니다.
[워 오브 렐름즈]가 무엇인지 낯선 분들을 위해 간단하게 배경설명을 해드릴까요. 토르가 사는 '아스가르드'에서는 세계를 아홉 층위로 나누고 있습니다. 토르를 비롯한 북방의 신들이 살고 있는 '아스가르드', 우리 인간이 사는 지구 '미드가르드', 풍요롭고 평화로운 라이트엘프의 '알프헤임', 프레이야의 고향이자 바니르들이 사는 '바나헤임', 로키의 고향이자 서리거인의 땅 '요툰헤임', 대장장이 난쟁이들이 사는 '니다벨리르', 어둠이 내려앉은 다크엘프의 땅 '스바르탈헤임', 헬라가 다스리는 죽은자의 땅 '니플헤임', 그리고 불꽃 악마들이 사는 '무스펠헤임'입니다. 여기에 잊혀졌던 천사들의 왕국이 추가되어 '헤븐'까지 총 열 개의 세계가 있어요. 각각의 세계들은 차원과 공간을 이어주는 아스가르드의 무지개다리 바이프로스트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왕래할 수 없지요. 분명 그랬을 터입니다.
최근 5년동안 작가 제이슨 애론이 써왔던 코믹스 <토르> 시리즈에서는 '말레키스'가 끝판왕 빌런으로 등장합니다. 말레키스는 오랫동안 은밀하게 공모하여 오랫동안 왕좌를 차지했던 아스가르드에 적대하는 세계들을 규합해 아스가르드를 포함한 모든 세계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놓고 미드가르드를 새로운 터전으로 삼겠다며 전쟁을 일으키지요. 그것이 [워 오브 렐름즈]입니다. 현재 지구는 상상을 초월하는 군대의 공격을 받고 무너져 침략자들의 식민지가 된 상태입니다. 온 세계의 슈퍼히어로들이 뿔뿔이 흩어져 각국의 진영을 도맡아 전투를 치르고 있어요. 그중에서 '에이전츠 오브 아틀라스'가 수호하는 곳은 아시아! 아시아를 침공한 불꽃악마의 여왕 '신드르'와 맡서 싸워야 합니다!
대표적인 한국인 슈퍼히어로로 '아마데우스 조'와 '신디 문'을 꼽았지만 사실 이 둘은 '한국계 미국인'이고, 토종 한국인 히어로를 꼽자면 이분들이 있지요. 한국의 비밀요원이자 구미호 혼혈인 "화이트폭스", 태권도 사범이자 신비한 탈의 주인 "크레센트", 그리고 인기 팝스타이자 얼음 능력자 "루나 스노우"입니다. 화이트폭스는 수년 전에 <일렉트릭 레인>이라는 다음 웹툰으로 처음 소개되어 마블코믹스로 편입된 캐릭터이구요. 크레센트와 루나 스노우는 넷마블의 '마블 퓨처 파이트' 게임전용으로 디자인된 캐릭터인데 이번에 처음으로 코믹스에 등장한 케이스입니다. 불꽃 악마들이 서울 청계천을 습격했으니 방어 제1선에서 이들이 활약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에요!
이번 작품이 한국에서 코믹스를 읽는 한국인 독자인 제게 더욱 뜻깊게 다가오는 것은 글작가가 한국계 미국인인 그렉 팍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한국계 캐릭터들이 주역으로 등장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거기에 한발 더 나아가 커버아티스트와 인테리어 그림작가 모두 한국인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번 <에이전츠 오브 아틀라스>의 펜슬러는 다음 웹툰에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죽음의 보석>을 그리신 임강혁 작가라는 사실! 해가 갈수록 한국계 그림작가들이 마블코믹스로 진출하는 게 피부에 와닿아요. 동양인의 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는 글그림 작가가 쓰는 코믹스를 읽고 있자니, 엄청나게 공감도 되고 이입도 되고 더욱 상황에서 의미를 해석해내는 게 수월하더라구요. 이를테면 우리가 평소에 즐겨 먹는 과일 배를 이용해 팀의 화합과 불화를 상징해내는 아래 장면이 있습니다.
지미 우(중국계 미국인): 이게 뭘로 보여?
샹치(중국인): 먹는... 배.
지미 우: 맞아. 근데 어떤 종류?
샹치: 중국 배.
아마데우스 조(한국계 미국인): 뭐래요? 그거 한국산이에요.
신디 문(한국계 미국인): 옳소. 중국 배는 좀더 타원형이죠.
크고 뚱뚱한 건 한국 배예요.
카말라 칸(파키스탄계 미국인): 글쎄요... 근데 우리집은 그걸
모퉁이 돌면 있는 일본 식료품 가게에서 사곤 하거든요. 그러니까...
아마데우스 조: 너 하지 마라.
카말라 칸: ...일본산인가?
아마데우스 조: 으아아악! (한국인의 피가 불끈!)
카말라 칸: 난 그냥 그래 보여서 그렇게 말한 거 뿐이야!
지미 우: 좋아. 다들 들어봐... 배 하나일 뿐이잖아. 이걸 갖고 싸울 필요는 없어.
다른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싸우느라 시간을 얼마나 낭비하니.
대부분 아무것도 아닌 걸로.
카말라와 아마데우스 조는 십대 히어로들이 모여 만든 '챔피언스'라는 팀의 멤버예요. 최근 시리즈에서 끔찍한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을 겪으며 카말라와 아마조의 사이가 멀어진 상황이거든요. 마일즈와 아마조가 불편하고 죄책감 가득한 진실을 숨긴 탓에 벌어진 일이었어요. 그래서 <에이전츠 오브 아틀라스>에서도 둘이 시도때도 없이 싸우며 팀의 밸런스를 무너트리는 장면이 묘사됩니다.
지미 우는 아틀라스 팀의 리더이자 최고 연장자로서 서로 화해하고 모두가 힘을 합쳐야만이 위험한 임무를 안전하게 마칠 수 있다고 가르쳐보려고 하지만 감정을 정리하지 못한 아마조가 그만 책상을 부숴먹고 맛있는 배도 다 먹지 못한채 서울로 출동할 수밖에 없었죠. 이슈 1편에 걸맞는 위기감 조성이에요. 앞으로의 목표는 "아마조가 성질을 죽이고 모두와 합을 맞춰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는 것"이 될 거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죠. 이게 바로 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는 크리에이티브팀이 주는 연출력 같아요. 정말 마음에 들었답니다.
사실 이번 작품에서 처음 소개된 캐릭터들은 한국계만 있는 게 아니에요. 2018년에 중국의 콜라보 웹툰에서 등장했던 '에어로'와 '소드마스터'도 있지만, 팬들에게 가장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는 것은 바로 최초의 필리핀계 슈퍼히어로 '웨이브'입니다. 웨이브는 필리핀계 그림작가 '레닐 유'가 디자인해서 더 의미가 있을 거예요. 얼마나 대단하냐면 디자인이 공개된지 일주일만에 코스튬을 제작해서 코스프레를 선보이는 열혈팬들이 생겨날 정도! 솔직히 디자인 정말 멋지잖아요. 심해 생물을 연상시키는 환한 불빛에 가벼운 갑주를 입은 해양 히어로라니 크윽!! <뉴 에이전츠 오브 아틀라스> 1편 1쇄가 보름만에 매진되는 등, 이런 팬베이스의 열화와 같은 성원 덕분에 <에이전츠 오브 아틀라스>가 [워 오브 렐름즈] 이벤트가 끝나고서도 5부작 리미티드 시리즈로 추가 연재될 예정이라고 해요. 이 5부작이 얼마나 잘 팔리느냐에 따라 연재횟수 제한이 따로 없는 온고잉 팀북 연재도 가능하겠죠? 열심히 사서 읽어봅시다! 정말정말 재밌으니까요!
참고로 <뉴 에이전츠 오브 아틀라스> 2편에서는 불꽃 악마를 손님으로 받기 위해 성을 내며 의자에 은박 호일을 깔아주는 억척스러운 식당 아줌마와, 한국을 접수하고 경복궁에 눌러 앉은 불꽃 악마의 여왕 신드르를 볼 수 있답니다! ㅋㅋㅋ 정말 재밌어요. 꼭 구매해서 작품을 서포트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