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산책자가 된 이야기
나는 도망치듯 떠난 낯선 땅이 두려움으로 기억되지 않는다. 한국에서의 삶은 내게 번아웃이라는 이름을 각인시켜주었다. 게다가 가면 우울이라는 진단은 너무 충격적이었다. 약을 처방받아 겨우 겨우 버티던 시간들이었다. 이런 시간들을 뒤로하고 시작한 독일이라는 낯선 땅에 살게 되었을 때 나의 감정은 어리둥절 당황스러운 감정이었던 것 같다. 프로젝트로 바쁜 남편은 우리 모녀를 돌볼 겨를도 없었다. 한국에서 이삿짐이 도착하기도 전에 미국 땅으로 출장을 가야만 했던 사람이었으니 가장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그에게 의지하며 산다는 건 미련한 짓임을 알게 되었다. 불안이 높은 나는 마치 맹수들에게 잡아 먹히지 않으려고 초고도의 촉을 세워 생존에 가까운 삶을 시작했다.
겨울에 이사를 하게 된 탓에 오후 4시만 넘으면 밖이 깜깜한 칠흑으로 변했다. 독일 이웃을 사귀기엔 나의 언어는 바닥이었다. 다음 날 아침을 기다리며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긴 겨울 절기 탓에 아침은 그리 일찍 오지 않았다. 동이 트고 창밖 낯선 언어들이 들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유치원 등교를 시켜야 하는 딸아이를 깨워 아침을 먹였다. 집에서 유치원을 가려면 큰 공원을 가로질러야만 했다. 공원 가운데 호수가 있었고 우아한 백조들이 둥둥 떠 있는 광경은 비현실적인 풍경 같았다. 매일 공원을 하루에도 몇 번을 왔다 갔다 했으니 나는 저절로 공원 산책자가 된 쌤이었다. 그렇게 딸아이가 유치원을 졸업하기까지 일 년을 꼬박 산책을 했다. 그리고 나는 복용하던 우울증 약과 함께 수면제도 끊게 되었다.
사계절을 지나는 동안 나는 점점 정신적 육체적 건강이 회복되는 걸 느꼈다. 숲이 주는 치유는 내게 큰 선물이 되었다. 키 큰 침엽수림이 울창한 독일의 숲은 나를 위로하며 안아 주었다. 숲에서 내뿜는 에너지는 그야말로 자연 강장제 역할을 하기에 충분했다. 계절마다 다양한 새들의 지저귐은 내게는 음악 치료였다. 그렇게 나는 어쩌다 산책 중독자가 되었다. 2009년 낯선 땅 독일은 나를 산책자로 살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