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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쥐아저씨 Dec 05. 2017

뚱자의 그리움이 사람의 그리움에게

메모리얼솝 길생명 장례 프로젝트 #3. 연세대 길냥이 뚱자


#1. 안녕하세요. 긍정의 아기고양이 뚱자라고 해요.


까꽁. 내 이름은 뚱자. 연세대 주변에서 태어난 긍정긍정한 고양이랍니다.


모두들 안녕한가요? 

와 오늘 날씨가 정말정말 너무 우울하고 축축했지요? 나는 그 이유를 알아요.

왜냐면요, 지금 방금 하나님이라는 분이 저한테 사과를 하셨거든요. 모든 게 너무 미안하다구요.

그 분은 처음 지구별에 나를 내려 놓을 때 부터 많이 미안해 하셨다고 했어요.

신이라는 분은, 아주 오래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우리들 모두의 이야기가 담긴 큰 책을 한권 쓰고 계신데요.

언제 끝날 지 모르는 이야기이지만, 그 안에는 기쁨도 행복도 있지만 아프고 슬픈 이야기도 있다고 했어요.

그리고, 하필 슬픔의 시간에, 아픔의 시간에 내가 주인공이 되어야 했데요.


그 분은 나를 한참이나 무릎 위에 올려두고 쓰담쓰담 해 주면서,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했어요.

그제부터 나 때문에 눈이 퉁퉁 붓도록 우셨다고 했어요. 내가 그 분을 만나러 오는 순간에는 아무 것도 하실 수 없었다는 말도 하셨어요.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들의 눈빛 위에 뿌려진 쟂빛 안개는 그 때문인듯 해요.

하나님은 내게 '슬픔에도 깊이가 있다' 라고 하시면서, 아기였던 내게 너무 큰 시련을 안겨줄 수 밖에 없던 것을 미안해 하셨어요. 아마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가슴에 무거운 슬픔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명은 기쁨과 행복으로 기억되어야 한다는데, 그렇지 못한 기억을 남겨주었을 것 같다고.


무슨 말인지 나는 잘 몰라요. 그렇지만 난 괜찮아요. 정말이에요.

태어나서부터 나는 한 번도 울어본 적 없고 기쁘기만 했던 고양이었으니까요.




나는요, 4개월밖에 세상에 살지 않았어요. 그리고 나를 이 땅에 두 발로 영차영차 서게 한 엄마의 따듯한 품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아요. 그저 눈을 떠 보니 공기가 차가웠고, 점점 추워졌고, 여러 고양이 아줌마 아저씨들께서 춥지 말라고, 배고프지 말라고 곁을 내어주었기에 숨을 쉴 수 있었어요.

아줌마 아저씨들은 딱하다고 했지만 난 괜찮아요. 엄마를 기억할 수 있으면 더 좋았겠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것으로 충분히 행복했으니까요. 그 분들은 늘 내게 '딱하지만 그만큼 씩씩한 고양이가 될거다' 라고 칭찬도 해 주셨으니까요.


야옹!! 나 무섭죠! 근데 화난 거 아니에요. 다만 조금 낮설었을 뿐이에요. 무서웠다면 미안해요.


하지만 한 가지 힘들었던 것은 엄마가 없었기에 걸음마부터 세상 나들이까지 나 혼자 해야 했다는 것이였어요.

아줌마와 아저씨들이 가끔 가르쳐 주시기는 했지만, 그 분들도 나름의 세상에서 너무 바쁘셨거든요.

그래도 괜찮았어요. 약했던 몸에 힘이 조금씩 들어가면서부터, 희미했던 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할 무렵부터,

내가 태어난 곳은 굉장히 즐겁고 재미있는 곳, 착한 기운이 가득한 '학교 어딘가' 라는 것을 알았거든요.

본능적으로 숨어서 볼 수 밖에 없었지만, 두 다리로 열심히 걷는 나보다 엄청 큰 존재들은 늘 즐거워 보였어요.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어요. 하나님께서 미안함으로 태어나게 한 내 눈에는 다행스럽게도 '슬프다' 라는 것들은 느껴지지 않은 것 같아요. 이 모든 기쁨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담뿍한 호기심을 주었고 스스로 걸을 수 있도록 씩씩하게 만들어 주었답니다. 그래서 괜찮아요. 두 다리로 걸어다닌 모든 친구들께 고마워요.



#2. 조금 아팠지만, 그래도 괜찮았어요.


'고양이들의 별' 에 오기 2주 전 쯤 되었을 거에요.

아기고양이 눈에 가장 멋진 것이 뭔 줄 알고 있나요? 바로 형,언니,오빠,누나 고양이들이 꼬리를 바짝 세우고 우아하면서도 아슬아슬하게 높은 곳을 걷는 모습이랍니다. 한 밤 중 달빛에 그 모습이 비추면 정말이지 그림 같았어요. 엄마가 없는 아기고양이라고 해서 한 번도 슬프거나 불행하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생각해 보면 그 어느 날의 나를 말리지 않았을 까, 그럼 조금 덜 아프지 않았을까 생각해 봐요.


영차영차 올라가서 하늘의 별과 좀 더 가까워진 그날 밤, 나는 그만 땅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거든요.

다리와 엉덩이가 많이 아팠어요. 일어설 수 조차 없었어요. 내 몸은 더 이상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움직여지지 않았어요. 그래도 난 괜찮았어요. 눈이 자꾸 감기는데 엄마 얼굴이 아른거려서, 엄마 목소리가 바람결에 들리는 것 같아 마음이 포근해 졌거든요. 하지만, 사실 너무 아파서 펑펑 울었어요. 우는 게 전부였어요.


조금 아팠지만 괜찮았어요. 멀리서만 보던 사람들이 내 옆에서 나를 예뻐해 줬으니까요.


11월 22일. 그 날 밤은 그래서 몹시 길었어요. 아팠지만 괜찮았어요.

누워서 엄마 얼굴에 입맞춤하고 있던 나를, 멀리서만 바라보던 사람이라는 존재가 따듯한 손으로 아주 조심스럽게 감싸올려 줬거든요. 그 손길에 들려 병원에 가게 되었지만 나는 길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나를 안아준 사람이 나를 오래오래 돌봐주지 않으면 치료가 어렵다고 했어요. 그 손길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느꼈어요.

내 귓가에 작은 속삭임으로 미안하다고, 최선을 다 하고 싶은데 다른 방법을 찾아보겠노라고 말해 주었어요.

나는 다시 내가 있던 자리로 돌아왔어요.

난 괜찮아요. 죄책감 갖지 말아요. 천사처럼 찾아와서 날 들어올려 준 고운 손길이 있었다는 것 만으로도 어쩌면 나는 다른 고양이들이 할 수 없는 특별한 존재의 관심과 사랑, 체온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알아요. 당신이 나를 '버린' 게 아니라, '정말로 다른 방법을 찾기 위해 잠깐 두고 간 것' 이라는 것도.

그 마음을 알고 있으니까 기다렸고 순순히 통덪에 들어가서 당신을 안심시켰던 거에요.




그 이후로부터 요 며칠 간의 시간은, 세상을 만난 지 4개월 밖에 안 된 아기고양이에게 더 없이 특별한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나요? 엉덩이랑 다리뼈가 다 부러지고, 발이 퉁퉁 부운 내게 단단한 옷을 입혀주어 아프지 않게 해 준것도 고마웠지만, 매일 같이 나를 보러 와 주는 사람이, 고양이 이외의 다른 숨결이 있다는 것 그 자체가 나를 너무나 행복하게 했답니다. 아마, 내 또래 고양이 친구들이 있었다면 나는 어깨에 힘을 으쓱하게 주고 자랑했을 거에요. 눈 뜬지 4개월이라는 시간의 아기고양이가 어떻게 다른 친구들을 만날 수 있고, 깊고 착한 눈으로 나를 바라봐 주고 쓰다듬어 주고, '뚱자' 라는 이름까지 선물받을 수 있겠어요.

잘은 모르겠지만, 더 큰 어른 고양이들도 불가능한 일일 걸요?


매일 같이 나를 찾아와 준 분은, 작은 목소리로 아주 천천히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며 한참이나 같이 있어주었어요. 물론,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없었어요. 하지만 내가 아프지 않고 씩씩했으면, 그 날이 빨리 왔으면 하는 말들이었을 것이라 생각해요. 몸으로 가슴으로 느껴지는 나지막한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많이 고마웠어요. 매일매일 '사랑한다' 고 해 줘서요.

아야한 곳이 나으면, 맛있는 것도 많이 주고 외롭지 않게 곁에 있어 줄테니 '나도 사랑해 달라' 고 내게 부탁해 줘서요. 혼자였음에도 모든 것이 괜찮았던 나에게, 같이 살아간다는 두근거리는 꿈을 꾸게 해 주어서 너무나 고마웠어요. 고마움이 과거형이 아니라면 더 좋았을 텐데요.



#3. 우리의 만남은 곧 다시 한 폭의 비단이 되겠지요.



나는 괜찮지만, 내 곁에 있어준 사람들에게 미안해요.

나를 보러 와 준 분은 나와 함께 병원을 떠날 수 있어 기뻐하셨지만, 속상하게도 나는 그런 분을 울려야 한 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어요. 병원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별해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거든요.

나는, 그런 나는 범백에 걸렸고 이겨내기에는 이미 너무 많이 지쳐있었어요. 달밤의 멋진 고양이가 되려고 하지 않았다면 이까짓 범백, 아기고양이의 발랄함으로 걷어차 버릴 수 있었을 텐데, 다만 우리가 만나고 눈 마주치며 이야기를 하고, 누군가가 누군가의 소중함이 되는 순간들이 이번 삶에서는 살짝 어긋난 것 같아요.


뚱자라는 이름을 갖게 해 준 것도 고맙지만, 나는 우리의 마지막 날 당신의 모습이 참 고마웠어요. 내가 다시 고양이로 태어나던, 다른 생명으로 태어나던 잊지 않고 기억할 거에요.

당신은 지쳐 누워있는 내게 '지금까지 너무 잘 버텨줘서 많이많이 고맙고 사랑한다고' 했고, '너무 힘들면 이제 고양이별로 편안하게 여행을 떠나' 라고 목이 메어 띄엄띄엄 말해줬어요.

당신도 알고 있었나봐요. 그 날이 당신과 내가, 세상과 내가, 더 함께 하고 싶던 사람들과 내가 눈을 마주하는 마지막 밤이었다는 것을요..


당신은 제게 용서해 달라고, 최선을 다해 살리고 싶었는데 그게 오히려 제게 불편함과 아픔을 준 것만 같아 미안하다고 몇 번이나 이야기했어요. 나 괜찮아요. 우리의 만남은, 아기고양이에게 조금의 삶을 더 선물해 준 관심과 기억과 사랑은, 다시 한 번 당신과 만나서 신나고 어여쁘게 놀고 싶다는 꿈과 동경을 심어주었는 걸요.

어쩌면, 당신과 저의 만남은 아기고양이의 깊고 짧은 슬픔의 이야기를 써내려 간 하나님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을 거에요. 당신도 나와 같은 마음,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었기에 바쁜 학업이나 큰 비용 같은 것은 뒤로 하고 나를 매일 만나러 와 주고, 보듬어 주었을 거라 믿어요. 그래서 정말 괜찮아요.


그래서, 당신의 용서에 나는 가만히 눈을 깜-빡 거렸던 거에요.

용서가 아닌, 다시 곧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을 꾸고 있으니,

나 괜찮다고. 내 발은 붓고 부러져서 들기에도 힘들었지만,

당신의 머리칼을 곱게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고.

이 모든 나의 마음을 대신하여.

  

또 괜찮았었어요. 너무나 괜찮은 삶이었어요.

날 너무 힘들게 하지 말고, 차라리 얼른 편안하게 데려가 달라는 당신의 기도가 하나님께 닿았고,

당신의 사과가, 나의 기다림이 서로 곱게 매듭지어진 후, 마지막 얼굴을 보고 눈을 감을 수 있었으니까요.

아기 고양이이지만, 뚱자인 나는 그래서 어른 고양이처럼 행복했어요.



뚱자의 마지막 길. 언제나 흰 옷을 차려 입은 저 작은 생명은 마음을 주체할 수 없게 만든다.


생각해 보니, 나는 당신의 이름도 잘 모르네요. 그만큼 내 삶은 짧았지만 바쁘기만 했었나봐요.

다만, 나를 구해주고 마지막까지 힘들지 말라고 격려해 준 당신, 아니 당신들이 '연냥심' 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묘생을 돌보아 주고 있다는 것은 알아요. 그 착한 마음들을, 눈빛들을 기억하고 다른 생으로 다시 곧 올게요.

언제가 될 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가로 떠나서 아가로 올 거니까 -

어느 날 문득 당신들 눈에 처음 보는 발랄한 아가고양이가 보인다면 '뚱자야 왔니?' 라고 불러 주세요.

4개월의 짧은 묘생을 담은 그 이름 '뚱자' 를 잊지 말고, 꼭 언젠가 아가 고양이에게 다시 불러 주세요.

그러면,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에요.

가을과 겨울은 추웠으니까, 따듯한 봄까지 조금은 쉬었다가 올게요.


나에게 이름이라는 기억을 주고, 손길이라는 온기를 나눠주고, 속삭임이라는 아름다운 소리를 선물해 준 당신들에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를 들려주고 싶어요. 아가고양이의 마음이에요. 받아주세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그리고 보고싶어요.

당분간만, 안녕.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정희성


어느 날 당신과 내가

날과 씨로 만나서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우리들의 꿈이 만나

한 폭의 비단이 된다면

나는 기다리리, 추운 길목에서

오랜 침묵과 외로움 끝에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 볼 떄

어느 겨울인들

우리들의 사랑을 춥게 하리

외롭고 긴 기다림 끝에

어느 날 당신과 내가 만나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이 프로젝트는 세계비누편집샵 메모리얼솝의 비용 후원과,
한국반려동물협회의 재능기부를 통해 진행되고 있습니다.


메모리얼솝 : http://storefarm.naver.com/mmrsoap

한국반려동물협회 : http://www.companio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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