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회색 마을> - 낭만의 왜곡
지은이 정범수
메마른 길을 걷는 나그네에게는
낭만이라는 사치가 허락되지 않고
낭만이 갖고 있는 생동감은
굳어버린 세상 속 그 빛을 잃었네
알록달록 청순의 낭만은
서슬 퍼런 냉혹함에 시들어 버렸고
떠오르는 낭만 속 아름다움은
회색빛 현실의 망상이 되었다
낭만을 노래하던 강변은
죽은 자들의 무덤으로 쓰인 지 어언 세월이고
낭만을 논하던 청춘들은
야망조차 논할 수 없는 억눌린 청춘이 되었다
청아한 낭만을 그리던 붓조차
죽음을 기리는 검은 근조만 허락하니
모든 걸 잃은 나그네는
터덜터덜 청춘의 시린 아픔을 안고
시름시름 낭만의 슬픔을 흘려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