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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사진

김진호의 가족사진을 듣다가.

by 산들


30대의 끝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내게 가장 두려운 것은 내가 나이 들어감이 아니다. 내가 나이를 먹어가는 만큼, 더 빠르게 나이를 들어가는 것 같은 부모님의 모습이었다.


아버지, 어머니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얼마나 남았는지 가늠해 본다. 그러고는 이내 고개를 젓고는 가늠하기를 포기한다. 상상할 수도, 상상하기도 싫은 미래다. 하지만 언젠가 내게 닥칠 것임을 알기에 애써 상상하지 않아도 마음은 무너지듯 아려왔다.


지나간 과거, 닥치지 않은 미래 때문에 고민하는 것만큼 의미 없는 것이 없을 테다. 하지만 다가올 미래가 분명하기에, 바로 지금 아버지, 어머니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하는 나 자신이 밉고 미웠다. 늘, 내가 당장 사라져도 잘만 돌아갈 회사 일에 쫓겨, 수많은 사람과의 대단하지 않은 약속에 밀려, 왕복 10만 원이 넘는 기차표를 계산하다 그렇게 몇 개월씩 지나서야 아버지와 어머니를 뵈러 간다.


그 죄책감을 씻어 내보고자, 지난 설에는 연휴에 휴가까지 붙여서 8일을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효도 좀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었는데, 어느새 입장은 반대가 돼 있었다. 사실, 반대가 될 입장도 애초에 없었다. 나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 나이가 될 때까지 부모님께 받기만 하는 존재였다.


아버지는 늘 나보다 먼저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다. 뭐라도 해보려고 해도, 어머니의 손은 나보다 빨랐고, 더 능숙했다. 그게 식사 준비든, 청소든 무엇이든 그랬다. 그래도 내가 회사에서는 1인분의 몫을 하는 어엿한 어른이지만, 이상하리만치 부모님 앞에서는 뭘 해도 서툴고 어린아이 같아진다. 정말이지,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결국 부모님께 뒤치다꺼리만 받다가 서울로 돌아가는 길, 아버지와 어머니는 현금을 흰 봉투에 담아온다. 네가 빨리 시집을 가야 엄마가 일을 그만두는데, 라며 손사래 치는 내 손에 돈을 꼭 쥐여준다.


작다. 왜 이렇게, 언제 이렇게 작아진 걸까?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뒷모습은 내가 올려다봤던 기억인데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았다. 부쩍 작아진 아버지와 어머니의 체구를 보면서 당황스러움까지 느꼈다. 언제 이렇게 살이 빠질 건지, 뼈가 드러난 어머니의 어깨를 감싸 안아 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어머니는 내게 말했다. 이제 엄마와 아빠의 시대는 끝이 났다고, 이제 너희들이 해나가야 한다고. 더 이상 자식들을 도와주는 것이 이제는 힘들다고.


덜컥 무서웠다. 이제 더는 힘들다는 어머니의 말에 나는 언제까지도 동화 속에 살 것만 같던 어른아이에서 갑자기 현실로 내쫓긴듯했다. 어쩌면, 내가 이토록 철없이 자란 것은 아마도 나이 들어서도 모자란 자식을 내버려 두지 못하고 어떻게든 책임지려 했던 아버지와 어머니 탓인지도 모르겠다.


슬프고, 무서웠다.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할 수 있다면, 나는 언제까지고 어린아이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부터라도, 시간이 이대로 영영 흐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기차역으로 걸어 들어가는 내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아버지의 얼굴에 나는 이유도 없이 왈칵 눈물이 났다. 모든 게 미안했다. 나를 키워내기 위해 아버지와 어머니가 희생해야만 했던 모든 것 중 나는 그 무엇을 버릴 수 있는지 자문한다. 그러다 결국, 내가 버리려는 그 어떤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내게 돌려주고야 말 아버지와 어머니를 다시 떠올린다.


사랑한다고 말하기에 나는 용기가 부족하다. 너무 부끄럽고 쑥스러우니, 다음엔 그냥 꼭 안아드려야겠다고 마음먹는다. 꼭, 꼭 그래야겠다고 다짐하며 기차에 오른다.


별도 뜨지 않은 창밖의 검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저 멀리 기차가 떠나는 것을 보고서야 걸음을 돌릴 못생긴 딸을 자꾸 예쁘다고 말하는 나의 아버지를 떠올린다. 내가 떠난 텅 빈 방을 보며, 조금 더 상냥하게 대해줄 걸 후회하고 있을 무뚝뚝한 나의 어머니를 떠올린다. 늦기 전에, 당신들이 나를 사랑하는 만큼은 못 하겠지만, 사실은 나도 당신들을 아주 많이 사랑한다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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