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을 하면서 글 다운 글을 써본 적이 별로 없다. 업무가 글쓰기와 어느 정도 연관이 되어 있긴 했지만 그건 내가 원하는 글이 아닌 그저 업무를 위한 글쪼가리였으며, 나의 글 솜씨는 점점 쇠퇴했다. 책 읽기는 어떠한가. 작년 초 정말 오랜만에 새해 계획을 세웠는데 유일하게 지키지 못한 목표가 책 읽기였다. 초등학교 시절 한창 책 읽기에 빠졌을 때는 300~400페이지짜리 소설을 하루에 한 권씩, 매일 새벽 네시까지 읽던 나였는데, 고등학교 3학년때도 유일한 탈출구가 책 읽기였는데, 직장생활을 시작한 뒤로는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총 100권도 읽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글쓰기에 점점 더 자신이 없어지고 쓰고 싶은 욕망도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 작년 초 믿었던 회사가 레이오프를 시작하면서 나의 감정은 요동쳤고, 나는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들과 함께 모여서 회사 욕도 하고, 임윤찬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하루종일 미친 듯이 들었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나는 매일매일 일어나는 일들과, 실시간 변화하는 나의 감정을 글로 적기 시작했다. 그 글들은 아마 평생 나 혼자 간직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레이오프에서 살아남고 얼마 되지 않아, 아빠가 돌아가셨다. 곱고 여린 마음씨를 가진 아빠, 무엇보다 우리 형제자매를 끔찍하게 사랑해 주셨던 아빠에게 못한 말이 너무 많았다. 싱가포르로 돌아오기 전에 아빠에게 꼭 편지를 남겨야 했다. 감사하고, 사랑한다고. 하늘에서는 꼭 더 행복하시라고.
얼마 전 오랫동안 고민만 했던 퇴사를 결국 해버렸다. 퇴사는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도 훨씬 많이 힘들었다. 며칠 동안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고, 가장 아끼는 후배에게 편지를 남겼다.
글을 쓰지 않으면 마음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고 퇴사만 하면 글을 쏟아내리라 결심했지만 여러 가지 처리해야 할 일도 많았고, 무엇보다 글을 왜 쓰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해서 글쓰기를 시작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답답한 마음을 해소하기 위한 일기장이 필요한 것인가, 나의 마음을 누구와 나누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책이라도 하나 내고 싶은 것인가.
고민만 많이 하는 게 나의 고질병인걸 알고 있는지라 일단 시작을 했는데 아직 정확한 답은 모르겠다. 아마도 한 번쯤은 마음을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했고, 글쓰기 연습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가장 고민이었던 것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꾸미지 않고 담백하게 털어내고 싶었는데 그러다 보면 나를 아는 사람이 내 글을 읽었을 때 내가 쓴 글인지 알아볼 수도 있을 것이라는 걱정, 그리고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글이다 보니 가식 없이 정말 느낀 그대로 적을 수 있을까 하는 거였다.
다행히 그리고 당연하게도 내 글을 많은 사람들이 읽는 것도 아니고 나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 아직까지는 편한 마음으로 글을 발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