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장영희 선생님이 그리워져서 『다시, 봄』을 샀다. 2014년에 발매되었으니 잡지에 연재한 글을 선생님 사후에 펴낸 듯하다. 책이 출간된 해도 아닌, 2021년에 이르러서야 이 책을 발견했다. 문득 검색을 해서 알게 된 책이 있을 정도라 선생님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한다. 책 두 권을 소장하고 있을 뿐이다. 그중 2005년에 나온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참 좋아했다.
이 역시 연재한 글을 모아 펴낸 것인데, 수필집은 아니고 영미문학에 대해 소개한 글을 모았다. 서문에 연재를 시작할 때의 상황이 실려 있는데, 칼럼 속 작품을 읽고 싶어지게 써 달라고 했단다. 청탁에 충실한 글 덕분에 나는 그 작품들을 모두 읽고 싶어졌다. 이 책이 특별했던 이유는 읽는 내내, 글쓴이를 만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읽을 당시에 나는 간혹 책을 읽고 블로그에 짧은 글을 쓰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는 항상 장 선생님처럼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책을 소재로 한 글이지만, 그 안에 쓴 사람이 보이는 글.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그리고 글에 담긴 사람이 그처럼 선한 사람이길 바랐던 것 같다. 지금까지도 그 바람은 변함이 없다.
선생님의 부고를 듣고도 한참의 시간이 지난 지금 『다시, 봄』을 읽으면서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읽던 때가 생각났다. 장 선생님은 지금 이 땅에 없지만, 그가 남긴 책을 보며 같은 시대를 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비 오는 5월, 어느 카페에서 마음이 무척 좋았다.
이 책은 일월부터 십이월까지 그 계절에 맞는 시를 두 편씩 소개한다. 시의 이해를 돕는 짧은 글과 김점선 화가의 그림도 함께이다. 두 분은 생전에도 사이가 좋으셨는데 돌아가신 해도 같은 해였다고 하니 인연이 깊었던 모양이다. 김점선 화가는 이 책에서 처음 알았지만, 그림이 무척 좋아서 화집을 하나 가지고 싶어졌다.
영미 시선집이라 할 수 있는 이 책은, 일부러 오월까지만 읽었다. 달이 바뀔 때마다 그때그때의 기분에 맞춰 읽고 싶었고, 실제로 계절감도 생생하게 다가왔다. 오월의 시를 오월에 읽었기에 그날 그 순간도, 시도 더 선명해졌다.
나는 오월을 사랑한다. 온통 초록으로 연두로 물드는 세상 속에 있는 것이 좋다. 오월에 내리는 비를 보는 것, 짙은 풀 내음으로 가득한 밤을 걷는 것을 좋아한다. 또다시 새로 온 이 오월에, 오월의 시들을 읽으며 가슴이 무척 두근거렸다.
오월의 시 두 편을 연결하는 짧은 글에는 피천득 선생의 글이 인용되어 있다. 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서 봤을 때는 진부하게 느꼈던 것 같은데, 마흔이 넘어 읽으니 무척 공감이 됐다.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새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
(…)
피천득 「오월」 중에서
특히 "내 나이를 새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 이 부분이 정말 감정을 파고들었다. 온통 푸릇푸릇한 오월을 들로 산으로 다니면서 더 생생하게 느끼고 있기 때문일까? 어느새 마흔이 넘었기 때문일까? 시를 읽으면서 마음이 엄청 왈랑왈랑 뛰놀아서, 밤새 비가 내리던 어제 쉽게 잠들지 못했다.
오월은 ‘지금 여기’를 가장 선명하게 느끼게 한다. 적당한 온도와 습도, 모자람 없는 바람이 짙어지는 초록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가만히 있어도 날아드는 향기와 꽃가루, 꽃씨들을 피할 길이 없다. 피천득 선생의「오월」이 노래하는 것처럼, 내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신록이 절로 새롭게 하는데. 두 분 선생님이 전해주신 오월의 심상 덕분에 더 풍성한 오월을 보내게 되었다.
이 오월 안에서, 나는 또다시 글로 만난 스승과 대면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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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예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