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꿈을 꾸었다. 책에 대한 글을 쓰고 있었다. 나는 왜 이 책이 이렇게나 눈에 밟히는 것일까.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유난한 제목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책은 몇 번을 읽어도 놀라웠다. 유난스러운 제목쯤 가져도 될 만한 힘이 있었다. 내가 그이라도 내 인생은 왜 이 지랄이냐고 해 댈 것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라고 말한다. 축제라, 책에서 만난 그는 분명 그렇게 말할 사람이었다.
이른 아침, 곤히 자던 아이가 잠에서 깼는지 부스럭대는 소리에 눈을 떴다. 잠들기 전에 손에 쥐고 있던 장난감을 찾는 소리다. '일어나야 되는데….' 생각을 더듬고 있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가있다. 계단을 내려가며 오늘은 또 무슨 일을 해두셨나 불안하다. 아니나 다를까,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다. "이거 하나도 안 먹은 건데…." 오늘도 남편은 우유 사수에 실패한 모양이다.
아이는 통에 담긴 액체를 쏟는 것을 좋아한다. 남편이 떨어뜨리지 않는 우유는 아이 저지레에 빠지지 않는 품목이다. 그러게, 우유 사수 좀 잘 하라고 하지만 냉장고가 아니면 어디에 둔단 말인가. 부엌에는 비어 있는 우유 팩 두 개를 눈높이까지 들고 선 아이와, 남편의 대치가 한창이다. 어느새 자랐는지 야단을 치면 눈물을 뚝뚝 흘려 제대로 혼내지도 못한다. 솔직히 이 아이의 우는 얼글은 사랑스러움의 한계를 넘어선다.
나를 본 남편은 언제 혼냈냐는 듯 아이에게 줄 핫바를 데우며 오늘의 브리핑을 시작한다. 요즘 아이는 혼자 깬 아침이면 살금살금 1층으로 내려와 냉장고를 뒤진다. 엄마가 쉽사리 주지 않은 것들을 꺼내 보는 것이다. 오늘 아침엔 우유 두 통을 꺼내 싱크대에 쏟아부었다. 그리고 어묵과 핫바를 골라 날짜 지난 어묵은 개봉해 소파 위에 던져두고 (다행히 맛없는 건 안 먹는다.) 핫바를 가위로 이리저리 잘라보다가 못 뜯어서 손에 들고 해사하게 웃으며 방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어제 새로 산 파운데이션 팩트를 소파 위에서 뜯어 소파 화장을 한 터라 또 가방에 손댔을까 걱정했는데 , 다행히 시간이 없었나 보다. 많이 자라서 말도 잘 알아듣고 인지 수준도 제법 좋아졌건만 참는 것은 도통 되지 않는다. 오히려 아무도 없을 때 저지레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만 아홉 살, 자폐성 장애와 지적 장애를 동시에 가진 아이는 커다란 질문인 채로 나에게 왔다. 장애는 장애 당사자와 부모 모두에게 온다. 아이의 장애를 인지한 순간부터 정답이 없는 문제를 푸는 기분인 채로 살았다. 어쩌면 내가 받은 질문이 '왜 내 인생은 이 지랄인가?' 였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 살, 네 살, 다섯 살…. 아이의 장애를 의심하던 순간부터 거의 모든 것을 받아들인 지금까지 저 순연한 존재에게 나는 어떤 엄마였을까?
"엄마가 진짜 미안해! 엄마 죽을 때 우리 같이 죽자(30p)"
"야! 병신 학교 졸업이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이냐? 그게 자랑거리냐고?(233p)"
"창피했어! 내 자식이 장애인이 된 것도, 그곳에 내가 가는 것도 다 부끄럽고 외면하고 싶었어!(234p)"
장애인 가족은 삶의 단계마다 많은 질문을 받는다. 책을 읽으며 나는 작가의 질문을 함께 받았다. 내가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의 답과 글은 솔직했다. 모녀가 주고받은 날것의 말들에 잠식되는 기분이었다. 엄마라서, 가족이라서, 인간이라서 가지게 된 감정들을 알 것 같았다. 같은 이유로 아이에게 그런 엄마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의 엄마를 비난할 수 없었다. 모진 말을 하는 엄마에게 악다구니하는 작가를 깊이 공감하면서도 그랬다. 먼저 가신 엄마를 떠올리며 가슴 깊은 곳에서 꺼낸 '단 하루라도 이 사람과 끌어안고 잠들고 싶었다.(103p)'는 고백이 불에 덴 것처럼 뜨거웠다.
"그게 그렇게 충격받을 일이었어요?"
"그럼요. 성치 못한 자식을 더 챙기고 희생해야지! 그게 진정한 부모의 역할 아니겠어요? 내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아요."
나는 수미씨의 올바름에 화가 났다. 그녀는 결핍을 모르는 사람이다.
"수미씨, 수미씨는 장애인 자식 없어봤잖아요. 그래본 적 없으면서 희생하지 않는다고 헐뜯을 자격 있어요?"
내가 쌀쌀맞게 쏘아붙였다. 그녀가 뚝 걸음을 멈춰 섰다. 내 비난에 몹시 충격을 받은 듯 얼어붙었다.
"모든 사람이 부모를 존경하진 않아요. 또 존경할 만한 부모 밑에서 태어날 수도 없고요. 세상에 수미씨 부모님 같은 분만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요. 편협한 사고예요." (중략)
티 없이 해맑은 사람은 종종 악의없이 상처를 줬고, 나도 내가 받은 만큼 수미씨에게 상처를 주고 싶었다.
(155쪽)
악의없이 해맑은 사람으로 40년 가까이 살았다. 모르긴 해도 해맑은 얼굴로 종종 상처를 주기도 했을 것이다. 글쎄, 사람은 모두 자기 경험의 그릇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 같다. 아무리 현명하다 해도 경험이 많지 않으면 폭넓은 사고를 갖기 어렵다고 본다. 머리로 아는 것과 마음으로 느끼는 것은 차이가 있었다. 나는 그렇게 상처를 주던 사람에서 상처를 받는 사람으로 자라는 중이다.
이 책에는 인생이 있다고 말해 왔다. 굳이 밝히진 않았으나 나의 인생이 있다는 뜻도 있었다. 물론 다양한 인생도 등장한다. 시각장애가 있는 마사지사의 인생, 장애아이를 기르는 어머니의 인생, 과로에 시달리는 중년의 인생, 청년 가장의 인생, 버림받은 아이들의 인생.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삶이 있다.
또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어떤 편견들과 만났다. 나도 만난 적 있는, 가진 적 있는 편견이다. 무심코 뱉은 말이 너무 큰 편견을 담고 있어서 가끔 무서울 때가 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닌데…. ’내가 뱉어놓고 내가 변명한다. 그렇게 하나씩 고쳐가는 중에 이 책을 만났다.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인생이 이토록 많은 이야기를 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 책이 있어 나 역시 그 이야기들을 만났다. 제 인생의 지랄맞음을 쌓아 축제로 만든 사람 덕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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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랄맞음이쌓여축제가되겠지
#조승리
#4개월간끼고다닌이책을
#오늘에서야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