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몽 살구 클럽』을 읽고
『자몽 살구 클럽』을 읽었다.
나는 읽을 책을 신중하게 고른다. 책 읽는 속도가 매우 느린데다 책을 읽고 글을 쓸 만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세 번은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 번 완독할 정도는 책을 좋아하길 바라기에, 몇 번을 집었다가 내려놓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세상엔 좋은 책이 너무나 많아 오늘 빼둔 책이 내일 빼둔 책을 이기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매주 장르를 정해두고 읽을 책을 고르는데 가능하면 신간 중에서 가능하면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다독할 책을 고르는 것이 목표이다. 읽다가 그만 둔 책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림책을 제외하고는 한 주에 한 권 이상 읽기 버겁기에 나는 늘 이상형 월드컵을 하듯이 고심 끝에 책을 고른다.
그 날 결국, 『자몽 살구 클럽』을 읽기로 마음 먹은 것은 순전히 손님들의 반응 때문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동일 책 문의가 거푸 들어오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출간된 것은 25년 7월이지만 12월에 이미 11쇄였던 이유가 나는 궁금했다.
하지만 이제 솔직히 말하겠다. 나는 이 책을 완독하기가 너무나 어려웠다. 갤럭시S 울트라보다 가로로 1cm 정도 큰 판형의 이 작고 예쁜 책이 왜 그렇게 읽기가 어려웠을까.
그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다.
이 책은 2000년생 싱어송라이터 한로로님이 저자이다. 책의 출간에 맞춰 동명의 앨범이 발매되었는데 일곱 곡이 담겨 있고 곡의 세계관이 소설의 세계관과 통한다. 경쾌한 느낌의 락 장르의 곡들로 내 귀에는 소프트한 음악으로 느껴졌다.
이 소설의 첫 부분을 소개하고 싶다.
'자살'을 거꾸로 하면 '살자.' 소위 말하는 MZ세대들이 밥 처먹듯 외치는 자살과 관련된 밈meme. 수업 들어오는 선생님들마다 니네는 뭐 그렇게 못 죽어서 안달이냐. 심드렁하게 반응하는 만큼 "자살할래!"는 소녀들 사이에서 이미 오래전에 고착된 유행어이다.
"아, 나 어제 혁이 오빠한테 고백했다가 까였다고. 걍 바로 자살."
"응, 자살해. 근데 예은아. 자살을 거꾸로 하면 뭐다?"
"지랄. 니나 살아. 썅, 이제 그 새끼 얼굴 어떻게 보냐고…."
입에 걸레 문 예은이는 우리 반 대표 공주님이다. 왜냐하면 예쁘고, 늘씬하고, 목소리 크고, 돈 많다. 반 애들이 깨갱거릴 수밖에 없는 조건을 모두 충족시킨 예은이는 오늘 하루만 해도 "자살할래!"를 일곱 번 외치다 삐까뻔쩍한 외제차 타고 유유히 학교를 떠나셨다. 그녀가 소리를 꽥 지를 때마다 귀에서 피가 나는지 몰래 닦아보는 것은 아무도 모르는 나의 소심한 복수였다.
(중략)
쉽게 정리하자면 예은이는 가짜 죽음을 원하고, 나는 진짜 죽음을 원한다.
-『자몽 살구 클럽』 9쪽 -
첫 장에 등장하는 예은과 화자인 소하는 모두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죽고 싶어하는 소녀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소설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 시대에 죽음 아니 자살은 그토록 쉽사리 소비되는 이야기인 것일까. 청소년기를 한참 지난 나는 그 시기의 나를 떠올리기 위해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아버지의 가정 폭력에 홀로 버텨야 하는 소하는 어느 날 이상한 동아리 모집 공고를 보게 된다.
< 자몽살구클럽 >
죽고 싶지만 <히우ㅜ> 실은 살구 <아자~> 싶은
자들의 비밀스러운 모임
- 당신은 무엇 때문에 죽고 싶나요?
그 이유가 명확한 당신! 우리와 함께합시다
-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나요?
그 무엇을 모르는 당신! 우리가 필요합니다
-가입을 원할 시, 뒷면의 "티켓"을 갖고
"내일 오후 5시 음악실"로 오세요
소하는 이곳에서 죽고 싶은 자신에게 살아갈 수 있게 힘을 주는, 선배들을 만난다.
이 소설이 힘을 가질 수 있는 점이 있다면 그것은 힘든 상황의 소녀들을 붙잡아 주는 동료 소녀들이 있다는 점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게 좋은 인상을 주지 못 했던 것은 지독하게 감상적인 문장, 얼기설기 엮어놓은 설정,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상투적인 상황들 때문이다.
내가 받은 인상은 한 마디로 지극히 소녀적이라는 것이다. 스트리밍 서비스의 상위권에 링크된 뮤지션 저자가 내놓은 이 작품의 세계관이 청소년 독자층에게 줄 수밖에 없는 지대한 영향력을 생각하면 두려운 생각이 엄습한다. 그것은 내가 너무나 안소녀이기 때문일까.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식이 이래도 되나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짧은 시간에 이만큼 읽힌 이유 또한 있을 거라 생각하며 마음이 복잡했다. 아무래도 나는 이미 너무 어른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에 장점이 있다면 그것은 청소년 시절에 가질 수 있는 감정의 극대화를 이 소설이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 아닐까.
작가의 창작 동기가 무척 궁금해졌다. 그는 이런 생각을 하며 청소년기를 보냈을까, 아니면 첫 페이지에 나온 청소년들의 자살을 다루는 방식에 대한 비판의식이 있었던걸까, 그도 아니면 공감했던걸까. 이 책의 첫 페이지에는 '이 세상의 모든 소하, 태수, 유민, 보현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라는 헌정사가 있다. 시간이 흐른 뒤에 그는 이 문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게 될까.
중요한 건 이 책이 청소년 혹은 청년들에게 읽히고 또 호응이 있다는건데, 그들을 이해하고 싶었다는 정도로 이 이야기를 갈무리하려고 한다. 삶과, 죽음을 말하는 방식이 청소년기에, 청년기에 이럴 수도 있는 거니까. 그때의 나를 떠올려 보았다.
이 책을 읽은 청년들의 이야기를 찾아 읽어 보았다. 그들의 그 순순한 반응에 나는 조금 더 좌절했다. 하지만 청년들은 그 자리에 머무르지 않을 것이기에. 그 역시 청년인 작가의 의도가 세상 끝 어딘가에 고통받고 있는 누군가에 혼자가 아니라고, 함께 있어주고 싶다고 보낸 메시지일 거라고 이해해 보려 한다.
그 의도 하나를 믿으며 그 마음에 긍정을 보내본다.
#3월에읽은소설
#자몽살구클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