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긴밤』을 읽고
J에게
엄마 없는 밤, 잘 보내고 있니? 내 아가. 엄마는 실은 너 없는 밤이 그렇게 길지 않아. 미안하지만, 사실이야. ㅋㅋ 아직은. 가끔 네가 걱정되거나, 포동포동한 볼을 만지고, 안고도 싶지만. 실은 그건 아주 잠깐이야. 생각보다 엄마 강하잖아.
물론 지금 네 옆에 잠들어 있는 사람이 있어서 그럴 거야. 할머니도 엄마만큼, 아니 엄마보다 더 너를 사랑하니까 정말 엄마는 걱정이 하나도 안 돼.
있잖아. 언젠가 엄마가 너를 두고 멀리 가야 한다고 해도 네 옆에 할머니랑 아빠랑 두 분이 계신다면 엄마는 아무 걱정 없이 훌훌 떠날 수도 있을 것 같거든. 그런데 그런 행운이 있을 거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어? 그래서 요즘 발 동동 구르고 다니는 건가 봐.
언젠가, 엄마가 없는 세상에, 너를... 엄마는 그 생각만 하면 숨이 막혀 와. 그렇지만 말이야. 엄마가 최대한 오래 살아볼게. 요즘 엄마 노력하는 거 알지? 백 살까지, 일단 백 살까지 살 수 있게 더 열심히 몸 관리해 볼게.
엄마가 <긴긴밤>을 읽었거든. 이런 이야기인 줄은 몰랐는데, 제목만 읽어도 뭔가 먹먹해지기는 하더라. 제목이 암시였지. 정말 제목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먹먹하더라고.
<긴긴밤>은 이름이 없는 펭귄 이야기야. 이름이 없는 펭귄 이야기, 한 번 들어볼래?
이 펭귄은 아빠가 셋이란다. 엄마는 없고 아빠만 셋. 이 아기 펭귄은 동물원에서 태어났는데 아빠 셋이 차례로 돌봐줘서 별 탈 없이 튼튼한 펭귄으로 자랄 수 있었어. 물론 견디기 힘든 긴긴밤은 있었지. 하지만 그때마다 자기를 포기하고 아기를 지켜준 아빠들이 있어서 긴긴밤을 견디는 법까지 배우게 되었어.
엄마가 살아보니까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정보와 배움이 넘치지만 정말 꼭 배워야 하는 건 넘어지는 법, 긴긴밤을 견디는 법, 그리고 다시 일어나는 법인 것 같더라고.
우선 긴긴밤을 견디는 방법을 알려줄게.
있잖아. 옆에 누군가 있다면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또 그가 괜찮다고 하면 네 이야기도 하는 거야. 앙가부는 기분 좋은 이야기를 하면 좋다고 했어. 하지만 엄마 생각엔 슬픈 이야기도 괜찮아. 슬픈 이야기도 자꾸 말로 꺼내다 보면 그냥 사실인 이야기가 되기도 하거든. 마음에만 담고 있으면, 말이 되지 않은 이야기가 사람의 본성을 해치니까. 아가, 엄마 생각에는 단단한 사람이 되려면 슬픈 이야기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해.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 그러면 몸이 따뜻해지고, 또 따뜻해진 몸에는 차가움이 덜 쌓이는 것 같거든. 아! 꼭 옆에 있는 사람과 나눠 먹어야만 해.
좋은 사람을 옆에 두고 꼭 그보다 하나 더 나누길 바라. 엄마 생각에는 안 좋은 사람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 그것 같거든. 하나만! 너무 많이 나누려 하면 그것도 실례일 때가 있기도 하고, 위험 부담도 있거든. 어쨌든 네가 하나 더 나누었는데도 그가 네게 나쁘게 하면 그건 운이 없었던 거니까 힘들어할 필요 없어. 언제나 운이 좋을 수는 없는 거니까 그땐 운이 없었구나 인정하면 돼.
엄마가 네 옆에 꼭 좋은 사람들이 가득 차도록 사는 동안 열심히 노력할 거니까 그것도 걱정 마. 간혹 나쁜 사람이 있더라도 좋은 사람들이 옆에 많으면 다 좋아질 거야. 아, 걱정은 엄마만 한다고? 그니까, 말이야... 부모란 건 그냥 대신 걱정해 주는 사람이 아닌가 싶을 때도 있어.
그래서 이 말도 꼭 해둬야 할 것 같은데 말이야. 사랑하는 사람이 곁을 떠났을 때는 어떻게 견디는지 아니? 네가 보살필 누군가, 아니 무언가가 꼭 있어야 해. 보살펴야 할 누군가가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많은 것을 견딘단다. 그래서 엄마는 네가 꼭 무언가를 보살필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라. 엄마가 네가 그렇게 자랄 수 있게 열심히 할 거야.
그래도 있잖아. 넌 다른 누군가가 될 필요는 없어. 코끼리도, 코뿔소도, 될 수 있더라도! 넌 그냥 네 모습 그대로 자라면 돼. 네 본성대로. 네가 뭘 가지고 있건 네 모습 그대로 자랄 수 있도록 엄마도 단디 지켜보다가 노든처럼 멋지게 말해 줄 거야.
“저기 지평선이 보여? 초록색으로 일렁거리는. 여기는 내 바다야.”
“그러면 나도 여기 있을게요.”
“아니야, 너는 네 바다를 찾으러 가야지. 치쿠가 얘기한 파란색 지평선을 찾아서.”
<긴긴밤> 115쪽
코뿔소 아빠 노든은 왜 아기 이름을 안 지어줬을까? 그래도 좀 지어주지. 생각했는데 다 읽고 생각했어. 아, 그 아기 펭귄이 어떤 이름이었든 결국 무엇도 될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하고.
아가, 너도 무엇도 될 수 있단다.
사랑하는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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