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아직 충분히 더 살아봐야 하는 게 아닐까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를 읽고

by 강여자


J에게



영국 작가 매트 헤이그의 소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를 읽는데 니 생각이 나더라. 그래서 이 편지는 너에게 써야겠다고 생각했어.



언젠가 넌 그랬지. 그래도 난 행복하지 않냐고.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오래 생각했어. 그래서 내가 가장 힘들 때 널 생각했나 봐. 이제는 네게, 죽고 싶단 말은 하지 말라고 해도 되는 걸까. 우울해도 살아보라고 말할 자격이, 내게도 생긴 걸까.



이 책,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는 30대 중반의 여성,노라가 주인공이야. 누구에게도 의미 있는, 사랑받는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지. 그러다가 삶을 버릴 결심을 하게 돼, 그 결심을 실행으로 옮겼을 때 그녀는 자정의 도서관에 가게 됐어. 도서관에는 그녀가 살아봤을 수도 있는 삶의 기록들이 책의 형태로 소장되어 있어. 삶의 어느 순간 다른 선택을 했다면, 갖게 되었을 수많은 삶들이 있는 거지. 그곳에서 노라는 과거의 선택을 바꿔서 다르게 살아보는 기회를 얻게 돼.



흥미로운 설정이지? 내가 살았을 수도 있는 다른 삶을 살아 보다니! 만약 그 삶이 마음에 들면, 영원히 그 삶에 남을 수도 있고, 실망스러우면 다른 삶으로 가버리는 거야.



이 책, 상당히 재미있어. 생각지 못한 인물이 나오며 이야기에 재미를 주기도 하고, 후반부로 가면 다양한 삶과 감정들이 몰아치는데, 나는 그 이야기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었어. 도서관으로 가기 전까지, 그러니까 자살을 시도하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만 빼면 말이야.



앞부분은 분량으로 치면 기껏 30 페이지 정도인데 나, 우울한 이야기 싫어하잖아. 감정이입을 너무 잘하다 보니까 삶이 온통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감정을 따라가는 건 조금 힘들었어. 그 이야기가 조금만 더 길었더라면 이 책을 포기했을지도 몰라.



누군가 스스로 가치 없다고 느끼는 것도, 가까운 이들에게 합당하지 않은 이유로 비난받는 것도 힘들었어. 그래서 그때 니 이야기들이 그렇게 힘들었던 거고. 내가 보기에 넌 정말 충분히 멋졌으니까. 충분히 멋진 네가 스스로를 그렇게 낮게 평가하는 게 난 이해가 되지 않았어. 내가 유난히 부정적인 생각을 싫어하긴 하지. 그런 성향 때문에 내게도 문제가 생겼던 거고.



너도 알겠지만, 나 2년 정도 약 먹었잖아.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첫 직장에서 클레임 전화를 너무 많이 받았어. 아침에 출근하면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내가 하지도 않은 잘못 때문에 나에게 마구 화를 내는 거야. 그 일을 1년 정도 했나? 자면서도 전화를 받아. 꿈에서도 사람들이 자꾸 화를 내. 그게 그렇게 힘들더라. 두 번 재발하면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고 했지만 이제 약 없이 잘 해내가고 있어.



난 이 작품 전체가 우울을 겪는 사람들에게 작가가 하고 싶은 말 같다고 느꼈어. 한 사람이 삶을 포기하고 싶어 할 때 왜 자신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지, 다양한 사례들을 말해주는 책이야. 그것이 왜 틀린 믿음인지, 혹은 비합리적인 신념인지를 노라가 살아본 삶들을 통해서 말해주더라고. 그리고 우울을 가진 사람들이 어떤 경우에 삶을 포기하는지, 그리고 어떤 경우에 다시 살고 싶어질 수 있을지 방법을 말해주고 싶어 해.



노라는 자신이 되지 못한 사람, 이루지 못한 일들의 관점으로만 자신을 보았다.
정말이지 한두 개가 아니었다.
마음속에서 후회가 끝없이 반복되었다.
(50p)



나도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 다시 뭔가 먹고 싶다거나, 뭔가 하고 싶은 게 생길까 싶던 순간들. 그런 순간들이 인생에 한 번만 오는 것도 아니더라. 그런데 있잖아. 아이를 낳고 나서는 죽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 없어. 그게 노라처럼 아이를 향한 비이성적인 사랑 때문은 아닌 것 같아.



그냥 살아보면서 알게 됐어. 아이를 낳기 전에 겪었던 두 번의 경험이, 그때마다 나를 단단하게 해 줬더라고. 근데 있잖아. 막상 아이를 낳고 살아보니까, 예전에 그렇게 나를 힘들게 했던 감정의 문제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운명 같은 일들이 생기더라고. 물론 이전의 일들이 가벼웠던 건 아니지만, 이래서 인생은 계속 살아봐야 하는 건가 봐. 이번 생은 진짜 굴곡 투성이야. ㅋ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게? 그때, 그 일들이 없었다면 나 지금 그대로 폭삭 무너졌을 텐데, 그랬으면 어쩔 뻔했나 내가 무너졌으면 우리 딸은 어째, 싶은 거야.



이제 나쁜 경험이 있으면 좋은 경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인 듯했다. 노라는 자신이 삶을 끝내려고 했던 이유가 불행해서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불행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우울증의 기본이며 두려움과 절망의 차이점이기도 하다. 두려움은 지하실로 들어가게 되어 문이 닫힐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 반면 절망은 문이 닫히고 잠겨버린 뒤에 느끼는 감정이다.
(308p)




이 책 말이야, 할리우드 영화 같은 구석은 있지만 나는 참 좋았어. 지금만큼 살아보기 전에는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충분히 몰랐던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녀 안에는 아직 개발되지 않은 자질이 있었다. 무대에서 노래하지 않았거나 북극곰과 싸우지 않았거나 사랑과 두려움과 용기를 흠뻑 느끼지 않았더라면 결코 몰랐을 자질이었다.
(362p)




우린 아직 충분히 더 살아봐야 하는 게 아닐까.





#책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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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라이브러리를읽고

#하늘에어둠이드리우며푸른빛이검게물들어도

#별은여전히용감하게널위해반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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