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선,『글을 쓰면서 생각한 것들』을 읽고
가끔 코로나 팬데믹이나 혹은 학생 시절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할까 생각하곤 한다. (그렇다, 내겐 학생 시절이 팬데믹과 맞먹는다.) 이를테면 꼼짝없이 틀어박혀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상상해 본다. 그러면 누에가 뽕나무 잎을 먹듯이 서걱서걱 책을 읽고, 실을 뽑듯이 글을 쓰겠다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인생의 암흑기에 오히려 자기 세계를 쌓아가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나는 예민한 감정을 타고나 보통은 고통에 휘둘리느라 오래 앓으며 한 시기를 보내곤 했다. 그러다가 정신이 돌아올 때쯤 읽고, 쓰기 시작한다. 그러니 어느 시기쯤엔 고통의 과정 없이 읽고 쓰기로 넘어가면 좋을 텐데 하다가도, 충분히 괴롭지 않고 그게 가능할까 싶어지곤 한다.
그러느라 어느새 중년이 된 나는, 이제 나의 정체성을 쓰는 것에서 찾는다. 읽는 사람이라고 하기엔 내 기준에 좀 못 미치고, 쓰는 것만큼은 변하지 않는 나의 본질이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쓰고 싶어서 쓴다기보다는 쓰지 않을 수 없어서 쓴다.
그렇게 쓰다 보니, 어느새 욕심이 생겼던가 보다. 내 이름을 건 무언가를 내고 싶다, 그런 욕망에 사로잡혔다. 그 욕망에는 추진력이 있어서 작년 한 해 열심히 쓰기는 했다. 하지만 뭔가 전에 없던 감정이 따라왔다. 이만큼 했으면 무슨 결과물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감정이 내내 좀 불편했다. 스트레스가 따랐던 거다.
쓰고 있다는 감각, 차곡차곡 글이 쌓이는 사실이 좋았다. 하나하나 최선을 다해 쓴 글들이었다. 그런데 공모에 떨어지니 모두 하찮게 느껴졌다. 진지하게 대한 만큼 전보다 훨씬 나아진 글이었는데도. 하지만 출발점이었던 공모에 떨어지니, 순식간에 의미가 없어져 버렸던 것이다.
본질이 달라졌음을 깨달았다.
이십 년간 글을 써온 작가 임경선은 내가 품은 질문처럼, 글을 쓰며 생겨난 수많은 감정과 의문을 끈질기게 따라간다.
나에게 재능이 있을까
AI와 함께 글을 쓸 수 있을까
누가 작가인가
어떻게 나아갈 수 있을까
초반엔 너무 원론적인 이야기가 아닌가 했는데 2장부터 완전히 몰입해 버렸다. 선명하게 떠오르는 문장들이 있었다. '삶의 진실을 알고 싶다. 나를 흔드는 이 고통에서 해방되고 싶다. 쓰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다. ' 와 같은.
이제 막, '쓰는 사람'으로서의 나를 알았는데 외적인 성공이나 작가라는 이름 등을 좇느라고 또 세월을 보낼 수는 없는 일이다. 다 덜어내고 진지하게 쓰는 상태로 살아가기로 한다. 여유가 있건 없건 누가 나를 주저앉히건 아니건 상관없이, 누에가 뽕나무 잎을 먹고 실을 뽑듯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싶다.
작가는 결국 글자 그대로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 어떻게 그것을 만들지는 천차만별일 것이다. 각각의 방식은 그 자체로 존중되어야 하며, 자신의 자리에서 더 나은, 더 깊은 글을 쓰기 위해 분발할 뿐이다. 작가라 불리든 말든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글을 쓰려고 늘 갈증을 느끼며 무진장 애를 쓰는, 작가라는 호칭이 아니라 '글'에 진심인 사람을 우리는 기다리는 것이다. (19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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