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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 Mar 03. 2023

엽편소설

유부녀는 썸도 못 타나?

"한국에서는 결혼했다고 좋아하기를 중단합니까"?


서레의 서툰 한국말에

미선은 남편과 영화를 보다가 혼잣말을 했다.


" 이 영화에서 탕웨이는 서툰 한국말도 연기처럼 들려.
그니까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데,  결혼했다고  
좋아하는걸 그만하라는 그런 법이 어디 있어.
결혼한 게 뭐가 중요해 좋아하면 계속 좋아할 수 있는 거지,


가만 보면 한국사람들이
유난히 유부남 유부녀를 강조하는 거 같아. "


맥주를 마시던 남편이 미선에게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 왜  50이 넘어서 연애라도 한번하시게?
 어디 몰래 숨겨놓고 좋아하는 유부남이라도 있어?"


미선이 남편을 향해 눈꼬리를 올렸다.


" 미쳤어? 말이 그렇다는 거지. 당신은 말을 해도 꼭그렇게 배배
꼬아서 받아들이더라."


"이 영화  미장센 어쩌고 저쩌고 해도 딱 보니까 불륜미화 영화구만
너 혼자 봐 난 잘 테니까 "


부스스 일어나는 남편을 향해 미선이 쏘아붙였다.


" 야. 내가 언제 극장엘 같이 가자 했어?
 집에서 영화 한 편을  같이 못 봐?"


" 내일 모레 딸내미 시집보낼 엄마 입에서 아직도 사랑타령이나
하고 잘하고 있다."


남편은 거실탁자 위에 맥주 하나를 들고 작은 방으로 사라졌다.


미선은  몇 개 남지 않은 오징어 뒷다리를 씹으면서


Tv 모니터를 끄고

안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부부가 각방을 쓰면서 편해진 점은 서로 얼굴 붉히고 나서도

각자의 공간으로 피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미선은 침대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새벽기차님의 블로그입니다.


그녀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새 글쓰기를 클릭했다.


그녀는  블로그에 영화 리뷰를 주로  섰다.
딸이 대학을 입학하면서 코골이가 유독 심한 핑계로 부부는 각방을


쓰기 시작한 지 5년이 됐다.  자신만의 방이 생기자 가장 먼저

해보고 싶었던  일이
블로그에 글을 쓰는 일이었다.


대학 2학년 때 캠퍼스에서 남편을 만나
연애하면서 임신을 하게 되고 그녀는 학교를 자퇴하고,


결혼 후 전업주부로 살림만 하면서  살았다.
 그녀는  늘 일기를 썼고,

용기를 내어 5년 전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자신의 글이 블로그를 통해 처음 세상에 나올 때 느꼈던 행복과 성취감을 잊을 수가 없었다.


처음으로 새롭게
존재감을 느낀 것이 바로 글쓰기의 시작이었다.


그녀는 아무에게도 자신의 블로그를 알려주지 않았다.
그녀의 블로그는  구독자는 많지 않았지만


꾸준하게 댓글을 달고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영화리뷰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조금씩 생겼다.


 블로그에는 사적인 이야기를 쓰지 않고
오로지 영화이야기만 썼다.


헤어질 결심이라는 영화는 개봉한 지 한 달이 지난 영화였다.


미선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써 보려고 마음먹고
자판기 위에 손을 올렸다.

헤어질 결심  영화를  초반에 보다가 멈추었습니다.

다 보지도 않고 리뷰를 써보기는 처음입니다.

우리는 결혼하면 왜 좋아했던 사람과의 관계를 정리하는 걸까요?

도덕적 잣대 앞에서 결혼과 동시에 한때 좋아했던 사람들을 정리하고,

좋아하고 다가가려고 하는데, 상대가 결혼했다는 이야기를 본인에게든
타인에게든 들고 나면 우리는 그 마음을 접어버립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이렇게 결혼이라는 도덕적 장벽 앞에

쉽게 접힐 수 있다면 바람직 하지만,

좋아하는 마음을 접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까요?


 성숙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 까 생각해 봅니다.
이성 간의 사랑을 인간적인 유대감으로 그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 까요.


호감이 가던 어떤 사람이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우정이라는 인간적인 감정으로 순화시키는 건 정말 힘들까요.


남자들은  이성에게서 끌리는 감정이 육체적 욕망이 먼저라서 그 육체적
끌림을 제어하지 못하기 때문에,  여자를 친구로 곁에 두지 못한다고
말하는데,  여자들은 조금은 다르답니다.
 여자들에게 호감은 언제나 정신적 유대감을 깔고 가기 때문에
호감이 가던 어떤 사람이 결혼했다고 해서 좋아하기를 중단하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그 호감의 진로 방향을 바꿀 뿐이지요.  인간적인 유대감으로든
우정으로든.... 짝사랑이든... 그렇게 시간 안에서 좋아하는 마음이 변해 가는 걸
보게 됩니다.


"당신을 결혼을 했습니까"?


"나는 결혼을 했습니다"


저는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먼저 서로에게 호구 조사를 하듯
이런 대화를 한다는 것이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여겨집니다.


하지만 이런 질문도 대답도 중년의 나이에게는 할 필요가 없지 않나요?
모두 했다는 가정하에서 출발하니까요?


그러기에 상대에게 보이는 호감은 여러 가지를 내포하고 있다고 봅니다.


나는 당신에게 인간적으로 끌리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의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저는  나는 이렇게 해석해요. 남자들의 속셈은 대화하는 중간에 읽히고,

이성으로써의 만남을 요구하면
단칼에 상대의 호감을 잘라버리기도 하지만 되도록이면 우정이라는 감정교류 쪽으로
시도해 보는 게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 엄마 나 왔어. "


미선이 글을 중단했다.
 딸이 방문앞에 머리만 내밀고 있었다.
" 엉 수고했어. 빨리 씻어"


미선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딸은 자기 방으로 사라졌다.


그때 카톡으로 문자 메시지가 왔다.


" 새벽기차님 행복한 잠.  꿀잠 주무세요"
미선은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주책없이 뛰는 심장을 쓸어 내렸다.
" 건담님도 편안한 꿈 나로.. 굿 나이트"
건담이라는 닉네임의 남자는 1년 넘게 미선의 독자이며 영화리뷰에 댓글을 달아주는  애독자 였다.


자신의 글을 추앙한다는 남자와
 그녀는 며칠 전 전번을 주고받았다.


그녀보다 여섯 살이 어렸고, 예의 바르고 다정다감한 남자였다.


서로 나이를 밝혔을 때 남자는 아무런 이야기가 없었다.
미선이 누나라는 호칭을 써도 된다고 했지만 남자는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며
달라질 게 없다고 말했다.


" 저는 늘 그쪽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요, 한번 만나서 얘기 나누면 안 될까요?"


" 저는 오프 모임을 하지 않습니다. "


 대화는 카톡으로 이렇게 시작되었다.
일요일 아침 남편과 딸이 외출하고 미선은

혼자
거실에서 헤어질 결심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그때 다시 문자가 왔다.


" 새벽기차님 제가 지금 서울에 나갈 일이 있는데..
잠깐 뵐 수 있을까요?"


미선은 리모컨버튼으로 영화를 중단했다.


"어쩌지 어떡하지 마음을 다잡아야 해.
흔들리면 안돼 이러면 안돼지"
미선이 답장을 했다.


" 분명히 말씀드렸을 텐데요. 오프는 하지 않는다구요"


문자를 보내 놓고, 혼란스럽고 뛰는심장을
진정 시키려고 전화기를 보지 않았다.


이 사람을 도대체 나랑 뭐가 하고 싶은 거지
만나서 무얼 어쩌자는 거지...


오후가 되자  산책을 나가려고 핸드폰을 켜는데


건담이라는 남자로부터 2통의 부제 중 전화가 떠 있었다.


그녀는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 뭐 전화 통화쯤이야 어쩌겠어 괜찮아 전화정도는 ..."


전화 속 남자의 목소리는 조용하고, 느렸다.


" 반갑습니다. 새벽기차예요."


" 기차님 ,  화나셨나 했어요. 제 전화를 안 받으셔서요.


기차님이 예전 어떤 글에서 용산에 사신다는 기억이 났는데
제가 오늘 그쪽으로 갈 일이 생겨서... 혹시 시간이 되실까 해서요."


" 몇 번을 얘기해요. 전 오 프안 한다고, "


" 왜요? 전 기차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싶어요. 외모나 그런 거 전 신경 안 써요."


"서로  글로 소통해서 대충은 어떤 사람인지 알지 않나요?"


"글하고 또 실제 만나면 다르죠!"


"사람 다 거기서 거기죠.
만난다고 뭘 알 수 있을까요?
 만나지 않아도 다 알 수 있기도 하고요.
전 타인보다는 자기 자신에 대해 더 궁금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오프모임을 하지 않는 이유는 사람으로부터 저를 보호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현실에 기반한 관계를 중요시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영화를 보면서
사람의 본질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고, 모든 사람은 다 비슷하다는 결론에
도달하자 새로운 사람들에 대한 흥미가 많이 사라졌습니다. 사람들이 주는 에너지보다는
저 자신을 알아가는데 에너지를 쓰는 것이 저는 훨씬 더 저를 행복하게 해 준다는 걸 알았습니다."


미선을 긴 이야기를 하고 나서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 제가 아직은 관계 맺음에 서툴러서 여자친구를 깊이 사귀지를 못해요."


" 아! 건담님 싱글이세요?"


" 독신주의는 아닌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누구는 뭐 관계 맺는 게 쉽나요?"


미선은 이야기가 길어지자 여유를 찾았다.


자신만의 농담도 하면서 1시간이 훌쩍 흘렀다.


" 저는 이제 신랑과 식사할 시간이라서 전화를 끊겠습니다. 대화 즐거웠고요. 이제는  온라인에서 만날게요."


그때 상대가 흠칫 당황했다.


"아니 결혼을 하셨다고요?"


"네? 왜 제가 결혼을 안 했다고 생각했죠?"


" 그건,,,,글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별로 없어서..."


"  쓴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 아 그렇군요.  제가 하머 터면 실수할 뻔했군요. 전 싱글이 신줄 알고....."


" 아 괜찮습니다 이제라도 알았으면 된 거죠"


그들의  대화는 이렇게 끝났다.


미선은 마치 숙제를 하나 끝낸 듯 마음이 홀가분 해 졌다.


알지도 못하는 남자와 전화통화 한 번으로 마치 불륜을 저지른듯한 불편함이 있었지만

앞으로는 건담과의 훈훈한 우정 같은 것이  싹틀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올라왔다.


친구가 될지도 모르는 설렘이 저녁을 준비하는 내내 콧노래로 변했다.

그때 건담으로 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녀가 메시지를 읽었으면서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뜨거운 솥단지에 덴 것 마냥 핸드폰을 집어던졌다.


" 제가 이성적으로 호감이 있다는 걸 아시면서 결혼도 하신 분이 전번을 주신 겁니까?


지금까지 그런 제 감정을 혼자 즐기신 겁니까? 절 갖고 노신 겁니까?


몹시 불쾌합니다.  글 쓰시는 분이라 좀 다를 줄 알았는데..  모든 인간관계를 자기 마음대로

규정 짖고, 자기 합리화로 관계를 만들어 가면 안 되죠."



  전화 상으로는 한마디 반론도 없던 사람이

전혀 다른 이야기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미선은 주저앉아서 일어나지 못했다.
이 사람은 지금까지 나와 무슨 대화를 했으며


온라인에서 읽은 내 글의 맥락을 어떻게 이해했으며, 또한 나와의 소통에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성찰하며, 인간에게서 느끼는 유대감을 왜 이런 식으로 왜곡하고,  판단하는 것일까?


여자와 남자는 왜 연애감정으로만 묶여서 인간적인 교류를 도덕적 잣대로


연결 지여 생각하는 건가!


내가 이런 사람을 상대로 내 귀한 1시간을 열심히 에너지를 써가면서 대화했단 말인가!
우리가 궁극적으로 사람과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이유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미선은 침착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자판을 두드렸다.
" 아니 무슨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다합니까? 누가 누구를 갖고 놀았다고,
진짜 어이없네 , 너  다시는 나한테 문자질하지 마"


라고 썼다가 다시 지웠다.


"아니지.. 그래도  잠시라도 나를 추앙한다던 남자인데,  품위를 지켜야지


새벽기차 넌 글 쓰는 여자야, "


미선은 다시 자판을 두들겼다.


"  그쪽이 그렇게 보이고 느끼셨다면 사과드립니다. 앞으로 참고하겠습니다."


답장을 보내고 당황스러운 마음을 추스르고 나니 마음에 평화가 다시 찾아왔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다시 문자가 오고, 부제 중 전화가 떴다.
미선은 두려워졌다. 마치 세상의 모든 화살이 자신을 향해
부정한 여자라고 날아오는 것만 같았다.


건담의 전화번호를 차단했다.

미선은 저녁 내내  혼자 중얼거렸다.


"유부녀인 주제에 감히 총각과 감정을 교류하려고 과욕을 부리다니"


" 아니 그게 뭐 어때서 유부녀는 뭐 누구랑 썸도 못 타나"


"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불 밖은 위험하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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