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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 Apr 10. 2024

복수

망각.

복수라는 소재는  수십년째 통용되는 드라마나  영화 소설의 단골 메뉴 이다.

복수를 얼마나 통쾌하게 하느냐!

그 과정을 즐기는 것이다.

갱단을  무참히 살해하는 킬빌. 딸을 유과 살인한 유괴범에게 복수하는 아버지의 이야기. 복수는 나의것 . 과거 자신의 비밀을 폭로했다는 이유로 15년간 한 인간을 감금시키는 올드보이.

복수극 처럼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장르도 없다.가해자들이 잔인하면 할수록 관객들은 피해자가 억울하면 할수록  복수를 통해서 얻는 대리만족은 크다.



일단 영화에서는 복수의 대상은 죽어마땅한 놈이어야 한다. 거대 권력으로 확대될수록   좋다. 법은 믿을 수 없다고 외치며  자신이 직접 복수의 화신으로 변하면 변할수록 관객은 짜릿하다. 범인의 실체를 모를때는 형사가 나서서 범인을 찾아내고

법정에 세워 기어히 사형이라는 선고를 받아내야지 속이 시원하다.

사형대위에서 죽어가는 가해자를 보면서

피해자는 응어리를 풀고 복수는 마무리 된다.

(악에게 지지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로마서의 구절은  때에 따라 잘 써먹으면 복수에의한 살인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처럼 확실한  단어도 없다.

인간의 감정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감정이 바로 복수심이다.

복수심은 인간을 강인하고 지칠줄 모르게 한다.  앞만 보고 달리게 한다.

이성적으로 만들어준다.

자식을 무참하게  잃은 부모의 복수는  고통스럽게 죽은 자식의 원한을 풀어주고  최후까지  상대방에게 앙갚픔을 하는 걸로 끝이난다.

부모는 미루어 짐작한다.

자식이 죽는 순간 얼마나 괴롭고 고통스러웠을까! 자식의 고통까지 본인의 몫으로 가져와서 분노하면서 자식의 원한을 풀어주어야 한다고 외친다.  죽은자는 말이 없다.

죽은자를 위해 산자는 복수를 한다고 하지만.

 복수는 자신을 위한것이다.


자식을 위한것은 아니다.

복수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신의 모든 행복을 빼앗아간 상대방을 제거해서  괴로운 자신의 증오 분노를 해소하고 끝에는 마음의 평안을 얻는데 목적이 있다.

부작용은 복수가 이루지고 나서 생기는 법이다.

죽어마땅한 자 들이 현실에서는 알고보면 한 아이의 부모이고 한 부모의 자식이라는 순환고리가 따라다니고 복수가 복수를 낳기 때문이다.


여자들에게 가장 흔한 복수의 단골 소재는 역시 남편의 불륜일 것이다.

하늘같이 믿었던 남편이 바람을 피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사랑이 식었구나 이혼해야겠다" 라는 마음보다는 배신감에 불타면서 복수를 꿈꾸게 될것이다.

남편의 불륜은 평온했던 자신의 가정이 깨어지는 소리이며 궁극적으로는

나의 평온을 깨뜨린 주범이 남편이 되는 것이다.


사랑은 중요하지가 않다. 인간의 가장 궁극적인

존재이유는

자신의 평온을 지키는 것이다.

복수를 떠올리면

복수라는 소재를 남편의 불륜과 버무려 잘만든

 부부의 세계라는 한때  핫한 드라마가 있었다.

 커리어 우먼 선우는 완벽한 가정이 있다. 그녀가 노력으로 일구어놓은 가정은  아름 디운 성이었다. 어느 날 그 성이 산산이 무너진다.

두 여자를 동시에 사랑하고 싶은 로맨티시스트 남편은 두여자를 향한 자신의 두 마음을 사랑이라고 믿는다. 남자의 나르시시즘은 철저히 거짓으로 일관된 생활을 유도한다.

능력있는 의사를 부인으로 두고 그녀가 번 돈으로

 어리고 거기다  부유하기 까지 한 여자와 바람을 피우고 아이까지 임신을 하게 된다.

이런 사실 만으로도 청천벽력 할 일인데, 부인 몰래 집 담보로 대출을 받고 몰래 비자금을 빼돌리고 있다는 사실에 여자는 복수를 결심한다.

 내 인생에 남편만 도려내고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겠어!라는 대사를 되뇌면서......

아내는 복수를 결심한다.

기대할만한 복수극에 피가 끓는 카타르시스가 생겨나면서 드라마를 보게 만들었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면서 느끼게 된다.

이 이상하리만치 흥분되는 감정은 지고지순한 여인을 배신한 남편이 처절하게 응징당하는 그런 기대감이 아니었다.  남의 가정을 파탄 낸 권선징악의 도덕주의적 안도감도 아니었다.

 결혼이라는 쇼윈도 부부가 낱낱이 파헤쳐지는 스릴도 아니었다.

이 드라마가 여타 다른 불륜 드라마와 차별되는 것은.

주인공의 철저한 고립이다.

복수의 화신이 되어 선전포고를 하는 우리의 영웅이 복수의 과정에서

위선과 가식으로 똘똘뭉쳐진  스스로 민낯이 드러나는 과정이었다.

주인공이 복수의 칼날을 들이대자.

모든 등장인물들이 가면을 쓰고 자신의 욕망을 향해 질주하는 레이스에 인간의 본성이 파헤쳐졌다.

사회적으로 유능한 의사이며 지고지순하며 가정을 위해 헌신했던 그녀 선우는 완벽한 여자였다.

성공한 인생이며  사랑받는 아내. 다정한 엄마. 우정 어린 친구들이 곁에 있고,아끼는 이웃 동생을 둔, 존경받는 의사였다.

하지만 실상은 모두 그녀의 착각이었다.

모두가 그녀를 질투하고 그녀의 가식을 알고 있었다.  

아무도 그녀를 이해하고 그녀를 진심으로 아껴주었던 사람이 없었다. 2년 동안 그녀의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었던 일에 모두가 동조자였고 그녀 자신만 모르고 있었다.

남편의 뒷조사를 하면서 그녀는 자신이 철저하게 사람들로부터  외면받고 있었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믿었던 사람들의 배신. 아니 스스로가 혼자서 완벽한 가정 완벽한 자신의 인생에 도취되어 살았다는 걸 알게 된다.



보통의 불륜 드라마에서는 남편의 배신 뒤에는 늘 든든한 여자의 지원군들이 버티고 있다. 내편인 자식들, 든든하게 나를 지원하는 시부모들, 배신당한 나를 다독이는 친구들.

하지만 이드라마의 반전은 철저한 주인공의 고립이다.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고 시어머니에게 울면서 하소연 하지만 너의 숨 막히는 완벽한 틈 안에서 내 아들이 숨 한번 제대로 못 쉬고 살았다며 며느리를 공격한다. 시어머니의 따뜻한 위로 따위는 없다..

 고등학생 아들마저도 남편의 불륜을 감싸면서 아빠가 배신한 사람은 엄마이지 내가 아니야! 난 아빠와 살겠어 엄마는 나랑 놀아 준 적도 없이 늘 일만 했잖아! 늘 나랑 다정하게 놀아준 사람은 엄마가 아닌 아빠야! 라며 아빠 한 번만 용서해주면 안 돼!

라며 주인공을 당황하게 만든다.

복수를 향해 달리는

한 사람의 모든 것이 무너질 때 우리는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 절망과  욕망의 방향은 어디로 흐를지... 모든 인물들이 그 심리를 따라  생생하게 서로 반응하고 갈등한다.

남편의 불륜 따위는 이제 아무 문제도 아니다 서로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해 생존을 건 싸움이 시작된다.

 전쟁터가 따로 없다. 지고지순하던 그녀 선우는 사이코처럼 변한다.

자신의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더 가치 있는 것들을 내팽개 친다.

위선과 가식을 벗어던지는 인물들의 당당한 민낯은 카타르시스를 준다.

처음에는 복수로 시작하지만 지성을 갖춘 주인공이

이성을 잃어가면서 까지  집착하고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점점 파국으로 몰아가면서 지키고 싶은 게 과연 무얼까!

복수를 위해

처음에는 가정이라는 성을 버리고

아내라는 자리를 포기하고.

마지막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엄마라는 마지막 자리를 지키기 위한

사투를 벌인다.

복수를 통해 남편을 파멸시킨 그자리에

자신의 승리는 있을지 모르지만

마음의 평안은 사라진다.

복수라는건 결국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사투이다.

악을 응징해서 자신을 지켜내는 일이다.

자신의 인생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복수는 어디까지 인가 . 우리는 질문해 보아야한다.

진정 우리 인생에서 지켜야 할게 무엇인지...

복수의 끝에 찾아 오는게 무엇인지...

사실 복수는 큰것에서 부터 시작해서 아주사소한 것까지  일상을 시작하면서

부터 시작된다.

아침에 눈 뜬순간 부터 우리의 사소한 복수혈전이 시작된다.

 어젯밤 혼자 축구를 보면서 밤늦게 술판을 벌였던 남편이 남길 쇼파위의 쓰레기들.

그렇게 잔소리를 해도 치우지 않는 남편에게 아침에 아침상을 차려주지 않는것으로 소심한 복수를 하고.

꼴보기 싫은 상사에게 하는 복수는  인사는 하되 웃음을 지어보이지 않게 하고

싸가지 없는 후배 인사는 가끔 생까고.

너무예뻐서 질투나는 동료에게" 너오늘 화장이 쫌 떠보인다."

라고 한방날리는 복수를 하고 이렇게 소심한 복수를 할때.  마음한쪽이 또 외친다.

" 참 후지다 후져 "

역시 가장 통쾌한 복수는

내마음에서는 복수의 대상을

 지워버리는 것이다.

무관심해지는 것이다.

복수의 궁극적인 목적이 내마음의 평온이라는걸 명심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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