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TNAM, QL1A
# Prologue
불타는 듯한 날씨와 타는 듯한 목마름. 그 속에서 일주일간의 베트남 분노의 질주에 대한 글이다.
대장정을 마친 나는 샤워를 하고 눈에 보이는 티셔츠를 줏어 입고 에어컨 바람을 쐬었다.
온갖 감정이 몰려오면서 이 순간이 혹시 내가 평생을 기다려 온 순간은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절뚝거리며 나가서 사 온 음료수를 종류별로 한 모금씩 마시며 나는 그 순간을 기록하기로 했다.
# 대장정의 소박한 시작
1 (베트남 하노이의 잡지사에서 1년쯤 일하고 있었다.)
비자 문제도 해결할 겸 대만 여행을 다녀왔더니 집 앞에 세워둔 내 오토바이를 누가 가져가 버렸다.
2 일주일의 노동절 휴가가 주어졌다.
3 베트남의 해안도로는약 2200km로 칠레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4 체게바라는 중남미를 오토바이로 여행한 뒤 체게바라로서의 명성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사실 이 모든 것들은 그다지 상관이 없다.
어쨌든 약간은 무모한 내 여행의 이유가 되어준 것들이다.
베트남의 1번국도(QL1A)는 해변을 따라 남부에서 북부를 가로지르고 있다.
호치민, 무이네, 나짱, 다낭, 후에, 하노이까지 유명한 도시들을 지나고 있어서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나는 일 년동안 베트남에서 살면서 한 번에 여덟가지 일을 한 적도 있을만큼 돈을 열심히 벌었지만, 버는 족족 새로운 도시를 모험하는데 사용되었다.
좋아하는 장소에 다시 가 보고 그 동안의 여행 속 추억들을 곱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렜다.
하루에 300km씩, 시속 60km, 5시간씩 달리면 하노이까지 일주일이면 충분히 도착할 것이라 생각했다. (중간에 그 단순한 길을 헤매고 화물차나 대형버스 옆을 달릴 때는 자전거보다도 못한 속력이 되어버렸으며 엔진이 과열되면 하염없이 오토바이와 함께 쉬었다.
결국 매일 여섯시간에서 많게는 열시간까지 나는 열심히 운전을 해야했다.)
출발 직전, 여권을 사무실에 두고왔음을 알았다.
마이쩌우 일정에서 예상보다 늦게 도착해서 이미 마음은 조급해진 상태에서 일어난 비극이었다.
(일주일의 여정을 앞두고 마이쩌우, 목초라고 불리우는 시골마을에서 2박 3일을 묵었었다.)
그 와중에 어김없이 연착되는 비엣젯까지.
나는 새벽이 되어서야 호치민에 도착했고 호스텔 주인을 깨워 남은 도미토리에 체크인을 했다.
다른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생쥐처럼 살금살금 씻었고, 그렇게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 호치민
다음 날 아침, 호치민에서 저렴하게 오토바이를 구매할 수 있는 곳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다. 마침 적당한 가격으로 나온 매물이 (당연히) 없었기에 하는 수 없이 일단 데탐거리로 향했다.
여행 책자에 의하면, 많은 사람들이 1번 국도를 따라 베트남 일주를 하기 때문에 여정을 마치고 저렴한 가격에 자신이 타고 온 오토바이를 판매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 곳에서 조언도 구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더운 날씨 탓인지 거리엔 여행객조차 많지 않았다. 결국 로컬 매장에서 중고 혼다 웨이브를 300달러에 구매했다. 계량판은 아무것도 작동되지 않았고 털털거리는 엔진 소리가 마치 “날 하노이까지 타고 갈 생각은 말아줘”라고 애원하는 듯한 오토바이였다. 어쨌든,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친구는 결국 나와 함께 여행을 완성해주었다.
*구매 팁: 뒷 좌석에 배낭을 묶을 수 있는 줄을 부탁하자. 헬멧과 함께 못 이기는 척 내어주신다.
호치민 시내를 조금 더 구경하다가 주유를 할 생각이었는데, 바로 무이네로향하는 고속도로가 이어졌다.
급한 마음에 길거리의 아주머니께 기름을 구입한다. 오토바이 대국인 베트남에서는 필요하다면 거의 언제 어디서나 기름을 구할 수 있다.
주유소에 비해 비교적 가격이 비싸고 기름에 불순물을 섞어 파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여러번 들었던 터라 미리 확인하고 주유소가 보일 때마다 채워두려 노력했다. 주유는 5만동씩(약 2,500원), 하루 평균 두 번정도 했다.
완전히 채워진 오토바이가 힘차게 달렸고, 나는 역사적인 출발에 들떴다. 고프로로 동영상을 촬영하며 여행자 기분을 냈으며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다.
두 시간이 채 되기도 전에 난 엄청난 기온 속 긴장감에 지쳐버렸다. 아가를 업은 엄마가 어디선가 갑작스럽게 튀어나온다거나, 오토바이 행렬에 섞인 자전거가 느릿느릿 앞을 가로막아 생각처럼 속도를 낼 수 없었다. 대형 화물차가 쌩- 하고 옆을 지나갈 때는 '꼭 살아서 돌아가야한다'를 염소같은 목소리로 중얼대는 공포에 질린 겁쟁이를 볼 수 있었다.
결국 길가의 껌빈전에서 잠시 쉬며 늦은 점심을 먹었다. 고기로 속을 채운 두부와 숙주나물, 한화 500원. 베트남은 정말 가난한 여행자에게 무한히 착한 나라다.
# 변명
오토바이 여행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한 번에 너무 오래 달려서는 안된다는것. 서울에서 고향인 포항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내려가다가 엔진이 과열되어 못 쓰게 된 경험이 있다. 그 때를 떠올리며 이번엔 두 시간 간격으로 길거리에서 코코넛으로 목을 축이거나 땟국물과 함께 흘러내리는 땀을씻어내는 시간을 가졌다. 짧은 베트남어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사진을 담기도 하며 엔진 과열을 핑계로 꿀같은 휴식을 취했다. 탄산 음료를 주문해서 마시고 계시던 옆 자리의 아저씨는 오토바이 여행을 시작한 나를 그려주셨다.
호치민에서 판티엣까지 오는 길은 단순하다. 표지판이 계속 가야할 길을 알려주고있으며, 샛길이 없기 때문에 보이는 큰 도로로 달리기만 하면 된다.
# 무이네
판티엣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첫 기념사진을 찍었다. 바다는 아름다웠으며 축축한 바람이불어와 기분이 좋아졌다. 마침 해도 어둑하게 지고 있었으므로, 나는 딱 여기까지만 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항구 옆에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을보니, 무이네에서의 추억이 넘실대는 것 같았다. 20km만 더 달리면 첫 날의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고 그 동안 아름다운 바닷길이 이어질 것이기에 힘을 내보기로 했다.
야심하게도 무이네로 넘어가는 길에 해가 졌다. 밤 눈이 어두워 깜깜해진 뒤에는 더 이상 운전을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일단 무이네 초입의 아무 숙소에나 짐을 풀었다. 정해진 스케줄이 없기에 숙소도 예약해두지 않았지만, 시간이 늦었고 굉장히 지친 상태였기에 ‘조금 비싸더라도 오늘은 그냥 자야지’ 생각했다. 화장실 딸린 2인용 방이 12만동(한화 약 6천원). 침대 두 개를 붙여서 넓게 누워보았다. 길었던 첫 날을 종알종알 공유할 사람이 없어서 조금 외로웠다. 무이네 맛집 람통 (92D Nguyen Dinh Chieu, Mui Ne)에서 갈릭 오징어를 주문하고 바로 옆에서 치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맨발에 얼음을 가득 띄운 맥주를 마시는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바다 따라 나짱으로
말도 외로움도 많은 나는 혼자 하는 여행이 늘 힘들다. 그럴수록 소소한 기쁨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여 추억을 찾는 여행을 떠난 여주인공의 감상을 덧입고 정성스럽게 다람쥐 커피를 내려 코코넛 과자와 함께 천천히 아침식사를 했다. 기막히게 향긋한 냄새를 풍기며 머그잔을 채우고 있는 커피를 호로록 거리고 있었지만 막상 마음은 해가 더 기승을 부리기 전에 출발해야 한다는 생존본능에 더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내 어촌마을입구가 나타나고 백여개의 까이뭄(무이네의 둥근 전통배)이 통통 띄워진 바다가 나타난다. 지난번에 왔을 때도 이 곳에 매료되어 한참을 서 있었다. 기념 자석을 파는 소년이 다가와 뻔뻔하게 12만동 (한화 약 6천원)의 가격을 불렀었고, 귀여워서 이야기를 조금 나누다가 1만동 (5백원)에 결국 샀던 기억이 났다.혹시나 오늘도 아이가 관광객들에게 작은 기념품들을 내밀고 있진 않을까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다시 달리기 시작한 1번 국도는 환상 그 자체였다. 해변도로가 말 그대로 정말 ‘바다 옆을 그대로 달리는 도로’ 였다. 바닥에 그어진 안전선 외에는 파란 바다와 오토바이 위에 앉은 나 뿐, 아무것도 없었다. 얼떨결에 낸 용기가 스스로 기특했다. 영상을 찍고 노래를 부르고 가끔 오토바이에서 내려서 사진도 찍었다. 구글맵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 함박웃음을 지으며 달렸다.
#모래와 바퀴와 소
사막이 나타났다. 지난 번, 화이트 듄을 구경하러 오토바이를 몰고 왔다가 넘어졌던 곳에서 두 번이나 다시 넘어졌다. 목에 걸고 있던 카메라가 떨어지면서 모래 속으로 파묻혔다. 자꾸만 아래로 모래구덩이만 파내며 헛도는 바퀴를 억지로 끌어 당기며 비틀비틀 오토바이가 굴러가는지 내가 굴러가는지. 도통 정신줄을 붙잡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내 여정에 먹구름이 서서히 드리워지고 있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모래와 더위와 오토바이와 이 모든 것을 시작한 나와 사투를 벌이는 동안 기름은 어느새 E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 곳에 고립된다는 생각에, 또는 오토바이를 끌고 모래밭을 통과해야한다는 생각에 공포스러웠다. 그때 눈 앞에 소 떼가 걸어왔다. 흰 소, 까만 소, 큰 소와 작은 소 까지 묵묵히 그리고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발을 동동 구르며 화를 내고 있던 나는 소보다도 참을성이나 인내심이 없는 인간인가 머쓱해졌다.
이 당시 길을 시멘트로 덮는 공사중이었으니 지금쯤 완공되었을 수도 있겠다. 길이 포장되었는지 미리 확인하고 출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또는 나짱으로 가는 다른 길을 알아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굳이 사막을 달리게 되는 상황이라면 조금 바퀴가 큰 오토바이를 타거나 소지품을 모두 가방에 넣고 꽁꽁 묶기를 추천한다.
비포장도로는 결국 끝이 났고, 나는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채, 무사히 주유를 성공했다. 허기가 몰려와서 시간을 보니 오후 세 시. 모래 속에서 다섯시간을 고통받았던 셈이다. 일단 보이는대로 길가에 열 받은 오토바이를 세웠다. 열 살을 조금 넘은 듯한 꼬마가 나왔고 나는 껌땀(Cơm Sườn, 돼지갈비를 얹은 밥)을 급히 주문했다. 놀랍게도 꼬마는 컴퓨터 옆 가스레인지에 능숙하게 후라이팬을 올리고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접시에 밥을 푸고, 오이와 토마토로 장식을 했다. 구운 고기와 계란 후라이까지 덤덤하게 얹어 내고선 다시 돌아가 노트북으로 보고 있던 만화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혼자서 가게를 보는 어른스러운 꼬마의 모습에 다시 머쓱해져 먼지 소굴이 된 콧구멍을 힘차게 풀고 딸기맛 에너지 드링크를 얼음잔에 부어 들이켰다.
오토바이로 베트남일주를 시작한 지 3일 째, 고작 400km의 거리를 이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