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의 반란, 코엔지에게 작별을

저마다의 길을 걸어갈 때, 작별인사 하는 법

by 조서형

작가 한수희는 가난하긴 하지만 무너지지 않으려는 품위에 대하여 '가난 동경'이란 에세이를 썼다. 여행자 커뮤니티 Clouff의 대표 최낭만은 ‘결핍에서 오는 긍정에너지’를 찬양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꼬질꼬질한 차림에 반짝반짝한 눈빛의 짠내 스웨거들을 사랑한다. 나는 근 1년 6개월을 일본, 동경의 코엔지(高円寺)에서 살았다. 신주쿠에서 JR선으로 불과 9분 거리에 위치한 이 곳엔 아주 작고 튼튼한 친구들이 살고 있다.


Normal Crush
Normal(보통의) + Crush(반하다). 화려하고 자극적인 것에 질린 20대가 보통의 존재에 눈을 돌리게 된 현상을 설명하는 신조어다. 예능 프로그램 <한 끼 줍쇼>에서 이효리가 아이에게 "뭘 훌륭한 사람씩이나 돼. 하고 싶은 대로 그냥 아무나 돼."라고 한 이야기가 노멀 크러시의 예시로 언급된다. 아무나 되라는 것은 아무렇게나 살라는 것이 아니다. 나답게 살자는 것이다.
나답게 살려면 동경(憧憬)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목이 터져라 울어도 배가 고픈지, 발이 시려운지 살피고 달래줄 엄마는 이제 없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들어줄 사람은 나 자신뿐이다. 코엔지 주민들은 아무나로 사는 사람들의 집합이다. 망설이거나 주저하거나 괜히 하는 고민은 이곳에는 없다.


아마추어의 반란
이력서의 주소를 보고 일본 회사 면접관이 "아마추어의 반란(素人の乱) 입니까?"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아마추어의 반란>은 코엔지를 배경으로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다. 마쓰모토 하지메의 에세이 <가난뱅이의 역습>,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Q84>의 배경 역시 코엔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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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공동체

공동체의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을 아웃사이더라 부른다. 아웃사이더의 공동체라는 건 역설적이다. 코엔지에서는 이것이 가능하다. 동네 전체에 별난 사람들의 오밀조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에 쫓겨 가며 불법 버스킹을 하는 가수, 기괴한 옷을 덧입은 멋쟁이, 길에서 작품 활동 중인 아티스트 등 종류별 돌아이들이 느슨한 공동체를 이루어 재기발랄하게 까불며 산다.
코엔지 역을 중심으로 약 36km 정도 되는 거리가 아티스트들의 제품을 판매하는 편집샵, 일러스트 전시가 열리고 있는 카페, 인디 밴드들이 공연을 하는 라이브 하우스, 재활용 숍, 주인이 매일 바뀌는 술집이 뒤죽박죽 얽혀있다.

코끝에 겨울이 밀어닥칠 때면 추천하고 싶은 장소는 코엔지의 노천 야끼토리(꼬치구이). 테이블은 없다. 뒤집어 겹쳐서 인도에 아무렇게나 내놓은 맥주 박스에 내키는 대로 자리를 잡으면 된다. 수더분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시원한 하이볼 한 모금, 잘 익은 꼬치 한 입. 코엔지, 가을 밤의 낭만.

코엔지는 일본 펑크 음악의 발생지다. 널린 중고 레코드 가게와 라이브 클럽에 희귀 음반을 찾기 위한 컬렉터들이 모여든다. 싸구려 약으로 탈색을 하고 징 박힌 가죽 잠바를 입은 불량한 음악가들이 앉아있는 골목이라면 근처에 분명 라이브 하우스가 있다. 유치한 자작곡을 유쾌하게 울려퍼지는 공연장이 두 번째 추천 장소다.

진귀한 구경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세 번째 장소는 코엔지의 후루기야(古着店). 자본에 의해 점령당한 하라주쿠와 시모키타자와가 빈티지 쇼핑의 메카라면 코엔지에서는 100년이 넘은 웨딩드레스, 소 똥 냄새가 밴 카우보이 조끼, 속이 훤히 보이는 비닐 오버롤 등 입을 수 없을 듯한 옷을 내놓는다. 유행에 맞춰 트렌디한 제품을 가져다 놓는 게 아니라 고집스럽게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템만 늘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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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 to be alone, and to share with strangers!
I made pancakes for mooses, only 3 came
Making nice with the inhabitants
Don’t know what you’re trying to tell me but I trust you
Or maybe I just don’t care
Life is always like this, never give in
Will the exiles ever get organized?
Always must enjoy

오 혼자 있으리, 그리고 낯선 자들과 함께하리!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그들을 위해 팬케이크를 만들었지만,
세 명밖에 오지 않았네.
이곳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은 마음에.
내게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난 당신들을 믿어.
아니라도 상관 없고.
인생은 늘 이런 것. 굴하지 말자.

- 유코 오쿠라


가진 짐을 다 팔아버리고 짐은 다시 덜렁 15kg 하나가 되었다. 살던 동네를 이야기하는 글을 하나 쓰고 일본을 떠나기 전 마지막 식사를 위해 코엔지를 걸었다. 낡고 때 탄 스피커나 300엔짜리 구두와 100엔 짜리 맨투맨에 나는 많은 순간 공감하고 교감하고 이 거리를 동경했다. 구질구질하고 없어 보이는 것들이 왁짜지껄 늘어 앉은 주제에 콧대 높은 가격을 달고 있는 코엔지는 돈이나 명예에 차갑다. 무관심하다. 코엔지가 열의를 다하는 것은 오직 인생을 즐기는 것뿐이다. 대뜸 꿈이랍시고 튀어나온 일에 (잡지를 만드는 에디터가 되고 싶어졌다.) 나는 도쿄에 작별인사를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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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도 쓰고 사진도 찍어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 더 이상 주말 아르바이트를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호떡 팀장님께 이야기했다.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진지한 면이라곤 없는 그는 맑고 또롱또롱한 눈빛으로 “오. 난 좋다. 재밌을 것 같은데? 난 응원한다. 찬성이야. 열심히 해라.”와 같은 말을 연달아 했다. 도쿄의 뜨거운 철판 앞에서 우리에게 실수란 재미의 어머니였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한 때의 후회의 눈물과 함께 오는 것이니까 실패한다 하더라도 사람들을 웃기면 될 일이니 두려울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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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야의 셰어하우스에서 침대를 나누어 쓰던 사야도 만났다. 하치코 동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자고 했다. “마지막이니까 진짜 잘 찍을 사람을 찾아보자. 좋은 포토그래퍼를 찾아봐.” “Hi. Are you a good photographer (안녕? 너는 훌륭한 포토그래퍼니?)” 사야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구구절절 우리의 사연을 소개했다. “우리는 1년 반 전, 뉴욕과 서울에서 도쿄로 왔어. 침대를 나누어 썼고, 이 친구는 꿈을 위해 시베리아보다 추운 서울로 돌아갈 참이야. 나는 친구를 응원해주고 싶어. 나는 화가고, 친구는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 우리는 둘 다 예술가여서 친해졌어. 우리는 시부야에 살았지만, 하치코와 사진을 찍은 적이 없어. 좋은 사진을 찍어줄래?”


그녀와 마지막 식사를 나누며 나는 잡지의 에디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정말 자랑스러워. 에디터가 되다니. 멋있어.” “아직 된 게 아니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주일 전에 이력서를 썼을 뿐.” “그냥 됐다고 해. 그냥 너가 에디터라고 해. 어차피 될 거잖아. 사실 아무도 신경쓰지 않아.”

사야는 이번에 자신에게 새로 생긴 꿈에 대해 말해줬다. 그 젠장 맞을 꿈 때문에 자기가 버는 모든 돈을 어떻게 지독하게 모으면서 살고 있는지도 - 걸어서 일하러 가고, 돈을 아끼고, 집중하고, 열심히 간다(Walk to work, Save money, Pay attention, Grind hard). 우리는 매우 재능이 있고, 거의 매번 절박하고 (남이 보기에 불쌍하고 궁상맞을), 그 절박함에서 솟아나는 백팩 멘탈리티Backpack Mentality 창의력은 얼마나 대단한 것들인지 자랑하듯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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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모두 여행을 떠나겠지.
저마다의 길을 걸어갈거야.
네가 가진 꿈을 포기하지 말길.
뜨겁게 살아있는 눈동자가 맘에 들어.
지지 않기를, 분해하지 않기를.
너답게 빛나기를.

- 오카무라 타카코, 꿈을 포기하지 마세요(岡村孝子, 夢をあきらめない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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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분야에 발을 들여도 될지, 도쿄에서 떠나 다시 서울에서 살 수 있을지 짧지만 치열했던 고민은 진심이었다. 생각하는 동안 물론 매우 설레었지만 또 고통스러웠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 생각하니 묵직한 무게가 느껴졌다. 열심히 살아온 사람일수록 상처가 많다. 자주 시도하는 사람이 확률적으로 많이 실패하고 실패하는 일은 어쩔 수 없이 아프다. 실패에서 올 괴로움은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하면 도움이 된다. 나만 겪은 것 같은 치명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것 같은 어떤 사건도 자잘한 생활 기스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스스로 마음을 다독이며 공항 커피숍에 앉아 있었다. 어느덧 익숙한 불안함을 온 몸으로 받아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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