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람을 길들인 풍차소년>
“안 돼. 밥 다 먹고 먹어.”
자유의 일부를 엄마가 쥐고 있던 어린 시절, 끼니마다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안타깝게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밥과 조물조물 무친 나물, 먹기 좋은 크기의 어린이 돈가스 같은 건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내가 먹고 싶은 건 오직 달고 시원한 아이스크림이나 초콜릿을 씌운 과자 같은 것이었다. 와작와작 씹고 손가락에 묻은 것까지 남김없이 핥고 나면 기분이 좋아졌다. 긴 소년기를 거쳐 마침내 밥을 먹기 전이건, 이미 먹었건, 밥 대신으로도 얼마든 단 걸 먹을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얼마 전, 나는 오랜 바람이었던 오븐을 샀다. 드디어 좋아하는 디저트를 직접 만들어 먹기에 이르렀다. 근 네 달을 재료를 사다 나르고, 버터를 휘젓고, 반죽을 맛보고, 오븐 앞에서 황홀해 하고, 먹고 친구들에게 나눠주는데 시간을 보냈다.
쿠키와 케이크를 만들 때마다 SNS에 업로드했더니 인사처럼 묻는 사람이 많아졌다. 왜 갑자기 베이킹에 열심인 건지, 디저트 가게를 오픈한다거나 하는 목표가 있는건지, 베이킹의 매력이 무엇인지 와 같은 질문들이었다. “아, 내가 단 거 좋아하는 거 알지? 워낙 자주 사 먹으니까, 그 돈으로 차라리 직접 만들어 먹으면 어떨까 예전부터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오븐을 진짜 사게 된 거야. 내가 먹고 싶은 디저트를 그때그때 만들어 실컷 먹을 수 있는 게 좋지. 카페는 무슨~ 내 입에나 맛있지 돈 받고 팔 수 있겠어? 아니 근데 하다 보니 재밌더라고. 공부도 같이 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긴 해.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 다음에 구워 줄게.” 나의 답변은 상대가 민망하지 않을 정도의 수준에 그쳤고, 상황에 맞춰 조금씩 달랐다. 굽고 먹기만 할 줄 알았지, 정말 아무 생각이 없구나. 빈약한 답변을 두고 생각했다. 쌓아두고 읽은 수많은 인터뷰 집의 수려한 답변이랑 비교가 되는 순간이었다. 책에 있던 답처럼 말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확한 계량은 곧 오차 없는 결과물을 만들어줘요. 세상은 맘처럼 되지 않지만, 베이킹은 정직해요. 그게 저에게 큰 위안이 되더라고요.’ 할 수 있다면 남의 대답이라도 베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럴듯한 이야기를 찾지도, 안 찾지도 못한 채 그저 베이킹 이야기를 피하기 시작했다.
소설 <한국이 싫어서>를 쓴 기자 출신 작가 장강명은 최근 에세이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낚시가 취미인 사람에게 ‘클릭 몇 번이면 산지 직송 생선을 배달 받을 수 있는데, 뭐 하러 낚시를 하냐’고 묻지 않는다. 직장 동료가 댄스 학원에 다니면, 그저 멋지다고 생각하고 응원할 뿐 ‘언제 아이돌로 데뷔하세요?’라 물어보지 않는다. 애호가들은 그런 질문을 받더라도 당당하게 ‘좋아서 하는 것’이라 대답할 것이다. 그러니 그저 희열이나 손맛을 느끼면 되는 것이지, 지나친 자기 검열은 필요 없다. 목적을 자신에 두고 좋아서 하면 된다고. 이거지! 신이 나서 밑줄을 마구 그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바람을 길들인 풍차소년>에는 아프리카 말라위의 열네 살짜리 소년 윌리엄이 등장한다. 지독한 가뭄으로 먹을 것은 없고, 80달러의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학교에서 쫓겨났으며, 혼란한 정치 상황에 마을 분위기 마저 흉흉하다. 몰래 과학 수업을 듣고 도서관을 오가며 공부를 계속하던 윌리엄은 쓰레기 더미에서 주운 부품과 아빠의 자전거로 풍차를 만들어 낸다. 그의 풍차는 바람을 에너지 삼아 모터를 돌리고 굳은 밭에 물을 댄다. 윌리엄은 기근의 위기를 넘기고 말라위에서 대학을 간 다음, 벤처캐피털의 지원으로 미국 다트머스 대학교에서 환경학을 공부하게 된다. 현재 그는 저개발국가 주민을 대상으로 기술을 교육하는 일을 하고 있다. TED 강연에 선 그에게 ‘어떻게 풍차를 만들게 되었냐?’는 질문이 던져졌다. 그는 아래와 같이 짧고 강렬한 답변을 남긴다.
학교를 그만둔 다음, 도서관에 갔어요.
그리고 <에너지의 사용>이라는 책을 읽었어요.
풍차 만들기에 대한 정보를 얻었어요.
도전했고 만들었죠.
After I dropped out from school, I went to library.
And I read a book was <Using Energy>
And I get information about the windmill
I try, and I made it.
- TED 강연 중에서
그렇다면 나도 ‘왜 과자를 굽게 되었냐’는 질문에 이 정도로 답하면 어떨까? “시도했고, 맛있어서요.” 강연에서는 도전했고 만들었다는 답변이 박수와 함성을 받았는데, 나의 같은 대답은 이상하게도 성의 없게 느껴진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 보자. 러닝타임 한 시간 반이 넘도록 윌리엄은 풍차를 만들기 위한 시도조차 하지 못한다. 학교 선생님의 자전거에서 발전기를 처음 발견한 윌리엄은 페달을 구르면 빛이 나는 원리를 알아내지만, 그 이후로 한참을 지리하게 아무 진행 사항이 없다. 담배 농장에서 주민들에게 나무를 모두 사 가고, 마을은 홍수를 겪는다. 윌리엄은 전기가 없어 시험 공부를 못하고, 쓰레기장에서 폐부품을 주워 놀고, 고장 난 라디오를 만지작대고, 교장 선생님에게 모욕을 당하고, 그나마 겨우 하루에 한 끼씩 먹던 음식을 모조리 약탈 당하고, 밤 사이 누나가 집을 나가고, 메마른 땅을 몸이 부서져라 일구고, 아빠에게 자전거를 달라고 눈물로 호소한다.
이 지난한 과정을 겪으며 주인공은 홍수와 가뭄, 비료와 종자 값, 끝없는 노동과 배고픔이 나를 지배하는 삶에서 벗어나겠다고 다짐했을 것이다. 나무 기둥과 자전거로 풍차를 만들어 논에 물을 대는, 모두가 기대하던 장면은 영화가 끝나기 직전에서야 나온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오래 진득하게 우리의 목을 콱 막히게 한 다음 ‘I try, and I made it’ 이라는 짧은 대사로 시원하게 뚫는다. 윌리엄의 답변이 사이다 같을 수 있었던 것은 기나긴 고민이 농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베이킹을 갓 시작해 그저 남의 레시피를 한 번씩 흉내나 내보고 있는 내가 ‘도전했고, 만들었습니다.’라 답하는 게 별 의미가 없는 게 당연한 것이다. 쿨하고 속이 시원하기보다 뜬금포인 것이다. 앞서 기준을 자기 자신에 두고, 당당하게 ‘그냥 좋아서’로도 충분하다고 조언한 작가 장강명 역시 같은 책에서 고민의 시간이 농축된 답변의 중요성을 말한다.
당신의 답이 당신의 개성이다. 개성을 발전시킨다는 것은 결국 삶과 세계에 대한 관점과 견해 인생관, 세계관을 쌓는 일이다. p. 119
- 책 <책 한번 써봅시다> 중에서
나는 뇌에도 일종의 근육이 있지 않나 상상한다. 그리고 이 경우에도 역시 에세이를 쓰는 것 자체가 근육을 키우는 훈련이라고 믿는다. 사색을 자주 할수록 사색하는 힘이 커지고, 에세이를 쓸수록 나만의 철학이 딴딴하게 영근다. p.131
- 책 <책 한번 써봅시다> 중에서
물론 ‘달콤한 음식을 좋아한다, 먹는 걸 좋아해서 만드는 것도 재미있다’로도 나의 취미 생활은 계속될 수 있다. 답변이 충분히 논리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내돈내산’의 취미를 막을 사람은 없다. 다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나아가 보기로 했다. 왜 과자 먹는 것이 좋은지, 어떤 디저트가 특히 더 좋은지, 내가 먹을 걸 스스로 만들어보니 기분이 어떤지, ‘아 맛있어. 행복하다’ 에 그치지 않고, 그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려 한다. 이제 알았다. 잡지와 책에 담긴 근사한 인터뷰의 정체를. 편집자의 손을 일부 탔겠지만, 그 답변들은 분명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깊숙이 들여다본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99가지의 풍차를 만들기 어려운 이유에도 불구하고 풍차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 한 가지를 고민하는 동안 윌리엄은 영글었을 것이다. 밑바닥까지 긁어 고민한 시간이 서툰 영어로 무대에 서서도 관중을 설득할 수 있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정확한 언어로 자기 안의 고통과 혼란을 붙잡으려 할 때, 쓰는 이는 변신한다. 그런 글을 쓰면 쓸수록 그는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간다. 에세이 작가는 단어와 자기 마음을 함께 빚는다. 한번 그 맛을 알면 점점 더 솔직하게 쓰게 된다. 에세이는 사람을 성장시키는 장르다. p.112
- 책 <책 한번 써봅시다> 중에서
누군가 나를 인터뷰해 책에 싣겠다고 오지 않았지만, 그럴듯하고 근사한 답변은 필요하다. 나를 설득해야 계속 월급의 일부를 버터와 밀가루, 설탕을 사는 데 할애할 수 있을테니까. 답변을 준비해놓는 일은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기 위한 과정이다. 이 사회가 내 자존감을 짓밟는다며 책을 찾아 읽고 강연을 들으러 다니더니 뒤늦게 어렴풋이 깨달았다. 나를 설득하고 나면 나머지 99가지는 그저 부차적인 일에 불과하다.
뭔가를 할 때마다 내가 지금 이걸 하는 이유를 제대로 찾으려면 번거로울 것이다. 그리고 그 고생스러움에는 의미가 있다. 작가 장강명은 그것을 이렇게 말한다. ‘의미를, 실존을, 흔들리지 않는 삶의 중심을 거머쥘 수 있는 기회가 바로 눈앞에 있다’고.
*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 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