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마음에 들어가 보니 분위기가 너무 좋아 보여, 약국을 열어야 낫는다는 '개국병' 기운이 나에게도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그런데내가 30분 정도 약국에 있는 동안 환자는 고작 3명이 다였고, 그마저정말 간단한 파스나 챕스틱을 사러 오는 게 아닌가.
A에게 물어보니, 경기가 너무 어려운지 사람들이 병원에도 안 가고 약국에도 약을 사러 오지 않는 것 같다고 하니 마음이 안 좋았다.
사실 의약분업이 된 이후로 약국은 병원에서 내려오는 처방전이 많이 들어오는 자리 혹은 일반약이 잘 팔리는 자리가 아니면 운영이 어렵다. 거기다가 일명 노른자 자리는 없을뿐더러 있어도 권리금이나 세가 어마어마하게 비싸다. 그러니 같은 약사들 사이에도 약국 자리싸움이 치열하다는 것.
다른 약국 자리를 여러 군데 알아보긴 했냐는 내 물음에 A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병원에 근무하던 또 다른 약사 S가 있었다.실수도 잦고 개선 방법을 얘기해도잘 듣지않았다. 나이가 20대 후반으로 어리니 나이 많은 40대와 말 섞기 싫은가 보다 짐작했을 뿐. 거기다가 휴식 시간에는 휴게실에서 잠을 자니 누군가와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다는메시지가 강했다. 내가 S에 대해 아는 정보라고는 아빠가 큰 사업체를 운영하셔서 부잣집 딸이고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
그 S가 관두기 3일 전에 갑자기 퇴사를 통보했고, 이유는 약국 개국이었다. 어디 학교 앞에 개국을 한다는 말만 들었는데 내가 알던 S는 느긋하게 그림을 그린다던가 누워있을 사람이라서 돈 욕심 없이 편하게 할 약국을 차린줄만 알았다.
한편 내가 만난 A약사는 5년이나 노리던 약국 자리가 있었다. 꼭 그곳에 들어가고 싶어서 자리가 나오면 먼저 연락을 받기로 약속도 했다고! 그런데 어느 날 그자리가 순식간에 다른 사람에게 팔렸다. 이 사건만도 충분히 힘들었을 A.
여기서 뜬금없이 S가 등장한다! 알고 보니 그 약국을 인수한 것이 S였다. 아빠의 자본력과 20대 특유의 민첩함으로 자리가 나오기가 무섭게 치고 들어간 건데 더 놀라운 건 A가 그 자리를 주시하고 있다는 것도 이미 알았다는 것. 좋은약국 자리 앞에서는 같이 일했던 동료는 없고 생존 경쟁만이 남나 보다.
어제 이 이야기를 듣고 집에 오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동료애는커녕 상도덕이란 것도 없는 요즘 세상이 참 각박하게 느껴졌고 마치 삶이 내게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았다.
"넌 어떻게 살 거야?"
누군가한테 악하게 대해 몸과 마음에 상처를 줘도 가해자 본인은 분명 잘 살아간다. 그런데 말이다. 세상이란, 내가 모르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고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연이란 어떻게 얽혀있는지 모른다.
악행을 저질러도 지금 정말 잘 사는 것 같은가? 내 생각에, 인생은 생각보다 길고 이번 생에 문제가 없어도 내 후세에는 그 악행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모른다는 믿음이 있다. 나는 무한경쟁보다는 무한 사랑의 힘이 분명 강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이 아니라 인생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참 좋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나는 오늘도 힘을 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