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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프와 광군제, 그리고 코세페

글로벌 온라인 세상에서 쇼핑법!

요즘 미국의 블랙 프라이데이가 연일 화제다. 블랙 프라이데이는 매년 11월 넷째주 금요일에 열린다. 11월 네 번째 목요일인 추수감사절의 다음날이며 세일 이벤트로 적자(red ink)에서 흑자(black ink)로 전환됐다고 해서 블랙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사전적으로는 이런 의미를 담고 있지만 보통은 이 날을 기점으로 크리스마스까지 세일이 이어진다. 

미국의 유통업체들은 이 기간 동안 창고에 있는 상품을 모두 내놓는다. 원래는 시즌 오프의 개념으로 재고 상품을 판매하는 게 기본인데 최근 전세계 소비자들이 몰리며 시즌 상품이 섞여 있는 경우도 있다. 사실 블랙 프라이데이는 어제 오늘 있었던 단순 이벤트가 아니다. 1920년대에 시작됐다고 하니 벌써 100년 전통의 세일 행사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블랙 프라이데이가 우리나라를 비롯한 글로벌 이슈로 떠오른 이유는 인터넷 때문이다. 엄밀하게는 해외 직구가 발달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블랙프라이데이(11월23일) 하루 온라인 매출만 7조원에 달했다고 한다. 실시간으로 미국의 블랙 프라이데이 행사장을 방문할 수 있게 됐고 해외 직구를 통한 구매량이 늘어난 것이다. 그러니 합리적인? 구매를 삶의 철학으로 삼고 있는 많은 소비자들이 이 기간 동안 광 클릭으로 득템을 시도한다. 

중국의 광군제는 블랙 프라이데이와 같은 국가적인 이벤트는 아니지만 국가적인 이벤트로 승격된 개념이다. 광군제는 중국의 최대 온라인 기업인 알리바바그룹이 11월 11일 하루 동안 여는 세일 행사다. 원래 광군제는 1990년대 난징(南京) 지역 대학생들이 11월 11일을 광군제라 부른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광군(光棍)이란 ‘가지나 잎이 없는 몽둥이’란 뜻으로 독신자나 애인이 없는 사람을 의미하는데 중국에서 가지나 잎은 자식이라는 의미가 더해진다고 한다. 또한 학생들은 숫자 ‘1’이 혼자 서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고 생각해서 1이 네 번 연속되는 11월 11일을 광군제라 칭한 것이다. 광군제 문화는 대학생 등 젊은 층을 중심으로 퍼졌다. 매년 11월 11일이면 사람들은 솔로들을 챙기고 소개팅이나 파티를 하며 선물 등을 주고받았다거 전해진다. 

알리바바의 광군제는 올해로 10년째를 맞았다. 알리바바측은 올해 광군제, 하루에 타오바오, T몰 등 여러 플랫폼을 통해 총 2,135억위안(약 34조7,000억원)의 거래액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기록인 1,628억 위안보다 27% 증가한 수치며 2016년 1,207억 위안보다 77% 증가한 것이다. 전 세계 75개국에서 1만9,000개 브랜드가 참여했고 알리바바가 투자한 동남아시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라자다, 음식배달 플랫폼 어러머 등도 참여했다. 

미국의 블랙 프라이데이와 중국의 광군제는 대륙을 대표하는 세일 이벤트라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미국의 블랙 프라이데이는 미국 전역의 유통업체들이 주도하고 중국은 알리바라그룹 한 업체에서 진행한다는 점이다. 미국과 중국의 문화 차이를 살짝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물론 연중 행사이기 때문에 상당수의 매출을 이날에 맞추는 경우가 많다. 흔히 말하는 가매출을 잡는 방법으로 이날로 매출을 맞춰 이벤트의 성공을 강조하기도 한다. 한국이나 미국, 중국 똑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벤치마킹해 몇 년 전부터 한국판 블랙 프라이데이인 코리아세일페스타를 정부 주도로 시작했다. 결과는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처참한 수준이다.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생각된다. 아무 때나 온라인 검색만으로도 코리아세일페스타 기간 동안 판매하는 상품의 가격과 질을 압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형편없는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우리나라의 유통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외국과 달리 위탁방식의 유통구조를 가지고 있다. 미국이나 중국에서는 제조업자가 유통업체가 원하는 상품을 만들어 팔면 유통업체들은 도매와 소매를 거쳐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이를 사입(wholesale) 방식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제조업체가 유통까지 책임지는 구조다. 이를 위탁(franchise) 방식이라고 한다. 롯데, 현대, 신세계 등의 유통업체들은 제조업체들이 생산한 상품들을 대신 판매하는 위탁판매점일 뿐이다. 또 명동, 가로수길, 광복동, 동성로 등 유명한 가두상권에 즐비한 매장들도 마찬가지다. 개인 사업자들이 제조업자가 만들어놓은 브랜드를 대신 판매하는 것이다. 

이 유통구조의 차이가 블랙프라이데이와 어떤 연관이 있는가를 이해하려면 재고의 유통 구조를 알아야 한다. 외국의 사입방식에서는 재고가 제조업체에서 유통업체로 넘어간다. 소유권이 완전히 이전되는 것이다. 하지만 위탁방식에서는 재고가 제조업체에 남아 있다. 유통업체나 대리점들은 시즌이 끝나면 재고를 제조업체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이런 구조 때문에 가격의 결정권도 사입의 경우 유통업체로 이전되지만 위탁은 제조업체의 권한이다. 따라서 블랙프라이데이나 광군제는 유통업체가 재고를 처분하기 위해 큰 폭의 가격 할인이 가능하지만 우리나라의 세일페스타는 제조업체들이 재고를 자산으로 잡고 있어 세일폭이 한정될 수밖에 없다. 

여기까지만 보면 사입제가 위탁제보다 우월한 제도인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우선 사입제의 경우 제조업체에서 유통업체로 상품이 넘어가기 때문에 브랜드 관리가 상대적으로 어렵다. 가격 질서도 그렇고 브랜드 이미지도 유통업체에 의해 좌우된다. 따라서 브랜드 인지도나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마케팅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반면 위탁방식은 제조업체가 생산에서 판매까지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브랜드 관리가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생산 물량과 마케팅, 그리고 가격 결정과 재고 처분까지 한 곳에서 일괄적으로 통제하기 때문에 브랜딩이 가능하다. 사실 요즘 유행하는 SPA의 구조가 프렌차이즈 방식에는 기본적으로 장착된 셈이다. 

다만 위탁 방식에서의 변수는 재고 관리다. 사입의 경우 유통에서 원하는 물량만을 생산할 수 있어 제조업체의 재고 부담이 거의 없다. 반면 위탁제의 경우 올해의 판매 목표를 기반으로 생산 물량을 결정한다. 특정 아이템이 인기를 얻어도, 혹은 인기가 없어도 기회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위탁 방식에서는 마크업, 배수율이 사입방식의 브랜드보다 높다. 재고 리스크를 판매가격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패션 브랜드의 마크업은 복종별로 조금 다르지만 평균 3~4배수 정도로 추정된다. 하지만 홀세일에서는 판매가격의 40~50% 수준이다. 즉 2~2.5배수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외국에서는 재고가 적고, 시즌 중 세일 행사가 많지 않다. 그리고 시즌 오프 세일 행사 기간 동안의 세일폭이 크다. 또 재고를 판매하는 아울렛이 우리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재고의 양이 많기 때문에 재고량을 조절하기 위해 수시로 세일 행사를 진행한다. 일부 브랜드는 상시 세일로 가격의 신뢰도가 무너져 아울렛에서만 판매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들 때문에 미국과 같은 방식의 블랙프라이데이는 성공할 수 없다. 다만 제조업체, 브랜드에서 가격 신뢰도를 높여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세일 행사를 줄여야 한다. 시즌 오프 행사를 1년에 1~2회로 축소하면 블랙프라이데이와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본다. 


"인디비주얼 저널리즘 짝퉁패션쇼(www.fashow.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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