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 - 2016
LES BLEUS, 레블뢰는 파란색 유니폼을 입고 뛰는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을 부르는 말이다.
1996년 레블뢰는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정치적 공격을 경험한다. 1995년부터 있었던 몇 차례의 테러는 1996년 극우정당 프랑스 국민전선이 선거에서 많은 득표를 얻는데 큰 힘으로 작용한다. 극우 정치인 장-마리 르펜이 이끄는 국민전선은 선거에서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흑인, 아랍인이 다수 포함된 레블뢰를 애국심이 없는 팀이라고 정치적 공세를 편 것이다.
불과 2년 뒤 레블뢰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알제리 출신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지네딘 지단이라는 새로운 영웅의 등장과 함께 우승을 차지한다. 극우정당에게 다양성으로 비판받던 레블뢰가 프랑스의 다양성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또다시 2년 뒤에 열린 2000년 유로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레블뢰는 마치 '비틀스' 같은 인기를 구가하며 전 세계를 돌며 친선경기를 갖는다. 그들은 이를 흑-백-아랍의 신화라 불렀다. 1996년 - 2000년까지의 첫 번째 챕터는 이 '신화'를 이야기한다.
이어서 2001년 ~ 2006년까지 두 번째 챕터 '몰락', 2007년 ~ 2011년 '혼돈', 2012년 ~2016년의 마지막 챕터 "통합"까지 영화는 이렇게 총 4개의 챕터로 구성된다. 프랑스 사회를 흑-백-아랍의 신화이자 프랑스 사회의 다양성을 대표하는 상징이었던 레블뢰를 통해서 바라본다.
스포츠는 정치입니다. 단순한 축구가 아니에요. 이 두 문장이 영화의 시작을 알린다. 프랑스 내에서 테러가 자행되거나, 선거가 있을 때나, 극우적 정치인이 많은 득표를 얻게 되면 레블뢰는 국가를 부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또는 특정 종교, 인종을 향한 정치적 공세에 직면한다. 반대로 레블뢰가 좋은 성적을 거둘 때면 정치인들의 인기를 얻기 위한 도구로 이용된다.
영화에서 눈에 띄는 장면은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9∙11 테러가 있던 해에 일어난다. 2001년 프랑스 정부와 청소년 및 스포츠부 장관은 130여 년간 식민 통치하던 알제리가 1962년 독립한 후 처음으로 친선경기를 개최한다. 40년 만에 이루어지는 스포츠 경기를 통해서 평화와 화해의 분위기를 조성하고자 한 것이다.
경기 당일이 되자 언론은 총리에게 전달된 중앙 정보국의 문서를 공개했다. 북 아프리카계 프랑스인들의 시위를 예상한 보고서였다. 삼엄한 경비와 감시 속에서 경기는 준비되고 있었다.
경기가 시작되기 1시간 전 선수들이 몸을 푸느라 분주한 때 알제리 대표팀의 유니폼을 입은 관중이 경기장에 난입해 제압된다. 프랑스 국가가 연주될 때는 경기장을 꽉 채운 알제리 팬들의 야유 소리로 뒤덮인다.
경기가 시작된 이후에도 레블뢰 중 유일한 알제리계 혈통인 지네딘 지단에게 계속하여 야유가 쏟아졌다. 이러한 야유에도 불구하고 레블뢰는 3골을 넣으며 앞서 나갔다. 후반전이 시작되고 알제리가 프리킥을 통해서 한 골을 만회했다. 만회골이 들어가고 얼마 뒤 알제리 국기를 든 한 관중이 경기장으로 뛰어들었다. 이어서 셀 수 없이 많은 관중이 그를 따라서 뛰어들기 시작했다. 경기장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들었고 스포츠부 장관과 총리가 퇴장을 권유해도 소용이 없었다. 결국 심판은 채 90분을 채우지 못한 75분 만에 경기를 끝내야 했다. 평화와 화해를 위한 경기는 혼돈 속에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프랑스 사회에서 이날의 실패를 더욱 문제시하는 이유는 경기장에 난입해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이들이 알제리 국민이 아닌 1998년 월드컵 우승을 보며 흑-백-아랍 신화에 환호하던 알제리 출신의 프랑스 국민이라는 데에 있다.
이에 더해 프랑스 국민전선은 이 실패를 기회로 삼았고 프랑스 대 알제리 경기가 열렸던 스타드 드 프랑스 경기장 앞에서 2002년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질서 있는 프랑스를 외치며 출마를 선언한 장-마리 르펜은 1958년 제 5 공화국이 수립된 이후 처음으로 극우정당 출신의 최종 결선 후보가 되었다. 다행히 그가 새로운 대통령이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나 이 사건은 프랑스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스포츠는 정치다. 단순한 축구가 아니다.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두 문장이다. 이 경기 또한 마찬가지다. 단순한 축구경기가 아니다. 당시 레블뢰에서 뛰던 릴리앙 튀랑은 말한다. “당시는 프랑스와 알제리가 화해할 때였다. 축구는 그러한 힘을 갖고 있다.” 반면 언론기자 클로드 아스콜로비치는 묻는다. 그 경기를 왜 했는지. “축구선수들에게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의 해결을 요구하다니 정말이지 부당해요.”
프랑스는 40년 만에 성사된 알제리와의 친선경기를 통해 레블뢰를 평화와 화해의 상징으로 만들어 양국에 화해의 분위기를 조성하고자 했다. 만약 경기가 성공적으로 끝났다면 그들의 바람대로 양국은 화해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레블뢰는 흑-백-아랍의 신화를 이어 양국의 평화와 화해의 상징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기대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부작용만 낳고 끝이 났다.
글쓴이 : 이재환
레저스포츠학을 전공하고 대학원 진학 예정, 2015년에 몸글몽글 1기를 만난 뒤 끊임없이 글쓰기를 시도중.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며 최근 스포츠와 인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