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과 11일 양일간 방탄소년단은 서울에서 ‘BTS MAP OF THE SOUL ON:E’ 이라는 명칭으로 콘서트를 개최했다. 당초 온/오프라인 동시로 진행될 예정이었던 콘서트는 코로나19로 인해 라이브 스트리밍 방식으로만 진행되었다. AMRY인 나도 11일은 약속을 비워두고 집에서 콘서트를 시청했다. 9월에 다른 가수의 온라인 콘서트도 시청을 했지만 방탄소년단의 공연은 확실히 차원이 다르긴 했다. 대규모 무대는 물론이고 증강현실(AR)을 뛰어넘는 확장현실(XR)과 4K 스트리밍, 다양한 앵글로 볼 수 있는 멀티뷰 등을 제공하여 시공간을 뛰어넘는 경험을 제공하고자 했다. 티켓 가격으로 약 5만 원을 결제하고 집에서 개인 노트북으로 시청해야 했지만 충분히 그만큼의 값어치를 느낄 수 있었다.
스포츠가 아닌 K-POP 아티스트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공연을 보면서 스포츠 중계의 미래에 대해 상상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해 한동안 TV에서 스포츠 중계가 사라졌었다. 열기를 더해가던 해외 프로축구리그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NBA 중계를 볼 수 없었다. EPL 중계가 없어지니 생각보다 주말 심야 시간은 무료했고, 무관중으로 시작된 프로야구 중계는 김 빠진 맥주 마냥 무언가 부족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 와중에 경험한 방탄소년단의 콘서트는 전통적인 스포츠 중계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위에서 언급한 방탄소년단의 콘서트는 191개 국가에서 관람했고, 이틀간 시청자 수는 총 99만 3,000명이었다. 티켓 결제자 기준으로 산정했음을 고려하면 실제 시청자 수는 100만명을 훌쩍 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기본 티켓값이 49,500원, 4K 티켓은 이보다 1만 원 더 비싼 것을 고려하면 순수 공연 매출만 약 500억 원이 넘는다. 만약에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중계를 유료로 시청해야 한다면 축구팬들은 티켓 가격을 얼마까지 부담할 수 있을까?
손흥민 선수가 뛰고 있는 토트넘이 지난 시즌과 같이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올라간다고 할 때 5만 원을 결제하고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시청을 할 것인지 묻는다면 열혈팬이 아니고서는 결제를 망설일 것이다. 스포츠 마니아임을 자부하는 나 역시도 쉽게 결제를 하지는 못할 것 같다. 콘서트와 축구 경기를 단순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어떤 차이점이 있기에 선뜻 결제를 하지 못하는 것일까?
스포츠가 공공재라는 생각, 어둠(?)의 경로를 통한 경기 시청 등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스포츠 이벤트 자체가 결과 지향적인 모습만을 추구해왔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물론 경기 결과로 가는 과정을 즐기는 것이 핵심이지만 경기 하이라이트와 결과만으로도 다양한 이야기거리를 만들어 낼 수 있고, 결과 자체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팬들도 상당히 많다. 반면, 방탄소년단 콘서트나 넷플릭스 드라마는 결과가 아닌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과 매 순간을 즐기는것이 콘텐츠의 핵심이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우리는 전염병 이외에도 다양한 이유로 유사한 시대를 겪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되더라도 이전과 같은 생활로 돌아가지 못할 것임을 직감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프로스포츠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온/오프라인 경계를 떠나 중계 방식을 포함해 스포츠 이벤트를 밀도 높게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로 발전시킬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고 생각된다.
NBA는 코로나19로 리그 중단 기간을 가진 후 디즈니랜드가 있는 올랜도로 모든 팀들이 모여 무사히 시즌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종목 특성과 리그 규모가 다르기 때문에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팬들에게 현장감을 주기 위해 NBA가 노력한 부분은 참고할 만하다. 일찌감치 디지털 기술 도입에 발빠르게 움직였던 NBA는 올랜도 버블 기간 동안 가로 10~20M, 세로 5M가 넘는 대형 LED 디스플레이를 경기장 세 면을 감싸는 형태로 설치하여 디지털 관중석을 연출했다. 디스플레이에는 집에서 경기를 관람하는 팬들의 얼굴을 송출했는데, 이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화상회의 서비스인 팀즈의 ‘투게더모드’를 통해 구현했다.
또한 AI기술을 활용하여 시청하는 팬들의 이미지를 비슷한 크기로 잘라내어 송출하였다. 이를 통해 경기를 하는 선수는 물론 TV를 보는 팬들도 현장에 관중이 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경기장 내 관중이 없기 때문에 기존보다 더 많은 카메라를 설치하여 좀 더 현장감이 있는 앵글을 제공하고, 다양한 관중 소음을 연출하는 전문가까지 현장에 두어 무관중 경기 중 가장 생동감이 있는 중계를 완성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NBA는 무관중 경기를 진행했지만 팬들의 참여도를 기존보다 더 높게 이끌어내며 가장 성공적으로 코로나19 이슈를 극복한 리그로 평가받았다.
현재 국내에서 가장 인기있는 해외 스포츠팀을 꼽자면 손흥민 선수가 뛰고 있는 토트넘 핫스퍼일 것이다. 특히, 지난 시즌엔 챔피언스리그 결승전까지 오르면서 더욱 주목받았다. 이러한 토트넘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가 중단되면서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더욱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 토트넘은 소셜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는데, 유튜브를 통해 다양한 기획의 영상을 제공하였다. 이 중 작년 개장한 홈경기장에서 4명의 선수가 함께 한 풋골프(Foot Golf) 콘텐츠는 약 450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코로나19로 인해 허전함을 느끼는 팬들에게 큰 즐거움을 제공하였다. 리그 경기가 아니여도 팬들과 충분히 소통할 수 있음을 보여준 기획이었다.
팬데믹 시대의 스포츠는 위기이지만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스포츠의 경쟁상대는 앞으로 더욱 다양해질 것이다. 이 중에서 스포츠 중계는 프로 스포츠 존속을 위해 가장 핵심적인 요소가 될 수 밖에 없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며, 퇴근 후 저녁에 즐길 수 있는 우리의 선택지는 더욱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 소비자로 불리는 MZ세대는 이미 넷플릭스나 모바일 게임으로 그들의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 스토리가 없는 스포츠 이벤트, 단순히 경기 모습만 제공하는 스포츠 중계는 팬들에게 외면 받게 될 것이고, 소비자 접점이 필요한 기업들은 스포츠 후원을 망설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자본이 없는 프로스포츠는 자연스레 몰락하기 마련이다. 방탄소년단이 매주 다른 구성과 형태의 공연 콘텐츠를 제공하고, 넷플릭스와 유튜브가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를 매 시즌 런칭한다면 스포츠는 장기적으로 이들과 경쟁할 수 있을까? 아마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스포츠 마케터에게 필요한 것은 인문학적 상상력이다. 스포츠가 줄 수 있는 가치를 확장하고, 팬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내야 한다.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실시간으로 경기 예측을 하고 특정 멤버십 혜택을 받는다거나 집단 지성을 이용하여 실제 경기 전술에도 참여할 수 있을 수 있다. 경기 결과에 집중하기 보다 팬들이 좋아하는 채널과 제휴하여 배타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경기 전후 선수들과 소통할 수 있는 다양한 플랫폼을 개발할 수도 있다. 팀 성적도 중요하지만 경기 매 순간 팬들이 진정 원하는 것을 찾아낸다면 스포츠가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리딩하는 시기가 다시 찾아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