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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osumer Sep 21. 2022

그랜드 피아노 아들

5살 아들의 성장통

 화요일 아침 8시. 내 출근길은 험난했다. 월요일 저녁, 아니 밤에 집에서 먹은 비빔밥에 고추장이 너무 많이 들어간 탓인지 잠실역에서 2호선 환승을 하고 나서부터 사르르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다행이 집에서 좀 일찍 나오기는 했지만, 화장실을 가라는 배의 요청에 따라서 선릉역에서 내려서 화장실을 갈 수 밖에 없었다. 지하철화장실에서 대변을 보고 싶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가끔 가게되는 출근길 지하철 화장실은 비어있는 적이 없다. 약 2분 정도 무념무상으로 인내한 후에 자리가 났다. 화장실 문이 뻑뻑해서 잘 잠기지 않았으나 우선 해결해야 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급하게 들어가 화장실에서 볼일은 순식간에 끝났다. 잘 잠기지는 않았지만 열리기는 하는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면서 왜 화장실 문 안쪽에는 정치성향이 명백히 드러나는 낙서들이 있는지 생각하면서 출근을 했다.

 

 오전 11시. 사무실에서 몇 가지 일이 꼬여있는 상태였다. 아주 사소한 일들이었지만 내가 생각한대로 진행이 되지 않아 짜증이 난 상태가 되었다. 이때 아이폰에 아내가 보낸 메시지가 떴다. 회사에서 쓰는 슬랙, 외부 사람과 대화창이 떠있는 카톡에 아내가 보낸 메시지는 비트윈으로 온것이라서 더 정신이 없어졌다. 어린이집에간 아들이 다리가 아프다고 한다. 왜 그렇지라고 걱정을 하면서 사무적으로 어린이집 마치고 가는 태권도는 못가겠다는 생각을 먼저 했다. 내가 태권도 학원 사범님께 문자를 보내기로 했다. 아내는 아침에 아들이 어린이집에도 보육이모님이 업고 가셨다는 메시지를 보냈는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태권도 학원 사범님께 답문이 왔다. "네, 아버님 오늘은 쉬고 내일 보내주세요!"


 오후 2시. 아직도 꼬인 사소한 일들 중 2가지가 해결되지 않았다. 아내에게 또 메시지가 왔다. 아들이 어린이집에서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도 아프다며 조금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어린이집에서 외부 강사를 불러서 하는 체육수업이 시작되었는데도 체육수업에 참여하지 못할 정도로 아프다고 했다. 오후 3시. 나는 시청역에서 가까운 글로벌 보험사 건물에서 미팅을 하고 있었다. 미팅 중에도 계속 메시지가 오니 미팅에 집중하지 못하고 미팅을 마치고 아내와 통화를 할때도 내가 내일 정형외과에 데려가겠다며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말았다. 결국 걱정이 된 아내는 재직 중인 의류회사에서 CAD 품평이라는 중요한 일을 팽겨쳐두고 1시간 빨리 퇴근했다. 다행이 집 앞에 정형외과가 있어서 보육이모님이 먼제 데려간다고 했다. 이쯤 되니, 아내에게 계속 '성장통'일 것이라고 우기던 나도 사무실에서 일이 손에 잡히지가 않았다.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지하철을 탔는데, 정형외과 의사인 대학 동기와 통화를 하고 하면서 지하철 환승을 잘못했고 집으로 바로 가지 못하고 돌아서 가게 됬다. 정형외과 의사인 대학동기는 내 이야기를 듣고 성장통은 아닐 것이고, X레이와 초음파 촬영을 하면 고관절 쪽 근육막에 물이 차있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아들이 5살이면 생길 수 있는 질환으로 감기처럼 생각을 하라고 했다. 예전에는 입원을 시켜서 침대에 다리를 들어올려서 추로 고정하는 치료를 했는데, 아이들의 특성상 이런 치료가 고문에 가까운 것이라서 요즘에는 2주 정도 활동을 못하게 한다고 했다. 누워있는 것이 가장 좋지만 이게 안되면 앉아있는 것까지는 괜찮고, 중요한 것은 고관절에 체중이 실리는 동작을 하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아내의 소원이 이루어졌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들이 걸어다니지 못하고 가만히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일과성 고관절 활액막염'이란 일시적으로 고관절의 활액막에 염증이 생긴 질환으로, 고관절에 오는 일종의 감기와 같은 것입니다. 응급실에 내원한 고관절 통증 환아의 약 85%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흔한 질환으로, 대부분 적절한 휴식으로 호전됩니다.

출처: 네이버 의학사전


 진료 결과, 정형외과 의사인 대학동기의 예상이 맞았다. 성장통을 주장했던 일반인 돌팔이 아빠는 할말이 없었다. 보육이모님, 아내와 나 모두 진이 빠진 상태라서 저녁은 근처 중국집에서 짜장면과 짬뽕을 시켜서 해결했다. 아내와 통화를 하면서 내가 중국집에서 식사를 픽업해오겠다고 하고, 나는 그냥 집에 왔다. 집에서 나갈 때도 결재할 신용카드를 안가져가서 다시 왔다가 갔다. 아내는 아들을 마루에 눕힌채로 짜장면을 먹였고, 나는 온라인으로 아동용 휠체어 대여를 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보육이모님도 내일은 안과 진료가 있어서 내가 생각해낸 '도움의 손길'은 엄마였다. 전화통화를 하면서 생각을 해보니 최근 코로나에 걸린 조카를 엄마가 돌보고 있었는데, 다행이 내일은 개인택시 운전을 하시는 아버지 휴무일이라고 했다. 겨우 '도움의 손길' 찾고 나서야 불어터진 짜장면을 먹었다. 마루에 앉혀서 아들 세수를 시키고, 침대에 누워서 책을 읽어주고 다같이 빨리 잠이 들었다.


 오후 11시 아들은 자다가 일어나서 다리가 아프다고 울었다. 예방접종을 할 때도, 치과 치료를 받을 때도, 코로나 검사를 할 때도 씩씩했던 녀석이 아프다고 우니까 참 답답했다. 아들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빅히어로'에 나오는 힐링 로봇 '베이맥스'처럼 "지금 통증의 강도가 1에서 10까지 중에서 어느 정도입니까?" 물어보고 싶었다. 아들은 이런 농담을 받아줄 상황이 아니었다. 울다가 잠이 들었다가 새벽 2시에 또 일어나서 울었다. 계속 울면 머리가 아프다는 이야기 밖에 할 수 없는 돌팔이 아빠는 참 속상했다.


우리 부부는 아이를 가지지 않기로 했다. 나에게 아이는 마치 그랜드 피아노와 같은 것이었다. 평생 들어본 적 없는 아주 고귀한 소리가 날 것이다. 그 소리를 한번 들어보면 특유의 아름다움에 매혹될 것이다. 너무 매혹된 나머지 그 소리를 알기 이전의 내가 가엾다는 착각까지 하게 될지 모른다. 당연히, 그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책임감 있는 어른, 합리적인 인간이라면 그걸 놓을 충분한 공간이 주어져 있는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집 안에 거대한 그랜드 피아노를 들이기 전에 그것을 놓을 각이 나오는지를 먼저 판단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부족해도 어떻게든 욱여넣고 살면 살아진다는 것도 알고 있다. 물론 살 수는 있을 것이다. 집이 아니라 피아노 보관소 같은 느낌으로 살면 될 것이다. 그래드 피아노가 거실 대부분을 차지하게 될 테고 패브릭 소파와 소파스툴, 원목 거실장과 몬스테라 화분은 둘 엄두도 못 낼 것이다.

- 장류진 <도움의 손길> 중에서 -


 너무 나도 활동적인 다섯  아들은 누군가 조심스럽게 옮겨주어야 하는 그랜드 피아노 같은 아들이 되었다. 휠체어를 빌리고, 집에서 움직이기 불편할  같아서 바퀴가 달린 아동용 의자도 주문했다. 아내는 어린이집도 못가는 아들을 위해서 장난감을 로켓배송시켰다.



그랜드 피아노보다 소중한 우리 아들,

피아노 가끔 조율이 필요하단다.

조율이 끝나면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더 멋진 소리가 날거야!

우리 아들의 성장통이 빨리 끝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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