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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osumer Apr 13. 2023

재수없는 임원도 그냥 월급쟁이일뿐...

같은 월급쟁이끼리 왜 이래?

20년간 모범적인 직장생활을 한 아내가 육아휴직을 결정했다. 모범적인 직장생활의 기준은 천차만별이겠지만, 내 아내는 20년이 넘는 직장생활 중에 한 직장에서 10년 근속도 포함되어 있다. 내가 가장 오래 다닌 회사가 5년이 안되는 점을 생각해보면 내가 이루지 못한 업적, 앞으로도 절대 이루지 못할 업적을 달성한 것이다. 아내의 육아휴직 결정에 결정타를 날린 것은 업무에 전혀 도움이 안되는 임원이다.


집앞에 이마트에브리데이가 폐점한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폐점 때문에 텅빈 매대가 씁쓸한 ‘육아휴직’을 생각나게 했다.


아내는 회사에서 어떤 평가를 하든지 '저성과자'로 분류되기가 어려운 성격이다. 2014년 결혼을 했으니 거의 10년 동안 아내를 보면서 느낀 점은 참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시대가 변해서 팀장인 아내의 팀원들이 아내를 평가하는 다면평가가 있다고 하더라도 '저성과자'로 몰아가기는 쉽지가 않다. 왜냐하면 팀장들간의 평가 결과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뭐가 문제인가? 큰 시장상황에서 본다면 스포츠 의류나 용품과 같은 실물을 제조해서는 매출을 내기가 어려운 현재 상황이 문제이다. 이 상황에서 모든 월급쟁이들은 각자 도생을 도모하게 되는데, 아내가 하는 업무가 의류 디자인이라서 '투잡'을 할 수 있는 직종도 아니다.



나도 스포츠와 아웃도어 브랜드에서 스포츠마케팅, 홍보, 이벤트 등을 담당해보았는데, 나는 예전부터 우리나라 패션 업계라는 것은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잘 나가는 스타가 입거나 걸치면 완판. 스포츠 선수를 광고 모델로 활용해서 제품 매출로 대박이 난 것은 '김연아' 선수 정도 뿐이다. 패션 업계에서 일년 중에 센 한방으로 보는 겨울 장사 아이템을 한번 볼까? 원래 벤치에 앉는 선수들이 입는 벤치 다운, 롱패딩이 유행을 하다가, 뽀글이라고 불리는 플리스가 미친 듯이 유행을 했다. 한 2년전부터는 허리 길이의 숏패딩 딱 찝어서 노스페이스 눕시가 다시 유행이다. 유행을 만드는 방법에도 도박을 해야 하고, 이 유행이 심지어는 매우 빨리 변한다. 솔직히 이런 국내 패션 업계에서 의류 디자이너가 할 수 있는 것은 뭐가 있을까? 국내 패션 시장 이야기를 꺼낸 또 다른 이유는 나는 현재 잘 나가는 국내 의류 브랜드들도 왜 잘 되는지가 이해가 잘 안된다. 매출이 잘 나오고 있다면 과연 누가 제일 잘 한 것인지 딱 잘라서 말할 수가 있을까? 의류도 온라인 쇼핑이 보편화 되었는데 당연히 이커머스 매출이 오프라인(리테일) 매출보다 잘 나오는 것이 정상이고, 이커머스에서 팔릴 만한 물건을 쓸어가면 오프라인 매출은 떨어지는 것도 당연하다. 특정 의류 사업부가 잘 되고 있으면 어떤 부서가 가장 잘해서 그런 걸까? '유아인'이 마약을 해서 무신사는 대타가 필요했고 '뉴진스'가 무신사의 새로운 모델이 되었는데, Q2에 매출 선방을 하면 뉴진스 덕인가? 그럼 뉴진스를 계약한 마케팅팀을 포상해야 하나? 국내 패션의 변화라는 것은 이런 것들을 따져서 성과에 대한 원인 규명을 하기에는 너무 빨리 움직이고 있다.



경기가 안좋으면 전체적으로 모든 의류 브랜드 매출이 떨어진다. 그리고 이 매출 부진에 대해서는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만 한다. 회사 내 월급쟁이들은 모두 책임을 타부서에 떠넘기는 핑퐁 게임을 할 수 밖에는 없다. 하지만 매출의 부진이 크면 클 수록 직급이 낮은 월급쟁이들도 한숨을 돌릴 수가 있다. 회사의 모든 일은 실무자가 진행을 했으나 그들의 상관, 더 나아가서는 임원들이 결재를 해서 진행이 된 것이기 때문이다. 결재라는 것은 결정에 대한 책임을 의미한다. 아내가 개인 사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모든 의류 디자인은 상무가 다 보고 피드백을 주었을 것이고, 주어진 시간 안에서 상무도 생각한 최선의 디자인에 대해서 컨펌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회장에게 시즌 의류 디자인에 대해서 품평이 진행될 때에 상무가 멀뚱멀뚱 관전만 하고 있다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아이고, 수줍은 사람!' 이렇게 생각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거 내 아이디어가 아니야!'라는 변명을 임원이 할 수가 있을까? 그럴 수가 없다. 결재는 했으니까.


자신이 결재한 서류가 남아있기 때문에 추진했던 업무 결과가 형편없다면 임원은 책임을 져야만 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임원들은 3년에 한번 정도씩 근로계약을 한다. 알고 보면 임원은 정규직이기는 한데 계약직 월급쟁이일 뿐이다. 자신의 결정에 대해서 깔끔하게 인정을 하고 짐을 싸는 임원들이 많다. 하지만, 모든 임원이 자신의 결정에 책임을 지지는 않는다. 자신의 결정에 책임을 지지 않는 임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다른 희생양을 찾는 것이다. 이번 분기 매출 부진에 대해서는 의류 디자인 문제가 가장 크다. 그러니까 의류 디자인 팀장을 갈아야 된다. 대충은 이런 식이다. 의류 디자인 팀장이 타깃이 아닐 수도 있다. 영업팀장, 이커머스팀장, MD, 사업부장 등 다 괜찮다. 여튼 빠져나갈 곳을 찾는 임원 본인만 아니면 되니까.



하지만, 재수없는 임원일수록 이런 조커를 쓸 때도 솔직하지 못하다. 같은 월급쟁이끼리 솔직하게 이야기 하면 인간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해볼 수 있는데 말이다. '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읇는다'고 했는데 월급쟁이를 10년 이상했는데, 월급쟁이 임원의 생각을 전혀 모른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10년차 이상 월급쟁이가 머리를 모자를 쓰거나 화장을 하려고 달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빠의 미래에는 내가 없어!"
군대 동기가 여자 친구가 이별을 선언하면서 했던 말이라고 들려주었는데, 이 문장이 이상하게 뭔가를 돌려까는 상황이라면 생각이 난다.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임원은 이런 식으로 말할 것이다.


"XXX 씨는 우리 회사와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아내는 계약직 월급쟁이가 만들어낸 말 같지도 않은 문장을 면전에서 들으면서 얼마나 짜증이 났을까?



20년 회사 생활에서 멋있게 박수칠 때 떠났던 임원은 많지 않다. 하지만, 가끔 주변에 어른스러운 결정을 하신 선배분들이 있다. 화장품 업계에서 평생 일하신 형님인데, 회장 사위가 특정 인테리어 업체를 옹호해서 지적을 했더니 부당 대우가 시작되었고, 이런 상황에서 괴로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사직을 선택하셨다. 물론 형님이 그 다음에 재취업을 할 때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부당 대우의 스트레스와 재취업을 위한 스트레스를 비교한다면 재취업을 위한 스트레스가 훨씬 건설적인 것 같다.



 '재수없는 임원이라도 같은 월급쟁이니까 좋게 봐줍시다.'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 같다. 여튼 오늘 월급쟁이인 임원을 걸고 넘어진 이유는 국내 유명 대기업 회장을 골고루 섞어서 탄생한 '재벌집 막내 아들'의 회장님 같은 분들은 범적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회장님들께서는 직원들은 '참 부족한게 많은 애들인데 내가 월급을 준다'고 생각하신다. 어차피 그 분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다. '나는 혼자 맨손으로 시작해서 이만큼 부자가 되었다.'라고 생각하는 분들이라서 '월급쟁이'와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아주기를 원하지 않는다.



회사생활을 하다가 재수없는 임원에게 직보를 하거나 자주 마주치게 된다면 쿨하게 생각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



 재수없는 XX도 그냥 월급쟁이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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