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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포츠파이 Jun 11. 2020

한화는 어쩌다 약팀이 되었는가

기적을 바라면 기본이 무너진다

1999시즌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한화


지난 6월 9일 14연패에 빠진 한화 이글스는 한용덕 감독을 사실상 경질했다. 표면상으로는 자신 사퇴지만 지난 10년간 한화의 행보와 전임 감독들과의 작별 방법을 고려한다면 경질이란 측면이 더 강하다. 한대화-김응룡-김성근-한용덕으로 이어지는 10년의 암흑기 동안 한화는 탈출구를 찾지 못한 채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팀이자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을 배출했던 한화는 어쩌다 이지경까지 오게 됐을까?  


모기업의 무관심과 줄어든 투자

2006년 괴물 신인 류현진의 등장과 함께 한화는 탄력을 받으며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에게 1승 1무 4패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긴 했지만, 탄탄한 전력을 갖춘 한화가 다시 한번 대권 도전에 나설 것을 의심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한화는 2008년을 기점으로 투자와 관심이 눈에 띄게 확 줄어든다. 


2008년 KBO리그는 암울한 시대였다. 당시 리그에서 4번의 우승을 달성하며 명문팀으로 자리매김하던 현대 유니콘스가 모기업 재정 문제가 겹치며 2006년부터 시름시름 내리막을 걷더니 결국 2008년 1년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에게 재고 떨이하듯 매각됐다. 탄탄한 모기업이 기반이 아니라 투자회사 성격이 짙었던 기업이다 보니 대대적인 선수단 효율화 작업이 이어졌다. 이런 사태가 이어지면서 사회엔 'KBO리그는 돈은 많이 들어가는데 비효율적인 사치제' 란 인식이 강해졌다. 한화 역시 소비재 기업이 아닌 군수 방산업이 주력인 기업이라 광고효과가 크지 않다는 내부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여기에 더해져 당시 한화는 구대성과 정민철, 송진우, 문동환 등 주전 라인업에 노장 선수들이 많았던 팀 체질을 바꾸기 위해 리빌딩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는 지적도 강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2008년부터 이루어진 한화의 움직임은 리빌딩이라 하기엔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 2008 시즌 이후 연봉 고과 1-2위였던 김태균과 이범호의 활약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단 이유로 연봉 삭감을 단행하고 정민철과 구대성 등 노장 선수들의 연봉은 20~30% 가까이 깎여나갔다. 이 와중에 류현진의 연봉은 이전 시즌 입단한 오승환의 연봉 인상 기록을 경신하고 있었지만, 이는 한화 팬들의 여론을 의식해 보여주기 식 행보였다. 한화의 처절한 몸집 줄이기 움직임은 2009~10년 연봉 총액과 1인당 연봉이 히어로즈보다도 적은 상황에 이를 정도였다. 


2년 만에 연봉 총액 1/3이 사라진다

이런 식의 팀 운영은 선수들의 충성심을 떨어트리는 메시지를 매우 명확하게 전달한다. 리빌딩이 필요한 팀은 맞지만 이런 식의 인위적이고 강제적인 리빌딩은 한국 프로야구의 특성상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2002년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LG가 구단주와 사장단의 의지에 의해 출발한 리빌딩이 어떤 결과를 맞았는지 생각해보면 잘 알 수 있다. 서용빈-유지현-이상훈이 줄줄이 자리를 잃듯 한화도 노장 선수들은 하나씩 팀을 떠난다. 송진우(2009년)-정민철(2009년)-구대성(2009년)-문동환(2007년)-이영우(2010년)가 은퇴를 선언한다. 역대 최다승 기록을 갖고 있는 송진우는 영구결번 지정식을 갖는 등 환대를 받으며 떠났지만 다른 레전드들은 부상 때문에 조용히 사라지거나 프런트의 무관심 속에 떠밀리듯 떠난다. 특히 구대성은 영구결번에 대한 인식도 하지 않고 있다가 팬 여론에 떠밀려 2010년 9월 3일 삼성과의 경기에서 선발 등판해 은퇴 경기를 치렀다. 


팀의 허리 역할을 맡아야 할 선수들도 한화를 떠난다. 2008년 연봉 삭감의 주인공이었던 김태균은 2010년 지바롯데로 이적하며 이범호 역시 2008년 WBC 활약을 앞세워 2010년 소프트뱅크 호크스로 이적한다. 물론 NPB에 적응하지 못하고 1년 만에 한국 무대로 리턴 하지만 한화의 뜨뜻미지근한 반응과 이전 서운함 감정이 겹친 탓인지 원소속팀 한화가 아닌 KIA를 선택한다. 



정말 한화가 베테랑들을 쳐내고 MLB-NBA에서 주목받고 있는 '탱킹'형식의 리빌딩을 하려 했다면 신인 유망주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이것도 소홀했다. 2007년 드래프트까지 7~8명의 선수를 지명했던 한화는 2008년 드래프트에선 단 5명의 신인을 지명하는데 그친다. 드래프트 1차 지명 팜이 허약한 충청권이란 약점이 있어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2차 지명에 총력을 쏟아야 하는 게 당연하지만 한화 프런트의 선택은 달랐다. 2008년 6라운드 이후 지명된 선수엔 김선빈(KIA 내야수), 이영욱(삼성 외야수), 박세혁 (두산 포수)가 포함되어 있다. 2009년 드래프트에도 10개 구단 중 가장 적은 6명을 지명하는데 7라운드 이후 지명된 선수엔 문선재(KIA 외야수)와 오정복(KT 외야수)이 포함되어 있다. 


돌아온 회장님... 하지만 우승을 돈으로만 살 수 없다

투자와 관심 없는 야구단이 망하는 것은 해가 지면 달이 뜨는 것처럼 당연한 이치다. 

한화도 2008년 5위->2009년 8위->2010년 8위로 최하위팀으로 수직 낙하한다. 김인식 감독에 이어 2010년 한대화 감독이 취임했지만 없는 살림에 초보 감독이 팀을 이끌려다 보니 수많은 에피소드와 사건사고를 남기고 2011년 6위-> 2012년 8위란 초라한 성적을 남긴 채 사퇴한다. 팬들도 없는 전력에 고군분투하는 한대화에게 '야왕'이란 별명을 붙여주며 응원했지만 2012년부터 시작된 회장님의 갑작스러운 관심이 오히려 독이 됐다. 


2012년 한화엔 큰 사건이 있었다. 바로 '코리안 메이저리거'의 원조인 박찬호가 KBO리그 입단을 선언한 것. 긴 시간 MLB에서 활약했던 박찬호는 고국팬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고향팀 한화를 찾았다. 이 과정에도 박찬호 연봉을 두고 고자세를 펼치려던 한화 프런트에게 박찬호가 "연봉 전액 기부" 카드를 꺼내 들어 머쓱해지는 사건이 있었다. 여기에 2012년 드래프트 1차 지명에 '제 2의 류현진'이란 평가를 받던 유창식이 입단하고, 지바롯데에서 도망치듯 한국으로 돌아온 김태균에게 4년간 60억이란 의리의 FA 계약을 맺으며 한화 팬들의 눈높이가 하늘을 찌르기 시작했다. 


입단 과정이 매끄럽진 않았다


하지만 2011년 플로크 터지듯 깜짝 활약을 펼쳤던 선수들이 귀신같이 제 자리를 찾아갔고 박찬호 효과는 경기장 안에선 매우 제한적이었다. 유창식 역시 류현진과 비교되려면 한참 멀었다는 것만 증명됐다. 결국 한화는 2012년 8위에 머물렀는데 "이렇게 돈을 써도 안 되는 건 감독 문제"란 고위층의 결론은 '우승 청부사' 김응룡 감독을 선임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물론 현장과 프런트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결과였다. 


감독만 바뀐다고 한화가 달라지는 일은 없었다. 2012시즌을 끝으로 박찬호는 공식 은퇴를 선언하고 류현진은 LA 다저스로 포스팅 입찰을 통해 이적한다. 에이스가 사라진 한화는 2013년도 꼴찌를 장식했고 김응룡 감독이 팀 전력 강화를 위해 투자를 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인터뷰 기사가 자주 언론 지면과 포털에 나오기 시작한다. 마침 류현진이 MLB로 떠나며 남긴 넉넉한 포스팅 비용이 있어 2014년 FA에 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선언한다. 


모두가 알고 있듯 2014년 한화는 정근우(계약 기간 4년, 계약금 35억 원, 연봉 7억 원, 옵션 7억 원 등 총액 70억 원)와 이용규(계약 기간 4년, 계약금 32억 원, 연봉 7억 원, 옵션 7억 원 등 총액 67억 원)를 영입한다. 국가대표 테이블세터진을 구축한 것은 의미가 있지만 김응룡 감독과 프런트가 원하던 선수는 야수가 아닌 투수(장원삼, 윤석민)였다. 장원삼은 일찌감치 삼성과 재계약을 체결하고 윤석민은 MLB 진출이 최대 목표인 상황이라 한화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미 언론을 통해 '통 크게 쏜다'는 선언을 한 상태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면 팬들의 여론이 악화될 것을 우려해 정근우와 이용규를 영입한 것이다. 


하지만 두 선수의 합류로 한화가 극적으로 달라지는 일은 없었다. 투수진이 완전히 붕괴된 한화는 2014시즌도 꼴찌를 기록하고 김응룡은 감독직에서 물러난다. 이 과정에서 한화 팬들은 새로운 감독으로 누가 올 것인가에 대해 엄청난 관심을 쏟았는데, 대부분 '야신' 김성근 감독을 모시길 강력하게 원했다. 어떤 팬은 김승연 회장에게 의지를 보이기 위해 한화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구단에 협박 전화를 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결국 김성근 감독이 선임되며 팬들은 열광했지만, 분명한 것은 한화 선수단과 프런트가 원하는 감독은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현장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고 여론이 떠밀려 내려온 탑다운식 감독 선임은 첫출발부터 삐걱대기 시작했다. 


김성근은 신이 아니었다


함부로 주어진 전권은 주어 담을 수 없다

김성근 감독은 2002년 LG에서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루고도 경질되고 2011년 SK 와이번스에선 시즌 종료 뒤 사임하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음에도 시즌 도중 경질되는 아픔을 겪어서인지 한화와의 계약을 진행할 때 '선수단 운영의 전권'을 요구했다. 김성근 감독의 요구를 한화 윗선이 통 크게 수락하며 야심 차게 한화의 '김성근 시대'가 열렸지만, 3년 계약을 맺은 감독이 팀의 미래나 발전에 대해 비전을 가질 여유 따윈 없었다. 프런트는 물론이고 단장보다도 강한 힘을 가진 감독은 '당장 성적 향상'을 가져다 줄 선수 영입에 목을 매었고 권혁, 송은범, 배영수, 정우람, 심수창, 조인성 등 B~B+급 베테랑 선수들을 수집하는데 263억을 투자한다. 정근우+이용규까지 포함하면 3년 동안 464억원을 쏟아부은 것이다. 오죽하면 한대화 전 감독이 "내가 감독할 때 이 정도 투자했으면 가을무대 올라갔을 것"이라며 볼멘소리를 할 정도였을까.


하지만 체계적인 계획 속에 이루어진 선수단 구성이 아니다 보니 팀 전력 불균형은 여전했고 FA 보상 선수로 얼마 없던 유망주까지 유출되는 부작용이 따른다. 2014년 포수 한승택이 KIA로 이탈하고 2015년엔 선발자원인 임기영이 이탈한다. 


또한 김성근 감독 특유의 '불꽃 야구'는 선수들의 혹사를 담보로 한다. 2015년 반짝 활약을 펼친 권혁은 1년 만에 수술을 받고 평범한 좌완 투수로 전락했고, 자신을 홀대하는 팀에 반발해 2019시즌 두산으로 이적한다. 


결국 김성근 감독이 선임된 3년간 6위->7위->8위로 점점 내리막을 걷는다. 김성근 감독에게 전권을 주는 것이 정답이 아님을 알게 된 한화는 전혀 반대되는 방향으로 길을 꺾는다. 2017년 NC에서 육성이사에 있던 박종훈 전 감독을 단장으로 임명한 것이다. 거기에 더해 현장의 힘을 빼고 팀 운영의 전권을 박종훈 단장에게 일임하는 결정을 내린다. 당장 치열한 권력 싸움이 벌어질 것이 눈에 훤히 보이는 결정이었다. 예상대로 김성근 감독과 박종훈 단장은 스프링캠프부터 신경전을 벌였고 2017년 5월 22일 새로운 권력인 박종훈 단장이 승리를 거둔다. 김성근 감독이 경질된 것이다. 


전권을 틀어쥔 박종훈 단장은 2018시즌 한용덕 당시 두산 수석코치를 감독으로 선임하며 새로운 시대를 준비한다. 문제는 박종훈 단장도 현장이나 프런트와 소통 없이 '젊은 선수 육성'이란 신념에만 몰입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2018시즌은 이태양과 송은범, 박상원 등 불펜투수들의 희생과 외국인 타자 호잉의 MVP급 활약, '공갈포' 이성열의 각성, 시즌 내내 부상 선수가 없었던 행운이 겹치며 11 시즌만에 가을무대에 오르는 감격을 누렸지만, 행운은 오래가지 않았다. 더욱 노골적으로 베테랑 선수들을 홀대하는 정책 때문에 팀 분위기는 망가져갔다. 2019시즌 이용규의 트레이드 요청 건이 대표적인 사건이다. 정근우 역시 외야수 전향을 강요당하다가 2020시즌 2차 드래프트 보호 명단에서 제외되면서 LG로 이적한다. 팜이 허약한 한화가 대책 없이 베테랑을 내친 결과는 성적 하락과 망가진 팀 분위기로 돌아왔고 결국 2019시즌을 끝으로 박종훈 단장 시대도 막을 내린다. 


이 얼마나 어색한 장면인가...


다시 변화를 준비한 한화, 하지만 팔짱 낀 수뇌부 리스크

2020시즌을 준비하며 한화는 정민철 전 코치를 단장으로 임명한다. 이전 감독-단장들과 달리 소통과 열린 마인드가 강점인 인물. 한화의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데 있어 적합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6월 11일 기준 16연패에 빠진 한화 이글스의 현주소를 보면 이마저도 불안하다. 사실 정상적인 조직이라면 정민철 단장 부임 시에 옛 단장의 잔재인 한용덕 감독을 정리해주고 정민철 단장이 원하는 그림을 그려줄 수 있도록 판을 마련해줬어야 했다. 2017년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박종훈 단장이 부임했을 때 누구나 김성근 감독과 마찰을 예견했고 결과적으로 두 사람은 충돌을 반복하다 팀 분위기만 최악으로 치달았다. 구단 수뇌부가 팬이나 언론의 눈치를 보며 리스크를 떠 앉는 일을 마다하다가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결국 책임은 애매한 감독이나 단장이 지고 물러나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악순환이 몇 년째 계속되고 있다. 


정민철 단장 역시 한용덕 감독 사임 사태에 수뇌부의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최원호 퓨처스리그 감독이 감독 대행이 됐지만 2020시즌을 사실상 허공으로 날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난 10년간 구단 회장님의 여가생활이었던 프로야구 구단도 철저한 운영-평가-영입 시스템을 구축해 MLB 구단들 못지않은 수준으로 변모해가고 있다. 하지만 한화는 아직도 그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한화의 기나긴 암흑기의 근원적인 원인이다. 여론이나 구단 윗선의 눈치에 의해 단기 처방만 계속된다면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정말 기가 막힌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고 FA 선수 몇 명 건져서 반짝할 수는 있겠지만 2018 시즌의 재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12년간 1번의 기적이 일어났다면 확률상 정상적인 범위 안에 든다. 자주 일어나지 않기에 기적이라 부르는 것이 아닐까?


주변 한화팬 중 한 명은 1999년을 자주 추억했다. 한화가 우승을 확정지은 그날 밤 하늘을 장식한 형용색색의 불꽃놀이를 갑천에서 바라봤던 기억은 죽어도 잊지 못할 것이라 회상하곤 했다. 화약 회사인만큼 얼마나 대대적으로 터트렸을지 짐작하고도 남음이다.


'마리한화'라 불리며 짠내 나지만 감동적인 야구를 하고, 이처럼 열성적인 팬들을 보유하고 있는 한화는 여전히 매력적인 팀이다. 팬들도 한화를 포기하기 전에 예전의 모습을 되찾고 KBO리그 나머지 9구단의 건강한 경쟁자가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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