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계권 계약의 근본적인 고찰
지난 5월 16일 방영된 '놀면 뭐하니'는 최근 인터넷 meme으로 주목받고 있는 비의 '깡'을 다루며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시청률 조사 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시청률 9.6%를 기록하며 최근 주말 공중파 예능 방송들 중에선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놀면 뭐하니'만 뜬 것이 아니다. 2017년 발표된 직후 조롱 속에 파묻혔던 비의 '깡'이란 곡도 "무덤을 파고파고 내려가다 지구 반대편으로 튀어나와 인정받았다"라는 네티즌의 댓글처럼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유튜브 깡 뮤직비디오는 19일 오후 기준으로 900만 뷰에 9만 여개의 댓글이 달렸고 멜론 음악차트에서는 실시간 Top 100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모바일이란 디바이스에 유튜브란 플랫폼이 결합하고 여기에 콘텐츠가 부어지자 연쇄 폭발을 일으킨 것이다. 물론 코로나19 때문에 집에서 할 일 없이 유희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도 중요한 요인이라 볼 수 있다.
KBO의 세계화, 꿈은 이루어진다
KBO리그도 코로나19 덕분에 때아닌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에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모든 프로스포츠가 중단되거나 개막을 미룬 상황. NBA, NCAA, NFL, NHL, MLB 등 미국 사람들이 죽고 못 사는 프로스포츠들이 모두 '올스톱'됐다. 스포츠 방송사인 ESPN도 수익 악화로 어려움을 겪자 이를 타개하기 위한 대책 중 하나로 KBO리그 중계권 계약을 체결해 개막전부터 ESPN의 전파를 타기 시작했다.
ESPN Top에 KBO리그 파워랭킹과 선수 분석, 배트 플립에 대한 이야기들이 장식되기 시작하고 ESPN 모바일 앱을 설치한 전 세계 이용자들에게 '이 주의 KBO리그 소식' 이나 '끝내기 홈런 속보'가 쏴지는, 불과 1년 전까진 상상도 못 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물들어 왔을 때 노 저어야 한다는 속담처럼 한국 야구팬들은 KBO리그가 이 기회에 전 세계 스포츠 팬들에게 눈도장아 받고 싶어 하며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몇몇 스포츠 전문지 기사에서 언급한 것처럼 "포털 하고만 독점 중계권 계약을 맺어 유튜브로 보질 못한다" 라는 의견이 커뮤니티와 기사 댓글을 통해 언급되고 있다.
두고두고 아까운 유튜브 시장, KBO리그 세계화 발목 잡은 이사회
유튜브에서 KBO리그 경기가 생중계되고 하이라이트들이 쏟아지면서 전 세계 사람들이 시청하고 댓글 놀이를 하고 SNS에 공유한다면 그만큼 아름다운 광경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당장 실행 가능한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자칫 이번 코로나19 덕에 얻은 KBO리그 인기에 눈이 멀어 단편적으로 대처했다가는 오히려 이전보다 못한 상황으로 몰릴 심각한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KBO의 고민 "스스로 하긴 해야 할 텐데.."
NBA와 MLB는 이용자들이 공식 계정만 구독했다면 유튜브에서 경기 하이라이트를 감상할 수 있다. MLB는 지난 시즌 플레이오프부터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도 시험 서비스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KBO리그는 NBA와 MLB와 달리 처한 환경 자체가 다르다.
NBA와 MLB는 자체적으로 모든 경기의 영상 소스(클린피드)를 수급해 이를 가공할 수 있는 능력과 경험을 갖고 있다. 리그 자체적으로 투자해 구축한 솔루션도 탄탄하고 중계권 계약을 통해 방송사와의 협력 관계에서도 이를 확실히 뒷받침하고 있다. 서비스 당사자가 콘텐츠 소스를 확보해 사용자의 입맛에 발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만큼, 콘텐츠가 자체 홈페이지-유튜브-SNS-케이블TV 등 어떤 플랫폼에서 소비가 되건 상관없다. 개별 플랫폼마다 소비되는 콘텐츠의 콘셉이나 비즈니스 모델을 주도적으로 기획할 수 있고,. 콘텐츠 소비된 만큼 수익으로 확실히 돌아올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 KBO리그는 10년째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다. 모든 영상 클린피드는 방송사 저작권에 묶여 있어 콘텐츠를 활용하는 데 있어 제약이 있고, 온라인 중계 시스템은 10년 넘게 인터넷 포털사에 의존하고 있다. 이로 인해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쌓인 중계 솔루션이나 클립 영상 원본 소스, 이를 유지할 수 있는 서버 등 모든 경험과 노하우가 KBO리그가 아닌 포털 서비스에 쌓여있는 상황. KBO가 자체적으로 무엇인가를 해보기엔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부담이 크다. 물론 이렇게 된 상황의 책임이 KBO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KBO가 10년 전부터 이런 큰 그림을 그리기엔 처한 환경이 너무 열악했다.
시작부터 달랐던 온라인 중계 서비스
NBA와 MLB는 경기를 자체 중계 서비스 플랫폼으로 제공한 지 오래됐다. NBA는 2002년 NBC와의 중계권 협상을 종료한 이후 ABC, ESPN을 소유한 월트 디즈니와 터너스포츠, AOL/NBA 스포츠 네트워크의 주인인 AOL 타임워너를 새로운 파트너로 선택한 이후 인터넷 중계 시대를 열었고, MLB는 2003년 리얼네트워크사가 구축한 미디어 플레이어를 통해 서비스를 시작했다. NBA와 MLB 모두 시작부터 유료 중계 모델을 선택했다. 그때 당시만 해도 단순한 중계+하이라이트 클립을 제공하며, 2~3만 명 정도밖에 사용하지 않는 등 시작은 미미했지만 모바일 시대를 맞아 '구독 서비스' 니즈와 맞물려 확실한 수익원이 됐다. NBA는 리그PASS란 확실한 온라인 중계 서비스 모델을 구축했고 MLB.com 역시 마찬가지.
구독을 통해 엄청난 수익이 쌓이자 기획 영상 콘텐츠 제작에 힘을 쏟을 수 있게 됐고, 양질의 프리미엄 영상과 현역 선수들과 함께하는 라이브 방송, 경기 전후 현장 스케치 등 콘텐츠의 질도 지난 몇 년간 엄청나게 향상되기 시작한다. 방송사 단위로 아등바등 노력하는 한국과는 스케일부터 다른 것이다.
하지만 현재 처한 상황만 탓하며 포기하기엔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 앞으로 모바일을 통해 독점이 아닌 다양한 플랫폼에서 서비스를 즐기려 하는 이용자들의 니즈는 더욱 커질 것이 분명하다. 이번 기회를 통해 KBO리그도 10년 넘게 고민만 해왔던 체질 개선의 첫걸음을 뗄 필요가 있다. 어쩌면 KBO 뿐 아니라 구단들에게도 기회가 될 수 있다.
KBO는 자체적인 영상 중계 및 제작 솔루션을 만들어내야 한다. 지금처럼 방송국만 바라보거나 중계권 돌려막기로 힘들어하는 SPOTV만 의존해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물론 기업들도 코로나 19 때문에 힘들어하는 상황에 중계권 금액과 타이틀 스폰서십으로 운영되는 KBO가 선뜻 시작하기 힘든 프로젝트임은 틀림없다.
쉽지 않은 프로젝트고 이 선택에 대해 KBO도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겉으로만 보이는 상황을 지켜보는 3자가 봐도 보이는 길이 내부 담당자들에게 보이지 않았을 리 없다. 하지만 힘들더라도 누군가는 헤쳐나가야 하는 길이다. 결국 이런 솔로션 구축을 위한 부족한 금액을 정확히 책정해 회원사들의 투자금으로 메우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 강제 차출이 아니라 '당신들이 투자금으로 솔루션을 구축해 증대된 금액이 A일 것으로 예상되고 이를 각 구단 수익으로 되돌려 주겠다'라는 약속도 병행돼야 한다. 가뜩이나 모기업 지원이 줄어들며 구단 운영에 압박감을 느끼는 구단들에게 장기적으로 확실한 수익만 보장되면 결단을 내리지 않을 이유가 없다.
지금처럼 포털에게 2~3년, 2~30억 내외 계약은 한계가 분명하다. 10년 넘게 온라인 서비스의 패권을 쥐고 있던 포털들도 서서히 주도권을 놓기 시작하며 미디어 서비스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고 있다. 포털들은 이제 쇼핑과 뱅크, AI서비스 등 더 구체적이고 확실하게 돈을 벌 수 있는 사업들에 관심이 있다. '늘 그래 왔듯이 관습적으로' KBO리그 중계권에 몇십 억을 선뜻 내놓는 리더는 다음 협상 테이블에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그때 돼서야 발등에 불 떨어진 식으로 "프로야구는 공공재" 드립을 치며 뒤늦게 외양간 고치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번 중계권 계약이 마지막 유예기간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