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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포츠파이 Feb 07. 2024

클린스만은 원래 그런 사람이다

'무능력' 축구협회, 이젠 싹 다 바꿔야 한다. 

2월 7일 새벽, 카타르 아시안컵 4강전에서 대한민국이 요르단에게 0-2로 패했다. 결과도 결과지만 2경기 연속 연장전을 치른 탓인지 무기력한 경기력과 잦은 실수 때문에 경기 내용은 매우 답답했다. 유효슈팅이 0개라는 데이터는 손흥민-황희찬-이강인이란 공격자원을 보유한 대한민국의 전력으로 가능한 숫자인지 의심이 들 정도. 


축구 대표팀이 4강에서 탈락하자 유튜브와 언론에서는 클린스만의 '무전략-준비부족-무책임'을 성토하고 있다. 하지만 클린스만은 원래 그런 사람이다. 선수 시절부터 슈퍼스타였고 그 시절부터 여유롭고 낙천적이며 딱히 어딘가에 얽메이길 거부하는 성격이었다. 


그리고 애초부터 그런 사람인줄 알면서 축구 대표팀의 수장으로 앉힌 사람이 책임을 질 차례가 됐다. 



전설적인 독일 대표팀의 스트라이커 

클린스만의 선수 경력은 이미 많은 축구팬들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눈부시다. 3번의 월드컵(1990-1994-1998)에서 우승과 8강 2회-11골을 기록했고, 3번의 유로(1988-1992-1996)에서 우승 1회와 준우승 1회, 4강 1회 및 5골을 기록했다. 


다만 클럽에서 활약도는 명성에 비해 저조하다보니 발롱도르나 올해의 선수상 같은 개인상을 차지하진 못했는데, 어느 한팀에 머무르기 보단 여러 팀을 이적한 탓이 컸다. (선수 경력 17년간 무려 8팀을 옮겼다.) 팀 이적 초기에 임팩트 있는 활약을 펼치고 2~3년뒤 이적하는 루틴을 보여줬는데, 아무리 강팀이라도 팀워크를 맞추고 우승에 도전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비춰봤을때 팀의 우승보단 개인의 성공에 더 초점을 맞춘 가치관을 가진 탓이 아닐까 해석될 뿐이다. 


그나마 토트넘에서 94-95시즌 리그 21골, 모든 대회 통틀어 30골을 넣는 미친 활약을 펼치며 팀을 상위권으로 끌어올린 것이 가장 내세울만한 클럽 활약상이지만, 이 시즌을 끝으로 다시 독일 바이에른 뮌헨으로 훌쩍 이적해버렸다. 역시 평범한 사람은 아니다. 


전술없는 동기부여형 감독, 클린스만

1998년 사실상 선수 경력을 마감한 클린스만은 2004년 독일 대표팀 감독으로 깜짝 발탁된다. 당시 독일이 유로2004 대회 조별예선에서 2무 1패로 탈락하는 등 위기에 빠져있긴 했지만, 코치 경력도 없는 클린스만을 감독으로 선임한 것은 매우 파격적이었다. 눈부신 선수시절 활약상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선택이었다. 


파격의 결과는 성공이었다. 독일 감독 커리어는 클린스만의 감독 커리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였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뛰어난 경기력을 선보이며 4강에 올랐고 3-4위 결정전에서 포르투갈을 물리치고 3위를 차지했다. 대회성적 뿐 아니라 여러가지 과감한 개혁을 진행해 늙은 전차란 소리를 듣던 독일의 세대교체를 완성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2002년 월드컵 영웅인 올리버 칸을 내치고 옌스 레만을 주전 골키퍼로 내세운 부분이나, 백인 선수 일색이던 선수단에 가나 혼혈 공격수 오동코어를 발탁했다. 당연히 부정적인 우려와 언론의 공격이 연이었지만 팀을 세대교체한다는 명분과 월드컵 4강이란 결과를 무기로 관철시켰다. 


영상 9분 30초부터 시작 : 동기부여 능력만큼은 최고다


하지만 클린스만의 감독 커리어는 여기가 정점이었다. 


사실 클린스만은 큰 방향에서 팀의 매니징과 선수들의 동기부여, 트레이닝 방법 등에 대한 부분을 맡아서 진행했고 경기 내부의 세부적인 전술은 요하임 뢰브라는 수석코치가 전담했었다. 이런 역할 분담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과르디올라나와 클롭처럼 팀 매니징과 경기 전술에서 모두 두각을 나태는 감독이 많아지며 감독이 전술에도 능통한 것이 덕목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최근까지 감독과 수석코치가 업무를 나눠서 팀을 운영하는 경우가 흔했다. 


문제는 경기 전술을 담당하는 수석코치가 신통치 않을 경우 클린스만의 감독 능력 역시 급전직하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뢰브는 2006년 월드컵 이후 클린스만이 홀연히 사퇴하자 차기 독일 대표팀 감독으로 임명되어 더이상 클린스만과 협업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이후 클린스만의 경력은 독일 시절만큼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2008년 분데스리가 명문 바이에른 뮌헨 감독으로 취임했지만, 전술 훈련 없이 체력 훈련과 아시아식 멘탈 관리법 도입 등의 파격적인 트레이닝만 임팩트를 남겼을 뿐이었다. 전술적으로 클린스만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수석코치의 존재가 사라지자 바이에른 뮌헨은 평범한 중상위권 팀으로 전락했다. 챔피언스리그 8강전 바르셀로나 원정에서 0:4로 대패를 당한 것을 필두로 베르더 브레멘에게 5:2, 볼프스부르크에게 5:1 등 리그 평범한 팀들에게도 대패를 당하는 지경에 몰린다. 


오죽하면 팀원들이 감독인 클린스만이 아니라 마테우스를 따를 정도로 팀내 입지가 악화됐고 결국 1시즌만에 경질된다. 


2011년 미국 대표팀으로 돌아와 2013년 골드컵 우승을 차지하고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독일-포르투갈이 속한 조에서 살아남아 16강에 오르는 등 나름 성과를 올리지만, 안드레아스 헤어초크 수석코치의 존재가 만들어낸 성과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실제로 헤어코츠 코치가 미국 U-23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된 2015년 이후엔 매우 저조한 성적과 함께 경기력도 급전 직하한다. 


클린스만 감독 흑역사의 하이라이트는 헤르타 베를린일 것이다. 당초 헤르타 베를린의 이사회로 보드진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기존 감독인 안테 초비치가 중도 해임되자 2019년 11월 감독으로 급히 등판했다. 감독된 클린스만은 겨울이적시장에서 엄청난 거액의 이적료를 사용해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며 후반기를 준비하는 듯 했지만 감독 부임 3개월만인 2020년 2월 페이스북 라이브 도중 감독 사퇴를 선언한다. 


당초 예정된 사퇴도 아니었고 본인도 팬들과 소통하겠다며 연 라이브에서 팬들의 비난이 쏟아지자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팀 보드진들도 전혀 공유받지 못한 폭탄발언에 팀을 수습하느라 진땀을 쏟았고 클린스만의 유럽내 감독 평가는 여기서 작살난다. 


Don't worry about a thing cause every little thing is gonna be alright.

클린스만이 헤르타 베를린 감독 커리어를 마치고 좌절하거나 자숙하며 심기일전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과연 그 사람이 클린스만이었을까? 


클린스만은 이후에도 매우 낙천적이고 친화력있는 언변을 활용해 축구 셀럽으로 종횡무진했다. 각종 방송의 게스트로 나와 입담좋은 레전드로 인지도를 쌓았고 월드컵이나 유로 등의 대회가 있을 때마다 전술 연구 위원회 같은 인맥 쌓기 좋은 이벤트에 얼굴을 내비치며 축구와의 인연을 계속 이어갔다. 


그리고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차두리 코치와의 인연이 닿았고 정몽규 회장의 결단(?)을 통해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한다. 


하지만 딱히 감독직에 미련이 있어서 내공을 쌓은 것이 아니었는데 확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당초 클린스만이 선임됐을때 국내외 전문가들은 클린스만이 성공하려면 무조건 "똑똑하고 전술에 능한 수석코치"가 함께해야 한다는 전제를 걸었다. 선임과 함께 미국 대표팀에서 함께했던 헤어초크를 수석코치로 임명해 논란을 불식시키는듯 했지만, 헤어초크의 기존 직업인 오스트리아 ESPN 해설위원직은 유지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즉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은 사이드잡인 셈이었다. 그런 수석코치는 대표팀 역사상 전례가 없었다. 만약 안정환이 MBC 방송일을 하면서 수석코치 직을 수행하겠다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파트타임 수석코치가 얼마나 팀에 공을 들일 수 있을까? 


클린스만이 선임한 다른 스탭들도 사정은 같았다. 해외스탭들은 모두 해외에 머무는 시간이 더 길었다. 뒤늦게 국내 선수 선발과 관리를 위해 차두리가 코치로 선임됐지만, 자신이 직접 체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평가를 통해 뽑은 선수가 감독의 축구를 100% 수행할 수 있을거라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다. 


 클린스만 감독이 벨소리로 지정할 정도로 좋아했던 노래가 있다. 바로 밥 말리의 'Little Three Birds'란 곡이다. 이 노래엔 이런 가사가 있다. 


"Don't worry about a thing cause every little thing is gonna be alright."

"사소한걸 걱정하지마. 왜냐하면 잘 해결될거니까"


클린스만은 애초에 그런 사람이었다. 


이전 실패를 거울삼아 심기일전하고, 한국 대표팀에 올인하며 전력을 다하는 유형의 사람이 아닌 것이다. 그러니 홍재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마음에 안들면 자르면 된다."라는 발언을 하고 해외에 머무는 것에 대한 비난 여론에 떠밀려 국내에 돌아와 가진 첫 인터뷰에서 "여러분이 불러서 왔다"라며 웃을 수 있는 것이다. 


조별예선 최약체인 말레이시아와 3:3으로 비기고 빙그레 웃고, 2번의 연장 혈투 끝에 4강전에서 패한 선수들을 위로하거나 팬들에게 사과하는 것이 아닌 상대 선수를 축하하기 위해 미소지을 수 있는 사람이다. 한국 대표팀을 떠나면 미련없이 방송계 일을하며 즐겁게 살 것이다.



그런 클린스만이 잘못된 것이라 말할 수 없다. 사람은 여러 유형이 있고 애초부터 그런 성격으로 60년을 산 슈퍼스타 출신에게 "바꿔라"라고 할 수 없다. 


그런 사람임을 이미 알면서 한 국가의 축구 대표팀의 미래를 맡긴 의사결정의 최정점에 있는 존재가 책임을져야 한다. 클린스만 선임 당시에도 이런 사태가 벌어질 것이란 경고와 우려는 수없이 많았다. 심지어 평가전을 갖는 와중에도 경고등을 계속 들어왔다. 그럼에도 밀어붙인 결과 최정예 황금멤버를 갖고 4강에 그쳤다면, 그런 의사결정을 내린 리더가 책임을 져야 한다. 


이번 사태 뿐 아니라 AFC평의회의원 낙선, 2023 아시안컵 유치 실패, 대체 뭐하는 직책인지도 알 수 없는 미하엘 뮐러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장 선임, 얼굴 마담겸 방패막이로 쓸 부회장 선임 남발, 승부조작 징계자들 사면 시도 등 수많은 흑역사들을 만들어내지 않았던가?


만약 여기서도 책임을 지지 않고 클린스만에게 뒤짚어 씌우고 면피한다면, 제 2의 클린스만 같은 존재가 나와 제 2의 요르단 참사를 터트리며 대한민국 축구의 미래를 망가트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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