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조직을 만들고 싶다면 베테랑에 주목하자
효율을 중시하는 최근 세태에 베테랑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효율이 떨어지는 베테랑은 조직의 건강을 해치는 존재로 바라보는 경향이 크다보니 위기가 올때마다 제거대상 1호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일반 회사도 효율을 중시하는 마당에 프로 스포츠는 유독 이런 성향이 더욱 짙은 곳이다. 아무리 잘나가는 선수더라도 에이징 커브가 찾아오고 연봉이 높다고 판단되는 순간, 트레이드 되거나 방출되기 일쑤다.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프로 스포츠, 그것도 세계 최고의 농구 리그인 NBA에서 20년간 한 팀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왔던 선수가 있다. 그 흔한 올스타 출전 경험도 0회이고 커리어 성적도 평균 7.5득점-6.6리바운드로 다른 스타 선수들과 비교해 평범 그자체였다.
하지만 마이애미는 그 선수에게 '영구 결번'을 선물하며 리스펙을 남겼다. 바로 22-23시즌 은퇴한 마이애미 히트의 '정신적 지주' 유도니스 하슬렘이다.
유도니스 하슬렘은 마이애미의 황금기의 시작과 끝, 지미 버틀러 영입으로 시작된 중흥기를 함께한 팀 역사의 한 조각이다.
샤킬 오닐-드웨인 웨이드가 이끌던 2005-06시즌 팀 역사상 첫 우승을 선물했고, 르브론 제임스-드웨인 웨이드-크리스 보쉬 소위 '빅3'가 이끌던 시절에도 2011-12시즌, 2012-13시즌 연달아 우승을 달성하며 총 3번의 우승을 선물했다. 그리고 지난 2022-23시즌엔 비록 덴버 너게츠에게 패했지만 '새로운 마이애미의 심장' 지미 버틀러-뱀 아데바요와 함께 NBA 파이널을 경험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르브론 제임스, 샤킬 오닐, 드웨인 웨이드, 크리스 보쉬, 제이슨 윌리엄스, 리키 데이비스, 저메일 오닐, 고란 드라기치 등 수많은 스타들이 팀을 거쳐가고 '빅3'가 모였다가 해체되는 등 수많은 이합집산이 이루어지는 동안에도 로스터의 한자리는 하슬렘이 차지하고 있었다.
하슬렘은 출발부터 엘리트 코스와는 거리가 멀었다. 플로리다 대학시절 준수한 활약을 펼치며 팀 역사상 최다득점 3위-최다 리바운드 10위에 오르긴 했지만 언더사이즈 빅맨(203cm)이란 한계를 벗지 못했다. 2002년 드래프트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어느 팀의 선택도 받지 못하고 프랑스 리그로 넘어가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데 만족해야 했다. 프랑스 리그에서 평균 16.4득점-9.4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존재감을 남긴 하슬렘은 2003년 섬머 리그에서 마이애미 히트의 눈에 띄며 마침내 정식계약을 맺는데 성공했다.
마이애미가 하슬렘에게 주목한 것은 '터프함'이었다. 203cm 작은 키를 커버하고도 남는 터프한 수비와 허슬 플레이, 특정 스팟에서 높은 적중도를 자랑하는 슛 능력은 팀이 원하는 롤 플레이어 능력으로 안성맞춤이었던 것. 게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팀 라커룸의 문화를 이끄는 팀 리더의 면목도 보여주며 마이애미에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게다가 플로리다 대학 출신 '홈타운 보이'의 프랜차이즈 플레이어란 점은 팀 팬들에게 특히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하슬렘 역시 마이애미를 매우 사랑했는데, 큰 연봉을 받는 선수가 아님에도 '빅3'의 유지를 위해 자신의 연봉을 페이컷하는 매우 힘든 결단을 내리기도 했다. 어지간한 NBA 선수도 연당 천만달러 계약이 우스운 시대에 하슬렘의 가장 높았던 연봉은 2009-10시즌 710만 달러였다.
마이애미 히트의 감독이었고 현재는 마이애미의 사장인 팻 라일리는 하슬렘이 은퇴를 선언하자 그의 등번호인 40번을 '영구 결번'하겠다고 발표했다.
"유도니스 하슬렘의 마이애미 역사의 유산"이라는 극찬과 함께 말이다.
개인 능력은 떨어졌지만 팀의 리더이자 팀 문화를 이끄는 솔선수범의 마인드. 팀을 위해 페이컷을 결단하고 출전 시간도 기꺼이 양보할 수 있는 희생정신을 갖춘 베테랑의 소중함을 알기 때문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하슬렘의 이야기를 바로 우리 자신에게 적용하기 힘들 수 있다. 각자 처한 상황이 다르고 조직도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글을 읽는 당신이 만약 조직을 꾸리고 이끌어야 하는 위치에 있는 존재라면 하슬렘의 이야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효율의 극대화가 중요하지만 단순히 숫자를 통한 기계적인 운영은 한계가 있다. 문화를 만들어가고 조직 구성원이 롤모델로 삼을만한 존재가 있다는 것은 결국 조직내에 강한 동기부여와 신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짧은 시간 쥐어짜고 말 조직은 성과를 달성한 이후 아무것도 남길 수 없다. 만약 건강하고 오래 지속될 수 있는 조직을 만들고 싶다면, 하슬렘 같은 존재가 없는지 찾아보거나 만들어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존재는 조직에서 오랜 기간 함께해 온 '베테랑'들 사이에서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꼰대를 만들 것인가 베테랑을 만들 것인가는 리더의 의지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