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리안 벨트레-조 마우어-토드 헬튼 전설이 되다
아드리안 벨트레와 조 마우어가 MLB 명예의 전당 투표 첫 시도만에 헌액에 성공했다. 두 명의 선수가 첫 투표에서 헌액된 것은 2018년(치퍼 존스-짐 토미)과 2007년(토니 그윈-칼 립켄 주니어)에 이어 3번째 사례. 두 선수 외에 토드 헬튼도 6번째 시도 끝에 명예의 전당 헌액에 성공했다.
벨트레는 첫 투표에서 무료 95.1%라는 압도적인 득표율을 기록했는데 전설적인 홈런타자 베이브 루스가 명예의 전당 헌액될 때 얻은 득표율과 동률을 기록했다. 역대 3루수 득표율을 놓고 봤을때도 캔자스시티의 전성기를 이끌며 3,000안타를 기록한 조지 브렛, 90년대 최고의 3루수이자 애틀란타 프랜차이즈인 치퍼 존스, 필라델피아의 전설인 마이크 슈밋에 이어 4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벨트레는 한국 팬들에게도 매우 친숙한 이름이다. LA 다저스 시절 박찬호의 동료였고 텍사스 레인저스 시절 추신수와 함께 타선의 핵심 역할을 했던 선수. 다르게 해석한다면 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무려 21시즌동안 경쟁력을 발휘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통산 타율 .286-477홈런-1707타점-WAR 93.5로 누적 스탯 뿐 아니라 질적인 스탯에서도 손꼽히는 기록을 남겼다.
다저스 시절엔 '호타준족 유망주'로 기대를 받았지만 더딘 성장세 때문에 '수비형 3루수'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받기도 했다. 다저스에서 뛴 마지막 시즌인 2004년이 되서야 .334-48홈런-121타점으로 '대폭발'했고 FA로이드 아니냐는 우려섞인 시선 속에 시애틀 매리너스와 5년간 6,400만 달러의 대형 계약을 맺고 이적했다. 시애틀에서 뛴 5시즌동안 꾸준히 20홈런-80타점을 기록하며 소외 '밥값'은 했지만, 고액 연봉 FA라는 이미지와 항상 지구 라이벌 팀들에게 밀려 가을야구에 오르지 못하는 팀 성적이 겹쳐지며 '먹튀'라는 오명을 벗기 어려웠다.
시애틀과 계약이 만료된 2010년, 벨트레는 보스턴과 1년까지 단기계약을 맺는 결단을 내린다. 그리고 이 계약은 회심의 한수였다. 보스턴에서 .321-28홈런-102타점을 기록하며 2004시즌만큼의 생산력을 회복했다. 보스턴은 벨트레의 활약이 일회성이라 생각해 재계약을 포기했지만 이는 큰 실수였다. 벨트레는 텍사스와 5년간 8,000만달러의 계약을 맺고 이적했고, 텍사스에서 진정한 전성기를 누렸다.
벨트레는 텍사스에서 두번의 지구 우승을 안겼고 중심타자이자 팀 리더로 텍사스 선수단을 이끄는 모범적인 베테랑의 면모를 보여줬다. 텍사스에서 8년 동안 1098경기에서 타율 0.304, 199홈런 699타점, OPS 0.865의 성적을 올렸다. 이 기간 골드글러브 3회, 실버슬러거 2회를 차지했다.
앞으로 야구팬들은 최고의 3루수가 누구냐는 논할때 조지 브렛-치퍼 존스-마이크 슈밋과 함께 벨트레도 함께 거론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버스터 포지와 함께 2000년대 최고의 포수 자리를 양분했던 조 마우어도 76.1%의 득표로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명성에 비해 다소 득표율이 적다는 인상도 있지만 잦은 부상으로 겨우(?) 2,000안타를 넘긴 누적 스탯과 뇌진탕 때문에 말년에 어쩔수 없이 1루수로 전향한 영향이지 마우어의 영향이 낮다는 의미는 아니다. 역대 포수 후보들의 득표를 보더라도 전설적인 원탑 포수 조니 벤치(96.4%) 다음으로 첫 턴에서 높은 득표를 기록한 선수였다. 90-2000년대 최고 포수 중 한 명인 이반 로드리게스도 76%로 마우어와 비교해 0.1% 낮은 득표를 기록했다. 심지어 "경기가 끝날때까지 끝난게 아니다"라는 명언을 남긴 요기 베라도 첫 투표에서 60%대 득표로 떨어진바 있다.
마우어는 재정적으로 열악한 중위권팀 미네소타 소속으로 팀을 홀로 이끈 소년 가장의 이미지가 큰 선수였다. 2001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순위로 지명될 정도로 큰 기대를 모았던 마우어는 초고속으로 마이너리그를 돌파하고 2004년부터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다. 홈런이 많지 않은 중장거리 타자였지만 2009년엔 .365-28홈런-96타점을 기록하며 팀을 디비전 우승으로 이끌어고, 홈런 타자들이 유리한 MVP 레이스에서 최종 승자가 되기도 했다.
비록 디비전 시리즈에서 당시 최강팀인 뉴욕 양키스에 밀려 3전전패로 탈락했지만, 약팀 이미지가 강한 미네소타에서 프랜차이즈 스타로 의리를 지킨 마우어의 낭만은 메이저리그에서도 매우 주목받는 사례 중 하다. 미네소타주 세인트폴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미네소타 팬으로 자란 마우어는 프로 데뷔 후 은퇴까지 고향팀을 지키며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마우어는 이번 헌액으로 희귀한 기록을 세웠는데 바로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 출신 명예의 전당 입성'이다. 1965년 메이저리그 신인 드래프트 제도가 시작된 이후로 전체 1순위 지명자가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건 마우어가 겨우 역대 4번째다. 1987년 켄 그리피 주니어, 2016년 치퍼 존스, 2019년 해롤드 베인스만이 이 기록을 세운 바 있다.
마우어보다 은퇴가 늦은 버스터 포지는 3년 뒤에 명예의 전당 투표가 예정되어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여러번 우승을 경험하긴 했지만 누적 스탯이 훨씬 떨어지는 경향이 있어 첫 해부터 마우어의 득표를 넘을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재밌는 포인트.
6년간 명예의 전당이 문을 두드린 토트 헬튼도 79.7%의 득표로 마침내 헌액에 성공했다. 지난해 72.2%에서 무려 7.5%나 오른 것이다.
헬튼은 래리 워커와 함께 쿠어스필드의 선입견에 희생된 타자 중 한 명이다. 통산 타율 .316-2,519안타-369홈런-1,406타점을 기록했지만 타자 친화적인 쿠어스필드를 쓰기 때문에 거품이 낀 기록이란 평가를 많이 받았다. 심지어 .372(!)-42홈런-147타점을 기록한 2000년엔 타율-타점 1위를 기록했지만 MVP투표에서 5위에 머물기까지 했다.
올스타 5회, 실버슬러거 5회, 골드글러브 3회 수상를 수상했지만 투표자들의 보수적인 투표 성향은 여전했다. 명예의 전당 자격 유지 마지막 해가 되서야 헌액된 래리 워커에게 끝까지 투표하지 않았던 투표자들 중 이번 토드 헬튼 투표에도 참여한 유권자들은 이번에도 헬튼을 외면한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어쩌면 쿠어스필드란 선입견을 깬 토드 헬튼의 이번 헌액이 벨트레나 마우어의 도전보다 더 험난하고 의미있는 사건일 수도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