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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포츠파이 Nov 07. 2019

'창단 50년만에 우승' 워싱턴 우승의 의미?

피상적인 흙수저 논란은 접어두자

6-2로 앞선 9회말 다니엘 허드슨이 마운드에 올랐다. 

마지막 타자 마이클 브랜틀리의 방망이가 허드슨의 슬라이더에 허공을 가르자 워싱턴의 50년 묵은 숙원이 사라졌다. 

포스트시즌 시작 전, 심지어 월드시리즈 7차전 직전에도 유력한 스포츠 매체들은 휴스턴의 우승을 점쳤다. 

하지만 워싱턴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이번 우승은 단순히 한 프랜차이즈의 우승 뿐 아니라 MLB 전체 판도에도 큰 울림을 만들었다. 


AI와 유망주로 대동단결? 결국 야구도 사람이 한다

2000년대초 오클랜드 빌리 빈 단장의 성공과 함께 시작된 사이버매트릭션은 이제 MLB는 물론이고 NPB와 KBO 등 전세계 야구팀이 팀 운영에 반영할 정도로 기초적인 분석 시스템으로 자리잡았다. 

사이버매트릭션에 이어 AI의 딥러닝의 등장은 스카우터와 프런트가 담당하던 분석과 팀 운영 업무에 실수를 최소화하며 효율적인 작업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덕분에 전혀 팀에 어울리지 않는 선수에 큰 돈을 퍼붓던 비효율적인 계약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AI가 쌓은 빅데이터들은 베테랑들만 독점하던 경험을 젊은 선수들이 공유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젊은 유망주들로 팀을 꾸리더라도 경험부족이나 실수를 걱정하지 않는 수준까지 발전이 이루어졌다. 


올드스쿨적인 방식의 야구가 마냥 매력적인 것은 아니다. 기술의 발전이 스포츠 전체의 발전을 이끄는 것이 사실이고 실제로 이런 트렌드에 빠르게 적응한 팀들이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2019시즌 월드시리즈에 오른 휴스턴이 대표적인 팀이다. 2010년대 초반 데이터 야구를 받아들이고 유망주들을 끌어모으며 리빌딩을 거쳤고 그 결과 3시즌 연속 100승을 거두며 1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야구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온 것은 긍정적이지만, 부정적인 영향도 무시하기 힘들다.

페이롤 걱정 때문에 수많은 고민 끝에 '머니볼'을 택한 오클랜드나 시스템을 만들어낸 '선구자' 휴스턴 등 몇몇 진보적인 팀들을 제외하면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더라'란 막연한 기대감 속에 껍데기만 따라하는 팀들이 많아졌다. 다양한 색깔의 팀들이 공존하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색깔의 야구를 하는 팀들이 늘어났다. 


매 타석마다 타구 분포를 보고 시프트를 걸고, 가성비 좋은 유망주들을 쫙 깔아 포텐 터지길 기다리고, 비효율적인 베테랑은 쳐내는 모습은 지난 몇 년간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이런 리그 판세에 균열을 준 것이 2019시즌 워싱턴 내셔널스였다. 


월드시리즈 7차전 승부를 뒤집은 투런 홈런을 터트린 하위 켄드릭(36살), 워싱턴의 프랜차이즈로 산전수전을 다 겪은 라이언 짐머맨(35살), 부상 투혼을 보여줬던 맥스 슈어저(35살), 플레이오프에서 다저스와 세인트루이스를 상대로 깜짝 호투를 펼친 애니벌 산체스(35살)가 단기전에 진가를 발휘했다. 워싱턴의 핵심 선수로 활약한 스티븐 스트라스버그(31살)와 패트릭 코빈(30살)도 최근 기준에선 베테랑 선수다. 


만약 워싱턴이 생각없이 시류에 따르는 팀이었다면 시즌 초반 연패를 거듭했을때 고꾸라졌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워싱턴은 5월말 19승 31패를 기록하며 하위권을 맴돌았는데, 당시 플레이오프 진출 확률은 22.2%에 불과했다. 


기적을 만든 작은 변화 파라의 '아기 상어'

시즌 초 백업 외야수 앤드류 스티븐슨이 부상을 당하자 샌프란시스코에서 지명할당 된 헤라르도 파라를 영입했다. 2009년 데뷔 타석에서 홈런을 뽑아내기도 했고, 2011년과 2013년 외야수 골드글러브의 주인공이었지만 2014년 이후 7개의 팀을 옮기는 저니맨이었다. 


워싱턴 이적 직후 성적도 신통치 않았는데 22타수 무안타 부진에 빠지자 분위기 전환 차원에서 자신의 등장곡을 바꾸는 것을 고민했다. 처음엔 레게나 힙합쪽 음악을 고려했지만 파라의 2살 딸이 최애하는 '아기상어'를 선택했다. (MLB에서 아기상어를 등장곡으로 처음 사용한 것은 텍사스의 앨비스 앤드루스다)


신기하게도 파라가 등장곡을 바꾼 당일 경기에서 2안타 2타점을 기록하며 부진 탈출의 계기를 마련했다. 파라의 성적만 바뀐 것이 아니라 팀원들도 아기상어의 효과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아기상어 노래가 나올때마다 선수들은 노래에 맞춰 춤을 췄고 파라가 안타나 홈런을 치면 타격 결과에 따라 아기 상어, 엄마 상어, 아빠 상어 율동을 따라했다. 


선수들의 분위기가 바뀌자 관중들도 함께하기 시작했다. 파라의 아기상어가 나올때마다 관중들도 함께 춤을 추기 시작했다. 2000년 LA 에인절스가 '랠리 몽키'에 열광했던 것처럼 2019년 워싱턴은 아기 상어와 함께했다. 

파라의 아기상어는 포스트시즌에서도 선수와 관중들을 하나로 만드는 엄청난 효과를 발휘했다. 

'워싱턴의 커쇼'라 불릴 정도로 과묵한 스트라스버그가 덕아웃에서 춤을 출 정도니 워싱턴의 팀 분위기 변화는 천지창조 급이었다. 


큰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 워싱턴도 2018시즌 종료 후 브라이스 하퍼를 포기한 대신 20살의 유망주 후안 소토를 전면에 내세웠고 데이터와 AI, 비디오 분석 자료 없이 좋은 성적을 꿈꾸긴 힘든 세상이 됐다. 하지만 야구에 정답이 없다는 것은 이번 월드시리즈를 통해 증명됐다고 생각한다. 


빅데이터를 쥐잡듯이 들쑤시며 분석하거나, 한 타석에 수십개의 비디오 분석자료를 들고 현미경처럼 들여다보는 행위보다 팀원들이 모여 손목을 모으고 '아기상어' 율동을 하는 것이 더 팀 전력에 도움이 됐다. 점점 로봇처럼 경기를 하고 팀을 운영하던 MLB 판에 '드라마'가 완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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