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S의 향후 전망

개척자들의 발자취와 2027년 글로벌 스탠더드를 향한 대전환

by LA돌쇠

서론: 27년의 취재 현장에서 바라본 미국 축구의 상전벽해


1996년 4월, 캘리포니아주 산호세의 스파르탄 스타디움 락커룸 주변을 서성이던 기자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당시 미국 프로축구 메이저리그 사커(MLS)의 출범은 기대보다는 의구심 섞인 시선이 지배적이었다. 세계 최고의 스포츠 시장을 보유하고도 '축구의 불모지'라 불리던 미국에서, 1994년 월드컵의 열기를 이어가기 위해 급조된 듯한 이 리그가 과연 생존할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당시 리그 가입비는 고작 500만 달러 수준이었으며, 대다수 팀은 미식축구 경기장을 빌려 쓰는 처지였다.

그로부터 27년이 지난 지금, MLS는 30개 구단 체제를 완성하며 구단 가치가 10억 달러를 상회하고, 리오넬 메시라는 전무후무한 아이콘을 보유한 글로벌 리그로 성장했다. 현장을 누빈 기자의 시각에서 볼 때, MLS의 역사는 단순히 경기 결과의 기록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거대 시장이 축구라는 글로벌 언어를 어떻게 자국화하고 다시 세계화했는지에 대한 장대한 서사시다. 본 보고서는 1996년 출범 당시의 혼란과 개척자들의 투혼부터, 2026년 북미 월드컵과 2027년 일정 개편이라는 거대한 전환점을 앞둔 현재의 시점까지, MLS를 거쳐간 스타들의 활동상과 향후 리그의 운명을 결정지을 핵심 전략들을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제1장 1996년의 태동: 아메리칸 사커의 실험과 개척자들


MLS의 시작은 철저하게 '미국적'이었다. 1988년 미국 축구 연맹이 월드컵 개최권을 따내는 조건으로 약속했던 프로 리그 창설은 1996년이 되어서야 10개 팀 체제로 결실을 맺었다. 초기 리그는 콜럼버스 크루, D.C. 유나이티드, 로스앤젤레스 갤럭시 등 오늘날까지 명맥을 잇는 명문 구단들로 구성되었으나, 그 운영 방식은 전통적인 축구와는 거리가 멀었다.


초기 리그의 규칙 실험과 인프라 한계


당시 사무국은 축구가 지루하다는 미국인들의 편견을 깨기 위해 파격적인 규칙 변형을 시도했다. 경기 시계는 45분에서 0분으로 거꾸로 흐르는 카운트다운 방식을 택했고, 경기가 중단되면 시계도 멈추는 미식축구식 운영을 도입했다. 무엇보다 무승부를 배격하는 문화에 맞춰 도입된 '슈트아웃(Shootout)' 제도는 지금도 올드 팬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진풍경이었다. 35야드 지점에서 선수가 공을 몰고 골키퍼와 1대 1 상황을 벌이는 이 방식은 전통적인 축구 팬들에게는 조롱의 대상이었으나, 초기 리그 홍보에는 나름의 역할을 했다.

또한, 1996년 당시 축구 전용 경기장은 단 한 곳도 없었다. 팀들은 수만 명을 수용하는 NFL 경기장을 임대해 사용했으며, 관중이 적게 들어찬 거대한 경기장은 오히려 리그의 빈약함을 부각시키는 역효과를 낳기도 했다. 유니폼 역시 캔자스시티 위즈의 무지개 패턴이나 산호세 클래시의 형광색 디자인처럼 당시의 화려하고 파격적인 감성이 반영되어 있었다.


1996년 MLS 출범 당시 참가 구단 및 연고지 현황

1세대 스타플레이어들의 활약상


초기 MLS를 지탱한 힘은 1994년 월드컵의 영웅들과 남미의 테크니션들이었다. 미국 대표팀의 상징이었던 알렉시 랄라스, 타브 라모스, 에릭 위날다, 토니 메올라 등은 각 팀에 배치되어 리그의 얼굴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타브 라모스는 리그 역사상 첫 번째로 계약한 선수로서 메트로스타스의 중원을 책임졌으며, 알렉시 랄라스는 특유의 붉은 턱수염과 함께 이탈리아 세리에 A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 축구의 자존심을 세웠다.

외국인 스타 중 가장 압도적이었던 인물은 콜롬비아의 카를로스 발데라마였다. 탬파베이 뮤티니 소속이었던 그는 전성기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창의적인 패스로 리그 초대 MVP를 차지했다. 기자의 기억 속 발데라마는 경기 내내 많이 뛰지는 않았지만, 공이 발에 닿는 순간 경기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는 마술사였다. 또한 볼리비아의 마르코 에체베리는 D.C. 유나이티드의 초기 3번의 우승(1996, 1997, 1999)을 이끌며 MLS 역사상 최고의 테크니션 중 한 명으로 각인되었다.


제2장 생존을 위한 투쟁과 인프라의 혁명 (2000~2006)


첫 시즌의 흥행 열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1996년 평균 17,406명이었던 관중은 점차 감소했고, 리그는 매년 막대한 적자를 기록했다. 2001년 시즌이 끝난 후, 탬파베이 뮤티니와 마이애미 퓨전이 해체되면서 리그는 소멸의 위기에 직면했다.


축구 전용 경기장(SSS)의 탄생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리그 설립자 필립 안슈츠와 라마 헌트는 인프라에 대한 전폭적인 투자를 결정했다. 1999년 완공된 콜럼버스 크루 스테디움은 미국 최초의 현대식 축구 전용 경기장(Soccer-Specific Stadium)으로서 리그 역사의 전환점이 되었다. 전용 경기장은 단순히 공을 차는 장소를 넘어, 구단이 매점 수익, 주차 수익, 경기장 명명권 판매 등을 통해 독자적인 수익 모델을 구축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SSS의 확산은 관중들의 몰입도를 높였고, 이는 곧 팬 문화의 형성으로 이어졌다. 미식축구장의 구석에서 경기를 관람하던 팬들은 이제 선수들의 숨소리까지 들리는 전용 경기장에서 열광하기 시작했다. 2015년까지 20개 팀 중 14개 팀이 전용 경기장을 확보했으며, 현재는 거의 모든 구단이 자신들만의 안방을 소유하고 있다.


랜던 도너번과 국내파 스타의 부상


이 시기 미국 축구 팬들을 설레게 한 이름은 랜던 도너번이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라이징 스타로 떠오른 도너번은 산호세 어스퀘이크스와 LA 갤럭시에서 활약하며 MLS가 재능 있는 자국 선수를 육성하고 보유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그는 2002년과 2003년 산호세의 우승을 이끌었으며, 이후 LA 갤럭시의 전성기를 열었다. 도너번의 존재는 MLS가 단순히 은퇴 무대가 아니라 미국 축구의 정수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제3장 베컴 룰과 지정 선수(DP) 시대의 개막 (2007~2015)


2007년은 MLS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해로 기록된다. 바로 데이비드 베컴의 LA 갤럭시 합류와 이를 가능케 한 '지정 선수(Designated Player) 규정'의 도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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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성Jason Kim의 브런치스토리입니다. 오랜세월 화사 생활과 다양한 사회 활동으로 그동안 경험했던 것들을 여러분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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