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처 몰라 본 메시
"Nothing is Impossible!"
170cm도 안 되는 키에도 거구들을 상대로 결코 밀리지 않으며 자신이 원하는 골을 만들어 낸다. 20세기 등번호 10번의 대명사가 펠레와 마라도나였다면 21세기 10번의 대명사는 "Only One!" 리오넬 메시뿐이다.
내가 메시를 만난 것은 2006년 8월이었다. 스페인 축구 명문구단인 바르셀로나가 프리시즌을 맞아 LA로 전지훈련을 왔고 당시 스포츠서울 USA에서 기자를 했던 나는 취재를 위해 바르셀로나의 훈련장인 로욜라대학을 찾았다.
당시 바르셀로나의 슈퍼스타는 외계인 호나우지뉴였고 자연스럽게 나의 카메라는 그를 향했다.
바르셀로나의 훈련 후 선수들이 퇴장할 때 기자들은 호나우지뉴와 기념촬영을 희망했고 이미 호나우지뉴와 기념촬영을 했던 나는 누구와 찍을까 망설이고 있었다.
그때 취재차 와있던 스페인기자는 나에게 어떤 선수와 사진을 찍으라고 권했고 손수 사진까지 친절하게 찍어 주었다. 나는 누군지도 모르는 선수와 어떨 결에 사진을 찍었다. 그가 바로 메시였다.
당시 그는 19살이었고, U-20 FIFA월드컵에서 골든볼과 골든슈즈을 차지했지만, 확실한 자리매김을 하지 못하고 라이징 스타로 평가받고 있을 때였다. 더욱이 바르셀로나에는 호나지뉴라는 당대 최고의 스타가 떡 하니 버티고 있었다.
나는 LA사무실에 선수들과 찍은 사진들을 훈장처럼 걸어놨다. 메시와의 사진도 어느 한편에 걸어놨다. 사무실을 방문하는 사램들은 사진들을 보다가 메시와 함께 찍은 사진을 가리키며 누구냐고 물었다. 메시를 몰랐던 나는 얼버무리며 바르셀로나의 유망주라고만 대답했다. 메시에게 미안한 이야기지만 사실 나뿐만 아니라 당시에는 메시를 아는 사람들이 드물었다.
하지만, 메시는 이후 바르셀로나와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맹활약을 펼치며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됐고 나는 졸지에 메시와 사진을 찍은 몇 안 되는 행운아가 됐다.
이후 나는 메시를 TV를 통해서만 보게 되었는데 지금의 메시 모습은 내 사진 속 메시의 모습과 많이 다르다. 지금은 트레이드마크가 되다 시피한 턱수염이 내 사진 속 메시의 모습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이제 막 소년 티를 벗어난 앳 뛴 모습이라고 할까? 세월의 흔적을 볼 수가 있다.
내가 메시를 만났던 2006년 이후 메시는 바르셀로나뿐 만 아니라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 입지를 구치고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가 됐다. 세계에서 가장 축구를 잘하는 선수에게 주는 발롱드로상도 7회나 수상했다. 그리고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조국 아르헨티나에 우승 트로피를 받쳤다.
현재 메시는 미국 MLS 인터 마이애미에서 선수생활을 이어 가고 있다. 덕분에 미국 축구를 세계인들의 관심사로 만드는데 성공을 했다. 최근에는 손흥인마저 LAFC로 이적해 두 선수가 함께 뛰는 투샷을 볼 수 있게 됐다.
메시가 미국으로 이적하게 된 것은 2026년 북중미월드컵의 영향이 크다. 카타르 월드컵이 그의 라스트 댄스일 줄 알았는데, 지금으로 봐서는 2026년에 미국에서 한번 더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기량이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아서다. 그리고 그가 미국으로 이적한 또 하나의 이유는 가족과의 편안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다. 물론 미국인들도 그를 알아보지만, 그래도 그가 뛰었던 스페인이나 프랑스에 비해 축구의 관심도가 떨어지는 미국인만큼 좀 더 편안한 생활을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실제로 마이애미 슈퍼마켓에서 편안 복장을 하고 카트를 끄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그가 미국으로 간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았던 마라도나나 펠레는 축구에 관해서는 인정을 받았지만, 사생활로 인해 많은 논란을 낳았다. 그러나 메시는 지금까지 특별한 스캔들이 없다. 자신의 소꿉친구이자 치대생 출신 지금의 와이프 안토넬로 로쿠조와 큰 잡음 없이 세 명의 아들들과 잘 지내고 있다.
메시와의 추억 속 사진을 보면서 지금은 '축구의 신'이 된 메시를 그때는 왜 몰라봤을까 하는 부끄러움과 한편으로는 내 사진 속 주인공이 '축구의 신'으로 성장해 준 모습에 뿌듯함과 감사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