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동생
홍명보는 누가 뭐라 해도 한국축구의 영웅이자 한국 축구의 레전드다. 그를 두고 온실 속의 화초라고 하고 브라질월드컵에서 기대했던 성적을 못 올렸다고 해서 실패자라는 맹비난을 하기도 하지만 그가 걸어온 길을 돌이켜보면 그는 영원히 한국 축구의 영웅으로 대우받아 마땅하다.
내가 홍명보를 처음 만난 건 2003년 6월이었다. 당시 홍명보는 LA갤럭시 선수로 왔고, 나는 모 대학교 LA동창회의 총무로 있었다. 우연히 호텔 1, 2층에서 행사를 하나가 인연이 시작됐다.
홍명보는 68년생으로 나 보도 나이고 4살이나 어리지만, 그에게서 풍기는 카리스마 때문에 함부로 하지 못했다. 나도 모르게 존댓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런 대면 대면한 사이로 관계를 이어오다 그해 추석을 앞두고 나에게 전화를 해서 "형님! 송편 드셨나?"는 한마디로 인해 그 이후 형과 아우 사이로 바뀌면서 호칭도 "명보야|" "형!" 하는 사이가 됐다. 지금도 사석에서는 이름을 부른다.
또 하나의 인연은 그가 미국에서 홍명보축구교실을 오픈할 때 내가 법적인 절차나 세무적인 절차에 관해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홍명보축구교실의 1호 회원으로 우리 아들을 가입시켰다. 그때 1호 회원이었던 아들놈은 스포츠 마케팅 분야에서 요즈음 잘 나간다. 한동안 토트넘 마케팅을 담당해 BTS 등 수많은 연예인들과 손흥민을 콜라보시키더니, 지금은 메어저리그 사무국 한국 마케팅 본부장이 됐다. 그 배경이 홍명보축구교실 1회 회원으로부터 시작한다.
내가 축구 에이전트 일을 하게 된 것도 사실 홍명보의 영향이 크다. 2002년 전만 해도 난 축구에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2002년 월드컵과 홍명보를 만나면서 축구에 관심을 갖고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 결과 FIFA공인 에이전트로 활동하고 있다. 가끔 홍명보에게 언젠가 언제 나를 대리인 시킬 거냐고 농담 비슷하게 이야기하곤 한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홍명보와 친분을 유지하면서 그의 모든 것을 옆에서 지켜봤다. 2002년 월드컵과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올려 영웅이 되었다가 브라질월드컵의 실패로 나락으로 떨어진 때도 있다. 사실 그때 나는 그가 왜 대표팀 감독을 하는지 의아해했고 말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 상황은 본인이 원해서라기보다 한국 축구를 위해 등 떠밀려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최근엔도 국가대표 감독 선임건으로 국회청문회까지 다녀왔다. 솔직히 말해서 본인이 시켜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2014년 브라질월드컵 때처럼 분위기가 그가 해야 될 분위기에서 맡게 된 것인데 그것을 두고 너무 말들이 많다. 솔직히 말해서 난 울산현대 감독으로 더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의 성격상, 청을 거부하기가 어러웠으리라 짐작한다.
난 개인적으로 내년 북중미월드컵에서 한국팀이 좋은 성적을 낼 것이라 기대한다. 홍명보가 활약했던 것도 1994년 미국 월드컵이고, 손흥민도 홈구장인 미국에서 뛸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미국은 한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어 한국 못지않게 붉은 악마들이 많이 응원을 올 것이다.
홍명보도 이제 환갑을 바라보고 있다. 그럴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와 단 1분이라도 말을 섞어보면 그가 얼마나 똑똑하고, 생각이 깊은 사람인지 알게 될 것이다. 최소한 그는 누구보다 자신을 믿어주고 믿는 사람에게 칼을 꽂지는 않는다. 그런 그를 정치판에 불러내 훈계하는 정치인들은 배신을 밥 먹듯 한다.
이제 월드컵이 10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이제 나도 붉은색 유니폼을 다시 꺼내 응원 준비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