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민생활의 활력소
'메이저리거 1호'
박찬호는 한국인으로서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한국 야구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간 개척자다.
박찬호 이전에 이원국, 박철순이 도전했지만 마이너리그에 머물고 메이저리거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박찬호가 꿈의 리그에 입성하면서 한국 야구 역사가 새롭게 써졌고 코리안 리거들도 메이저리그에서 통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내가 박찬호를 만난 것은 2005년 1월이었다.
LA에 살면서 평소 박찬호의 팬이었던 나는 기자였던 후배의 사전 정보를 받고 박찬호가 시즌을 대비해 개인 훈련을 하고 있던 USC야구장으로 다짜고짜 찾아갔다.
당시 텍사스 레인저스 소속이었던 박찬호는 비시즌 때에는 LA시절 전담 포수였던 채드 크루터가 코치로 있던 USC에서 개인 훈련을 했다. 이후 들리는 이야기로는 단짝이었던 크루터가 박찬호에게 돈을 빌린 후 한참을 갚지 않아 박찬호가 채무 변제 소송을 제기했다고 하니 참 아이러니 한 일이다.
박찬호와 사진을 함께 찍은 그날은 박찬호가 LA에 있는 한국 야구 기자들을 초청해 자신의 비시즌 훈련을 공개하고 인터뷰하는 날이었다. 방송사 현지 특파원을 비롯한 수많은 기자들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박찬호의 훈련을 지켜보고 있다가 박찬호의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카메라를 후배에게 맡기고 씩씩하게 다가가 사진을 한 장 찍자고 했다. 순간 당황한 박찬호는 내게 "관계자세요?" 하고 물었다. 나는 당당하게 "네!"하고 대답을 했다.
이렇게 갑작스레 찍은 이 한 장의 사진은 20년 전 추억이 되었고 사진과 함께 그때 받았던 박찬호의 사인볼은 아직도 우리 집 장식장에 곱게 모셔져 있다.
최근 박찬호는 각종 TV예능프로에 나와 '투머치토커'라는 애칭을 들으며 제2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또한 메이저리그 구단과 스타트업 기업들에 대한 투자자로 활동하고 있다. 일부 야구단에서 그를 감독으로 모셔온다는 루머들이 있었지만 루머로 끝났다. 난 개인적으로 그가 야구 지도자보다는 다른 분야에서 영향력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그래야 후배들이 야구 외 다른 길을 갈 수 있다는 선례를 보여줄 수 있다.
LA 다저스 시절 그가 등판하는 날이면 코리아타운 김밥이 동난다고 할 정도로 사랑을 받았던 박찬호. 새로운 삶에 있어서도 팬들의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